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4 | [문화비평]
삐삐, 송신하는 세상
곽병창 연극연출가 「창작극회」대표
(2004-02-05 14:37:49)
돌사탕이 먹고 싶어 안달이 나서 어머니의 치마폭을 붙들고 칭얼거리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야가 왜 또 송신이다냐?" 하시며,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는 나를 나무라셨다. 하지만 이미 머리 속에서는 돌사탕의 그 단단하고도 달콤한 맛이 가득 괴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 크게 떼를 쓰곤 했다. 한번 어머니에게 보낸 나의 신호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되어 되돌아오지 않고 있는 그 상황이, 그 신호를 보내기 전보다 더욱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어머니가 내 뜻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핑계를 대며 실행을 미루고 있다는 것까지 분명히 안뒤였으니, 그 실행의 순간이 자꾸 늦춰지는 건 참 약올리는 일임에 분명했다. 그렇게 연거푸 송신을 해대면 어머니는 마지못해 다른 일을 미루시고 그 일을 서둘러 해결해 주셨다. 그때 어머니가 '아 달이 나서 자꾸 졸라댄다'는 뜻으로 사용하던 '송신'의 뜻이 '送神'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송신(送信)을 해야 하고 답신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고 느끼면서도, 삐삐를 허리춤에 달고 다니는 모양새가 싫어서 오래 머뭇거렸다. 모양새뿐 아니라 그걸 차게 되면 하루 종일 영락없이 누군가에게 끌려 다니는 느낌이 든다는사람들의 이야기도 대충 그럴 듯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공연 시작 전에 꼭 누군가가 관객 앞에 나서서 '삐삐는 진동으로!'를 외치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도 급할 때는 상대방의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군가의 삐삐를 울려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몇 가지 궁금해졌다. 삐삐를 치고 전화통을 노려보며 기다리다가 두 번째 치게 되기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상대방의 처지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 허리춤에 비록 삐삐가 없어도 나는 이미 삐삐에 묶여 있음을 알았다. 누군가의 답신을 기다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허공을 향해 날려 보내는 나의 이 送信질
후세에 누가 있어 이 90년대를 자유민주주의가 활찍 꽃핀 번영의 한 시대라고 불러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금 분명히 전장에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발달된 무선통신망을 무기 삼아 밤낮없이 빗발치게 '누구누구 나와라 오바!'를 외치며, 적진의 한복판을 내달리고 있는 거이다. 물론 그 적은 자기 이외의 모든 존재들이다. 자기와 교신하고 있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타인이 잠재적인 '적'이 다. 그 적은 물론 이 시대의 잘 나가는 호칭으로 이른바 '경쟁상대'일 터이지만 어딘지 약해 보인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 만인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벗들이 끼어 있다. 직장동료가 있고, 동문이 있고, 사랑하는 애인도 있다. 나아가서 그 적들속에 어버이도 자식도 끼어있다. 그렇다면 이건 이미 '경쟁사회'가 아니지 않은가? 왕조시대에 최고권력을 두고 피비린내를 풍기던 골육상재의 냄새가 이 화려한 자유민주주의의 구석구석에서 스멀스멀 풍겨 나오고 있다. 변화한 시대의 새 왕권인 물질을 향해서 벌이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이 대전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물질을 불리기 위해 벌이는 전쟁 말고, 사랑을 위해서 그이와 그녀를 호출하는 이들마저도 짤막한 전투를 치르듯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면, 삐삐 때문에 불화를 겪는 모든 연인들또한 이 전재으이 유탄에 맞은 부상병들이다.
(풍경하나)첨단시민 돌쇠씨는 오늘도 삐삐를 기다린다. 신속한 탄약보급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연락이 오지 않는 야속한 전우를 저주하며 또 한 번 송신한다. 마지막에는 전황이 더욱 위급함을 알리는 암호1818을 덧붙인다. 도시의 지붕위에는 사방 각처에서 올라온 무선의 신호들이 뒤엉켜서 난무를 추고, 돌쇠씨의 머리 위로는 부아가 끓는 듯 김이 모락모락 솟아 오른다. 눈동자에 슬슬 핏발이 돌아서 바람이라도 쐴 겸 거리에 나서니 거리에 가득 이빨 가는 소리와 몸을 부르르 떨며 뒤채는, 바로 그 소리
'선량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이라는 수사를 즐겨 사용하면서 세태탄식의 예봉을 지그시 눌러 보려 했던 많은 논객들이, 이제는 그마지막 수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누가 마지막까지 선량할 수 있는가? 확전일로의 길에 들어서 있는 이 허허벌판 전장에서, 진정 평화주의자의 길을 걸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마지막몽상) 그런 점에서 이끝없는 송신의 세상에 아직도 편지를 쓰며, 공원 벤치의 데이트를 기약하는 게으른 문명인들에게 축복 있기를 그들을 위해서 신호의 전달에 느리고 답신을 재촉하지 않는 바보 삐삐가 만들어지기를 그래서 그들의 거북이 걸음이 진정 탄탄하고 인간적인 첨단문명을 만드는 일에 쓰여질 수 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