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4 | [문화시평]
돋보인 무대, 그러나 건조한 감동
극단 무천의 『메디아』
김정수 연극인 문화저널 편집위원
(2004-02-05 14:55:15)
검은 막 한 복판에 커다란 액자가 있다. 계단이 있는 벽을 파스텔조로 그린듯한 그림이 그 액자에 들어있다. 객석의 불이 꺼지기도 전에 스며나오는 하얀 드레스의 신부복 차림의 여자가 그림의 한쪽으로부터 액자를 빠져 나온다. 『메디아』는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배우 강수연이 연극무대에 처음으로 선다는 점 때문에 공연전부터 많이 알려진 작품이었다. 아마 전주의 관객들도 작가나 연출의 이름 때문에, 혹은 희랍비극『메디아』에 대한 개인적 관심 때문에서라기보다 강수연이라는 이름으로 극장을 찾은 경우가 더 많았으리라. 그러나 무슨 이유였든지 간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시종 진지하게 관람했고 반응을 찾아 보기 힘들만큼 엄숙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깔끔하고 정갈하게 처리된 무대와 배우들의 동선, 가벼우면서도 무게를 더하는 대사, 메디아 역의 강수연이 보여주는 성실한 연기 자세에 압도된 탓이라고 보는 것이 일단은 타당할 것이다.
『메디아』는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중 하나인 유리피데스의 작품이름이자 주인공이름이다. 이 무렵 연극들은 모두 소재를 신화나 전설에서 가져왔기에 극적인 긴장이나 갈등의 지속보다도 불가항력적인 숙명의 힘이 극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메디아』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유리피데스의 『메디아』는 그 무렵 작가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극의 특징을 심리극, 또는 사실주의극 이라고 말하여지는만큼, 그는 당시의 정치, 종교, 철학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대담하리만큼 시사성 있는 문제를 다뤘으며 여성 문제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옹호를 보였다. 남성에서 당하는 사랑의 배신을 분연히 일어나 처절한 방법으로 복수하는 여성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당시 결혼제도의 모순점을 비판했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것이 바로 이『메디아』인 것이다.
이『메디아』가 현대적 감수성으로 재해석되어 무대에 오르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더구나 인정받고 있는 연출가와 능력있는 배우가 보여줄 조화가 기대되는 일이었다.
연출가 김아라는 그 특유의 무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회백색 뒷벽과 검정색 그랜드 피아노가 강력한 색조 대비로 무대의 배경을 차지한 가운데 직선과 곡선이 간결한 조화를 이루면서 관능적인 코러스의 움직임도 차갑게 느껴질만큼 섬세했다. 또박또박 던져지는 시적 운율의 대사들도 단순한 언어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투명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더 이상 절제될 수도 더 이상 풍성 할 수도 없는 연기, 무심히 구르는 붉은 공 하나도 놓칠수 없는 흡인력, 끊어진 듯 이어진 듯 시종 무대와 함께 있는 피아노 마술은 사람이 내뱉는 언어처럼 자연스러웠다
김아라의 『메디아』는 고대 연극에서 나타나는 주술적인 힘, 불가사의한 신비감을 시각적으로, 또 음악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은 이러한 작품의 높은 완성도가 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기에 수천년간 살아남아 우리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사랑과 질투, 배반과 복수라는 주제를 던지고 있는데도 쉽게 동화되지 않는 원인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연출은 그의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내면에 가득한 파괴와 생성의 소음들, 이 모든 것들을 음악으로 눈에 보이는 미적 공간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시공을 초월한 우리식으 ㅣ한판 음악극으로 이 메디아 환타지를 구성해 보았다"고
그러나 정작 관객들에게는 음악극이라 하기에 회화성이 강하고 회화성을 탐닉하기엔 문학성이 버거웠다. 나아가 유희개념을 확장시키는 장치로서 코러스의 역할은 희랍비극에서 보이는 최소한의 기대와 달리 관객들과의 거리를 좁혀주지 못했다. 또 극내부에서 가장 원색적이고 본능적인 꿈틀임이 폭발한 듯 응집되어야 할 부분에서도 나름으로 생선된 관념적 유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게 만들었다.
세계적 배우인 강수연 연극무대에서는 낯설게 보였다. 숙연해질 정도로 혼신을 다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지만 메디아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구축하는데는 부족해 보였다. 희곡상의 메디아 1,2,3이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설정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쇠를 녹일 정도로 복수의 불을 뿜는 모습을 기대하기엔 아직도 강수연의 얼군은 어린 동안이었다.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공연장과 그 시설, 기본적인 조명마저도 소화해내기 힘든 무내구조, 산만하게 배열된 객석의 잔북학생회관 공연에서 그래도 그만한 작품을 공연할수 있었다는 역량에서 새삼 달리 할말은 없다. 지방 연극이 늘 우려하는 "유명배우를 앞세우는 상업적 연극"운운도 사실 이 『메디아』는 비켜갔다. 유명배우를 앞세웠따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그 상업적 목적보다 실험적정신이 훨씬 돋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 비극의 향취를 현대적 감각으로 맛봤다는 즐거움 이외에도 『메디아』는 과연 우리 정서에 부합하는 그래서 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우리의 극은 무엇일까 하는 과제를 남겨주었다. 우리에게도 그리스 못지 않는 문화적 감수성이 있고 연극적 전통이 있다. 아직도 좋은 작가, 훌륭한 연출가를 기다리는 이야기들이 때묻지 않은 역사의 뒷켠에서 숨죽여 밖을 내다보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