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5.4 | [건강보감]
술꾼의 잔정이 한 목숨을 살리다
정영원 완산구 보건소장 (2004-02-05 14:37:16)
많은 날 아침이면 중국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서해의 섬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군사기지로 쓰이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포근함을 함을 자는 섬이었으며, 아침 먹고 한바퀴 돌면 그날 하루는 치료할 일이 없을 정도로 인구도 적었다. 그런데 하루는 어느 술집 앞을 지나는데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이 아침부터 취한 듯이 목소리로 이 집아가씨가 배가 아프다고 하니 좀 보아달라는 것이었다. 헌데 주인인 듯한 사람이 자주 그러니 꾀병일 거라고 해서 보건지소로 환자를 보내라고 하고 보건지소로 가서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환자는 오지 않고 그 술꾼만이 찾아와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사정을 하며 그 집에 가서 한번 진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분의 간청을 뿌리 칠 수 없어 따라나섰는데, 무척 고마워하며 자기느 단지 술꾼일뽄인데 아가씨가 안타까워 이렇게 찾아 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아로 자란 아가씨로 술집에 살면서 자주 배가 아파하는데도 치료 한번 받지 못했느데 유난히 오늘은 더아파한다는 것이었다. 아파하는 곳은 좌측 아랫배였고, 가끔 아팠으나 곧 좋아졌기 때문에 이번에도 곧 좋아질 거라고 했다. 사실 별다른 증상이 아니어서 잠시 머뭇거릴 때 술꾼은 다시 사정하 듯 오신길에 자세히 좀 진찰해달라는 것이었다. 일어 서려다가 같이간 간호원에게 그야말로 정식으로 혈압, 맥박, 체원을 모두 측정하게 하고 주저했던 아랫배도 좀더 자세히 먼져 보았으나 혈압이 약간 상승한 것을 제외 하면 별다른 것이 없어 다시 아프면 열락하라며 되돌아왔다. 얼마후 다시 찾아온 술꾼을 따라 갔을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혈압이 처음 잰 것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술꾼이 처음 찾아왔을 때 약간 의심했던 자궁외임신을 강하게 의심했다. 골반내염증이었다면 열이 있어야 할텐데 열도 없었고 그렇다고 변비로 보기엔 통징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혈압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내출열이 있지 않은가 생각되어 급히 이장을 통해 해군의 협조를 요청했고, 다행히 곧바로 함정을 타고 육지의 병원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계면쩍은 것은 수술결과 자궁외임신이 아닌난소낭종의 염전이었다. 말하자면 난소에 혹이 생겨 그 것이 커지고 꼬여서 터지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그대로 두면 자궁외임신과 마찬가지로 사망하는 질환이다. 아마 통증은 이루 말할수 없을 만큼 심했을 텐데 조용히 견디어낸 아가씨의 처지가 매우 안타까워 보였다. 아무튼 그 다음날 신문에 자궁외임신으로 쓰러진 아가씨를 해군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살릴 수 있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술꾼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사람을 살린 사람은 그 술꾼의 잔정이었기 때문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