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3 | [파랑새를 찾아서]
길도 아닌 길, 그 산행의 묘미
『지리산- 그 시작』
조연 산모임 두류패 회원.남원고등학교 교사
(2004-02-05 14:34:14)
혼돈 속에서 장엄하게 들어 앉아 영원히 침묵하고 있는 듯한 산 덩어리- 이곳은 그냥 산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 가 사방으로 뻗어나고 있다. 어느 곳 에서도 산자락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놀이가 아닌 등산이란 보통사람들이 본다면 참으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아무리 인간이 호기심이 많고 미지에의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렬하다 하지만 등산 중에 산에서 목숨을 잃어버리는 산사람들의 숫자는 지금까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인류가 처음 동굴에서 삶을 시작 했을때에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동굴 밖을 바라봤을 때 그들은 매일매일 새롭고 , 두렵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산사람은 산에 들어서면 항상 경의로움과 경회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수없이 드나들던 그 계곡, 그 능선, 그 봉우리가 똑같은 산행이 되어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산행의 시작은 일상을 벗어나는 신나는 일이다.
"어! 주말에 산행하세" 이때부터 산행을 위한 팀웍과 산행방법이 논의 되고 소위Indoor Climbing이 시작된다. 기상 상태를 점검하고 산행시간과 하산길을 결정하고 토의한다. 물론, 작은 배낭하나 짊어지고 마음 내키는 대로 훌쩍 여행 떠나듯이 하는 산행도 있을 수 있다.
"산행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계곡이나 능선에 올라 고기 구워 술이나 한잔 나누어 먹고 땀좀 흘리고 오면 되는 거지 "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놀이 산행에 우리의 산악 선배인 김장호님 -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의 산악 수필을 썼으며 그 외에 수많은 수상집을 출간했음 - 은 평범한 산행에 깊은 사색을 넣어주고 심오한 자연철학과 원시의 고행같은 산행을 예찬했으며 고된 산행에 노스탈지어를 주고 있다.
한번은 산행 중에 김장호님이 우연히 한 외국인 신부와 동행을 하게 되었는데, 초행인 외국인 신부는 혼자여서 나이 지긋한 그를 따라 나서기로 마음을 정하고 난 후에 그에게 다가가 산길을 잘 아느냐고 물어보기에 그는 물론 잘 안다고 대답했었다.
이에 안심하고 뒤를 따라나선 신부는 한참을 뒤따라오다가 널따란 산길이 점차 좁아지고 더 들어가서는 길이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숲길사이로 헤집고 들어가더니 암장을 오르고 하는 어려운 산행이 되자 당황한 그 신부는 " 산길을 잘 안다고 하여 따라왔는데 길도 아닌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불평을 하자 김장호님은 "저 계곡아래 넓은 산길은 옛날에는 나뭇꾼이 나무하러 다녔고, 약초꾼이 약초캐러 다녔으며 산기도 하는 아낙들이 출입을 했고 지금은 장사꾼이 음료수 장사하러 그 길을 다니며 건강 장수를 위하여 산에 오르고 운동 선수도 체력단련을 위해서 뛰어 다니는 길입니다. 등산의 시작은 길이 아닌 곳 에서부터가 진정한 산행입니다." 라고 답변하자 신부는 그를 보고 "당신이 시인이십니까"라고 물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산행중 어려움을 겪는 일도 많다. 운행 중에 부상당하고, 폭우나 푹풍설과 같은 자연 재해를 만나기도 하나, 항상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중력이다. 자신의 무게가 적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무게가 적이 되는 것이다. 이자신의 무게와 산행에 생명줄과 같은 배낭 속의 식품과 장비들의 무게는 산사람에게는 업과 같은 것 일터이다.
시지프스(Sisyphus)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악했던 왕으로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져 커다란 돌을 산 위에 올려놓는 형벌을 받았는데 그 돌을 꼭대기에 올려놓자마자 굴러 떨어져 영원히 그 바위를 다시 올려놓기를 되풀이하는 벌을 받음 - 의 바위처럼 어차피 다시 내려와야 할 그길을 자신의 체중과 배낭을 짊어지고 오른다.
시지프스의 숙명적인 형벌과는 다르다. 우리가 택한 참으로 기꺼운 마음으로 오른다. 그 무게는 나눌 수도 대신할 수도 없는 고독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 산 정상에서 가파른 릿지(Ledqe)에서, 칼날 같은 바람 부는 능선에서, 외로운 숲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산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앞사람 구두 뒤꿈치만 바라보며 뒤쫓던 산행이 여러 해 계속 되었다. 그 산행이 직업도 아니고, 취미라고 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그냥 호흡하듯이 자연을 찾아 나선다. 자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지독하게 고된 산행을 하고 나서야 살아 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리라.
산행중 한걸음 한걸음이 정상에 이른다. 도약이란 없다. 성실한 걸음만이 정상을 밟는다. 이렇듯 산사람은 잡스런 산행을 배제한다. 어느 산사람도 코가 땅에 닿을 듯 한 계곡이나 가파른 능선에서 걸음걸이를 세지 않는다. 목까지 차 오르는 숨을 고르며, 잠시 멈추고, 다시 몇 걸음 오르고 ...............
이 작업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고난 속에서 온갖 상념들은 거처를 잡지 못하고 끝없이 펼쳐진다. 되풀이되는 생각, 새롭게 나타나는 세계들, 어느 때는 화두를 찾아 매달리나 산사람들의 화두는 끝이 없다. 산행이 놀이만 될 수가 없다. 민족의 영광도 기원하고, 처절한 역사도 되새기고, 못 이루었던 꿈의 편린도 있고, 헤어졌던 연인도, 어떤 때는 노래가 락 일수도 있다.
같은 계절, 같은 산길, 동료일지라도 같은 산행은 없다. 기후가 다르고 우리의 마음이 다르니 항상 새로운 산행에 이른다. 산행 그 자체는 일생의 삶은 아니다. 문명의 옷을 벗어 던지고 욕심도 버리고, 자신조차도 버리는, 무아를 찾아 정진하는 산사의 스님처럼 우리 산사람들은 고생을 바탕으로 물리적인 높이인 산꼭대기에 올라갈 뿐 만 아니라 하늘 가까이 다가가는 구도행위를 한다. 구도 하듯 산행에 나서고 배낭의 무게는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시간의 흐름도 없다. 폭풍설 몰아치는 북쪽 계곡에서 가슴 밑에서 시작되는 깊은 호흡소리가 눈 덮인 계곡에 간간히 들린다. 쌓인 눈은 벌써 무릎을 넘어 가슴까지 차 오른다.
"그래 이쯤이면 해발 천삼백미터쯤 되겠군" 고도계를 흘끗 본다. 피켈을 눈 속 깊이 집어넣고 다시 한 걸음 옮긴다. 설벽에 붙어 있는 우리는 하나의 점이다. 열 걸음도 채 못 가서 목까지 차 오르는 숨을 가다듬고 다시 오른다. 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는 그 길을 온종일 개척하고 있다. 텅 빈 것 같은 겨울 산, 침묵의 겨울 산, 그러나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스스로를 돌아다 볼 수 있는 이 겨울 지리산을 찾는다.
모두다 받아주고, 다 감싸주고, 다 용서하며, 무섭게 침묵하고 있는 이 지리산에 사람이 찾아와 삶만큼이나 큰 고난의 산행을 한다. 계곡이 끝나고, 능선에 올라서면 숲 소리를 일으킨 바람은 산등성이를 지나면서 울부짖는다. 산이 소리를 지른다. 정상에 이르면 나는 어데로 가 버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