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3 | [문화칼럼]
누구를 위한 입시부활인가
고교평준화 제도 폐지에 대한 반론
이재천 참교육 학부모 전주지회 회장
(2004-02-05 14:22:23)
언제부터인가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만병통치의 구호가 나돌고 있다. '경쟁력'이 그것이다. 지금의 시점을 '약육강식의 무한 경쟁시대'라고 규정해 놓고 경쟁력만 있으면 살아남는다고 외쳐대는 소리에 우리는 파묻혀 있다.
정부는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책임을 학교교육에 떠넘기면서 교육개혁을 시도하고 있고 이에 편승하여 교육관리들과 언론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행의 고교평준화 제도를 페지하고 경쟁입시를 치루어야 한다고 갑자기 소리를 높여대고 있다.
최근에 부쩍 고교평준화해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교육부가 고교평준화해제 여부를 각지역의 고육위원회에 위임함으로써 평준화해제의 가능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우선 전북지역에서 내세우는 고교평준화 해제론의 근거를 보면 연합고사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평준화제도로 인해 중학생의 학력이 저하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서울대를 비롯한 일류대 합격률이 타도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고, 이는 고등학교 학생의 성적저하로부터 연유한다고 본다. 이것은 물론 전국적으로 평준화 해제의 큰 요인을 하양평준이라는 데서 찾는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중고생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아닌 경쟁입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단위의 능력별 집단편성(우수한 학생은 우수한 학생끼리 열등한 학생은 열등한 학생끼리 모아서 가르치는 것)이 성적을 높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고 능률적이라는 것이 평준화 해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장이다.
이상의 고교 평준화 해제 근거들이 얼마나 교육적 타당성을 갖는 것일까. 먼저, 명문대 입학률로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 자체도 문제일 뿐 아니라, 평준화로 인해 실제 학생들의 학력이 하양평준화 되었다든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연구결과나 자료는 나온바가 없고 설령 학력이 떨어졌다해도 그것이 평준화 제도 자체에서 비롯되었다는 근거도 없다.
그런데 해제론자들은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객관적 증거도 없이 학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하면서, 그 원인을 평준화 제도에서 찾고있다(그리고 학력의 의미를 성적수치와 동일시 할 수 있는것도 아니다. 평가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해제론자들의 주장처럼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능력별 집단 편성이 학업성적을 향상시키는데 효과적이라고 일관성있게 밝혀진 것은 없다. 그보다는 학생의 재능에 맞는 교수, 학습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ㅇ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급규모의 개선 교사의 자율성확보, 과밀학급 해소를 위한 재정확충, 획일적인 교육방법 탈피, 평가내용의 변화 등 개혁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능력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고려한 교수, 학습 방법을 고려 해야지 그에 대한 노력은 없이 학생의 능력 차이만을 문제삼아 능력별로 편성하여 차별교육 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교수 편의주의'라고 밖에 볼수 없는 것이다.
사실 능력별 집단편성을 하게 되면 중하위 능력집단의 학생들은 학업성취와 학습태도에 있어 매우 부벙적인 결과를 보인다. 반면 혼합집단 속에서 협동학습이 이루어질 때 전체 학생들의 학업성취와 사회적 관계가 좋아진다는 것을 많은 연구들을 보여주고 있다.
고교평준화해제가 가져올 비교육적 결과는 심각하다.
중학교 교육과정이 입시를 위한 교육으로 파행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입시위주의 교육, 점수 높이기식 교육은 진정한 교육과도 거리가 멀다. 단지 만국병이라 불리고 있는대학입시 위주의 교육, 입시지옥을 중학교, 교육단계까지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고교입시가 부활하면 초 중등학생의 과외수요가 급증하게 되고 이는 사교육비 부담등 사회적 병폐를 가중시킬 것이다. 현재의 대학입시를 위한 온갖 종류의 과외수업과 학원과외, 연간 20조원 규모의 사교육비에 따른 사회적 폐해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현행 입시위주의 교육이 청소년 문제를 야기시켜왔고 따라서 현 교육풍토를 변화시킬 것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고교입시마저 부활된다면 청소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대다수 학생을 소수 우수한 학생들의 들러리로 만들면서, 또한 이류, 삼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평생 따라 붙는 낙인(라벨링 효과)은 청소년들에게 심리적 열등감을 조성하고 건전한 성장을 저해 할 것이다.
고교입시의 부활은 교육기회의 계층화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다. 1977년 상위 작업계층 12.8%가 대학진학의 80%를 차지하고 특히 이 신중산층이 명문대 진학기회의 02.9%를 차지하는 데 1994년 현재까지 이러한 현상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대학진학의 기회의 획득에서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고등학교 수준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평준화 해제의 교육적 근거는 타당성이없을 뿐만 아니라, 해제에 따른 비교육적 결과도 심각하리라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평준화제도를 폐지하고자 하는 주장이 일고 있는 숨겨진 이유는 무엇인가? 평준화제도의 페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일부 신흥 사립학교는 입시부활을 통해 일류고로 도약할 것을 꿈꾸고 있고, 또 과거의 일류고의 명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학교들간의 이해단계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사립학교 교장들, 과거 일류고 동문들이 가담하고 있다.
또한 출세와 성공의 도구로서 특히 학교교육에 집착하는 중류층 학부모집단은 자기자녀들에게 세칭 일류라는 KS마크를 붙여주고 싶어한다. KS마크는 잘못된 학력주의적 사회풍토에서 유용한 사회적 자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학연, 지연, 군맥등으로 연결되어 있는 특이한 한국사회의 특권구조 속에로 들어갈 수 있는 확실한 발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간 평준화 제도의 시행 결과 중등교육의 보편화, 중학교 교육의 정상적인 운영, 학교간의 극심한 격차 완화, 과열 해소, 고교재수생 일소, 고교학벌중시 풍조 완화, 일류고의 학연으로 이어지던 사회 엘리트 집단의 풍속도 변화등 많은 교육적, 사회적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었다. 물론 평준화 제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간의 교육여건이 같지 않은 채 학생들을 강제로 배정했다는 점이 그 대표적 경우이다. 학교간에 교육여건이 같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학부모가 열악한 환경의 학교에 자녀가 배정되는 것을 원하겠는가?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고교입시부활이 아니라, 교육여건을 일정한 수준으로 비슷하게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급규모의 개선, 과밀학급 해소를 위한 재정확충, 학교풍토의 개선, 교사의 질적 향상, 획일적인 교육방법 탈피, 평가내용과 방법의 변화 등 개혁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때만이 교육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게 될 것이다.
고교평준화해제는 지금 거의 모든 학부모들에게 당면한 중대사이다. 일류고는 한정되어 있는데 거의 모든 학부모들은 나의 아이들만은 경쟁입시에 성공할 거라는 자신(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경쟁입시 부활은 내 아이만 불고 떨어지고이 문제가 아니다. 더 삭망해지고 긴장되어가는 사회분위기, 사회의 불평등화, 정상적인 인격형성의 저해...
누구를 위한 입시부활인가. 교육의 방향을 과거로 회귀시키고 있는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