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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2 | [서평]
무리지음과 벗어남과 홀로서기 『하늘의 門』,(이운기, 열린책들, 1994)
김경석 전북대 영문과 강사 (2004-02-05 14:00:03)
이윤기의 장편소설『하늘의 門』은 묵직하면서도 명쾌합니다. 묵직하면서도 동시에 명쾌하다고 하니 말에 어폐가 있는 것같기도 하지만,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제반 문제들이 작가의 오랜 생각 속에서 무르익어 진중하면서도 나름의 명확한 논리의 명쾌함이 동시에 돋보인다는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이 소설의 내용은 해방둥이 유목자인 이유복이라는 한 인물의 개인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주인공 이유복이 체험하고 나름대로 결론을 제시한 종교에 대한, 다시 말해, 삶에 대한 견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윤기가 이 소설에서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자리잡기'인 듯합니다. 항상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면서 굳어진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불칼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 외국인 신부 하우스만의 강연중에 "...나는 여러분을 광야로, 빈 들로 내몰기 위해서 왔어요..."라고 한 말에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학교나 종교 기관체럼 갇힌 체제속에서 삶이란 것이 으레껏 그런 것 아니냐는 태도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좀 학교에다 교회에다 박은 코를 잠깐 들고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내라는 것이지요. 현실에 깨어있으라는 거예요"라는 말은 다분히 충격적인 말일 것입니다. 유복은 창조적인 삶을 살도록 충고하는 불칼 신부의 강연이 힘입어 자신이 생각해왔던 체제와의 결별을 시행합니다. 그는 학교라는 체제를 벗어나 바람이 없으면 바람을 찾아나서는 '바람개비'처럼, 물론 연좌제 때문에 좌절되지만, 유학도 생각해보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여행을 하면서 빈 들과 광야를 찾아 헤매며, 하우스만 신부와 정신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검정고시를 통해 동기들보다 먼저 대학에 입학한 그는 삶의 진실을 가르치는 대신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에 회의를 느낍니다. 그는 같이 나이의 동기생 한재인을 만나 같이 살게 되지만, 고부간에 오해도 풀지 못한 채 어머니는 유명을 달리합니다. 재인에게서 아들 마로를 얻지만, 한 자리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항상 빈 들을 찾아다니던 그는, 기독교의 체제 안으로 돌아오라는 재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학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물 위를 달리는" 재인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던 유복은, 자신의 "마음의 강물 위로 그리스도도 부처도 한재인도 지나"간다고 말하며, 자신의 자리, 즉 재인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입대합니다. 그는 새로운 광야를 찾기 위해 공수단에 지원하여 혹독한 훈련도 받기도 하고 월남에 자원하여 극한 상황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유복은 제대를 해서도 자신의 광야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종형의 회사에서 자리가 잡힐만하자 그는 새로이 잡지사의 기자가 되고, 끝내는 자유번역가로 자리를 굳힙니다. 그러나 재인과의 줄다리기는 끝이 없습니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처남의 아들로 입적된 한마로와, 친구 기동빈의 부탁으로 동빈과 하경 사이에서 생긴 딸을 이(李)숙이라 이름지어 형 유선에게 맡겼다가 하우스만 부부에게 입양시킨 수키 하우스만도 그가 만들어낸 또다른 광야입니다. 체제에 묶이기를 거부하며 항상 자신의 광야를 찾아 헤매던 유복은 80년대의 역사적 질곡에서 연좌제가 폐지되자, 신부와 수녀였다가 이제는 범인이 되어 교수로 재직중인 윌포드와 수니 하우스만 부부가 있는 베델대학교로 종교연구차 떠납니다. 그는 5년후 아버지의 유골을 찾으러 일본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이대함이 해방 후 귀국하려던 d조선인 노동자들을 떼죽음시킨 '우키지마마루호' 사건으로 희생당하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월북한 숙부가 써놓은 무덤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하여 고향의 선산에 어머니와 함께 모십니다. 딸의 행방을 묻는 하경의 의해 수키가 유복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복과 재인은 나이 50씩이 되어서야 결혼을 하게 되고, 유복을 찾아 미국의 하우스만 부부를 찾은 마로와 하우스만의 입양녀인 수키가 온전하게 부모를 만날 수 있게 되며, 한국전쟁 때 하우스만의 생명을 구해 주었던 어린아이가 유복 자신임이 밝혀지면서 유복은 마침내 자신의 자리를 잡게 됩니다. 유복의 자리잡기는 더불어 재인의 자리잡기이기도 하고, 그들의 아들 마로의 자리잡기이며, 하경과 동빈, 그리고 하우스만의 자리잡기이기도 합니다. 모든 은원이 하나의 매듭이 풀리며서 한꺼번에 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줄거리는, 물론 지나치게 압축되어 정확한 줄거리가 될 수도 없겠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본 것을 뿐일 뿐, 유복이 집중했던 것을 결국 하늘의 문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찾는 종교의 문제, 즉 삶 자체입니다. 비록 그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고향에서 재인을 만남으로써 자기의 자리를 찾게 되기는 하지만, 그는 그 자리를 잡기 위해서 30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에돌아온 셈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참으로 반가운 점은 종교에 대한 유복의, 다시 말해서 작가 이윤기의 태도입니다. 종교 및 신화에 대한 오랜 연구와 그 방면의 많은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얻은 지식 덕분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쨌든 이윤기의 종교 및 신화에 대한 지식은 참으로 깊고도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어릴적부터 체험했던 무속과 불교, 유교와 장자의 사상뿐만 아니라 같은 뿌리의 기독교와 유대교와 힌두교의 사상, 그리고 그리스.로마 신화뿐만 아니라 인디언의 신화까지도 두루 섭렵하여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그가 제공하는 정보들의 진위를 제 능력으로서는 가려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것들이 올바른 자리에 위치 지워져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의 해석에 따르다 보면 모든 종교가 한 뿌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굳이 교회라는 체제 안으로 흡수되어 "무리 짓기의 산을 오르고 벗어나기의 빈 들을 지난 사람들이 홀로서기의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해탈의 경지를 추구하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이 소설은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의 신앙고백이나 간증 같은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제게는 이 소설이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니는 또는 지녀야 할 모습들이 무엇인지를 파헤쳐보려고 노력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작가의 해박함과 더불어 "바람이 없을 때는 바람을 찾아가서"까지 돌아가는 바람개비가 치열한 전투의 무대에 올라 스스로 패자임을 확인하고 그 부활을 꿈꾸는 『하늘의 門』에서 눈여겨 볼만한 몇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먼저,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논리의 전개가 매우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편지나 논문, 자신의 습작소설과 남의 이야기, 그리고 옛날 이야기와 속담과 격언까지도 끼워 놓습니다. 물론 각종 종교서적이나 우리가 들어본 위인들의 글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글들이 그대로 인정되지는 않고, 이윤기의 의미체계에서 걸러집니다. 독자들은 그것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어떠하다고 단순히 인정하는 것들을 그는 다시 짚어봅니다. 그점만 해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린 현재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우리의 삶의 태도를 현대사회가 우리에게 안겨준 어쩔 수 없는 부담이고 폐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려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니까요.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이 소설이 한국 제반 현대사와 국제사를 대목대목 집어 본다는 점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한데 어울어져 있지요. 제 글은 극히 작음 부분에 불과합니다. 그에게서라고 부족함 점이나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2권인 「가설극장」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너무 장황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뒤로 가면서 글자나 문맥에서의 오류도 간간이 보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의 글읽는 재미를 치명적으로 침해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로 삼을 만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여러분에게 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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