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3 | [건강보감]
숨만 쉬면 산다
정영원 완산구 보건소장
(2004-02-05 14:30:24)
우리가 가끔 어리석은 듯이 "숨만 쉬면 살 수 있어"라고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럴 수 없도록 하는 상황을 뼈저리게 경험한 적이 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마침 수술을 마치고 퇴근하시던 분이 "왜 이런 아이를 그대로 두고 있어?"하는 말에 놀라 그 아이를 바라보았을 때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있는 생후 약 2개월된 아이가 이미 다 죽어 가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아이의 코와 입 전체를 내입으로 덮고 숨을 불어넣었다. 너무 센 입김으로 작은 가슴이 혹 다칠 것 같아 오르고 내리는 아이 가슴을 보면서 평소 숨 쉬는 것보다는 조금 자주 입김을 불어넣었다는데 다행히 곧 화색이 돌아오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소아과 전문의 선생님 말씀은 나로선 아무 방법이 없으니 앞으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숨을 한번 못 쉰 것 말고는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 물어 볼 말도 없었다. 그 때가 오후 8시쯤이었는데 약 5분내지 10분정도 숨을 불어넣었으면 겨우 약 10분 정도 괜찮다가 다시 숨이 멎으면서 얼굴이 새파래지며 죽어가기 때문에 계속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아이를 데려온 할머니는 전혀 희망이 안보였는지 그만 포기하자고 했다. 물론 진정으로 포기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곧 회복될 것 같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숨을 불어넣는 일을 반복하였으나 새벽 3시쯤 되어 그만 지쳐 쓰러질 것 같았고 할머니의 포기 권유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리곤 자리에 앚아 잠깐 쉬고 있을 때였다. "아직도 따뜻하네요"하는 말과 함께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의 품속에 손을 넣고 있는 모르는 아줌아의 모습이었다. 다시 사색이 다된 아이에게 가보지 않을 수 없어 다가가 들은 아이의 심장 뛰는 소리는 지쳐 혼미한 정신을 바짝 들게 하였고 다시 숨을 불어넣는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후 아이는 새벽 6시경 정상을 되찾았고 소아과에 입원후 특별한 치료 없이 정상 상태로 퇴원하였다. 그 때의 일은 한 순간이었지만 상상할수도 없는 생명에 대한 포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게 아찔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다행이도 아줌마의 가르침은 헤어나지 못할 뻔한 더 큰 부끄러움에 빠지지 않도록 하였고 지금도 항상 내게 환자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은 성실하고 따뜻한 관심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정말 그 때 그 아이를 살린 것은 고도의 의술이 아닌 시골 아줌마의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코에 숨을 불어넣는 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