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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4 | [문화저널]
박남준 시인의 편지 선암사의 미소로
박남준(2004-02-05 15:04:57)
선암사에 갔습니다. 구례를 지나 산동을 지나 조계산 선암사 가는길가엔 봄날의 햇살을 터트리면 저러할까 노오란 산수유꽃빛 처연해 보입니다. 문득 가까이 혹은 먼 산자락에 이른 진달래도 띄었습니다만 희고 연붉은 매화꽃, 사태처럼 피어나서 차창을 열지 않아도 파르릉 거리며 매화향내 날아든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꽃빛에 따라서 들고 일어나는 마음이 변덕을 부리는 것을 보며 씁쓸한 자조가 파문져 있습니다. 산문에 들었습니다. 봄 기지게를 켜며 깨어나는 산빛 쇄락한 풍경, 언제 가보아도 눈에 띄게 화려하지도 웅장하여 주눅이 들게 하지도 않은 선암사는 한폭 담담한 수묵화같아서 그때마다 가만히 고개 숙여지는 곳입니다. 고답스런 신사, 깊은 불법 한편을 스르릉 열고 지허스님이 차를 우러내시며 잔잔한 미소로 건네시는 말씀, 어려운 시를 쓰느냐고 시는 참 어렵더라고, 스님들중에도 더러 시를 쓴느 이들을 보았는데 선방에 들어 참선을 하시다가도 불쑥불쑥 일어나 시상이떠올랐다며 지대방으로 나가시는 걸 보았다고 한 이십년 선을 하며 기다렸다가 시를 써보면 어쩔가 하시는 말씀, 그 말씀 저를 일러 가르킨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참 부끄럽고 부끄러운 그야말로 할! 이었습니다. 언제 다시 선암사에 가서 스님의 그 말씀 몸서리쳐질때까지 살아볼 일입니다. 지허스님께 다리를 잘놔달라고 했더니 동해했던 이쁜 상일 스님은 자기에게 잘보이면 된다고 하시며 선암사 맑은 개울물로 웃으셨습니다. 어떻게하면 잘보일수가 있느냐니 스님은 제가 스님에게 자주 웃어주며 노래를 불러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다리는 잘놔질 것같습니다. 여기기저기 금이가고 놓은지 얼마되지 않아 무너져 내리는 시멘트나 철제다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 변치않고 그치지않는 향기로운 마음의다리, 선암사 올라가는 천년의 무지게 돌다리로 튼튼하게 말입니다. 뭐라고 하나요 그런걸 보고 따논 당상이라 일컫던가요. 목청이 좋아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은 나름대로의 편곡으로 그 분위기를 인정받고 있는 편이니까요. 다소 지루할 정도로 아랫목에 놓은 엿가락처럼 늘여빼는 것이 옥에 티라고나 여길지 모르지만요.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가 이빨이 참 신기하도록 못생겼거든요. 거울을 보며 가끔 웃어보았는데 대저 웃음이라는 것이 외모의 미추를 떠나 보기만해도 즐겁고 아름다운 것인데 아름다운 것은 고사하고 가관이었거든요. 그래요, 궁하면 통한다고 이 글을 쓰다보니 방법묘안이 떠올랐습니다. 파안대소가 아니라 이빨을 보이지 않는 미소, 당분간 저는 빙그레 미소로 모든 웃음을 대신해야할 것 같네요. 이 봄날 당신께 미소로 저를 보냅니다. 선암사 동백꽃 수줍은 꽃잎의 미소로, 운수암으로 오르는 길 노란 생강나무꽃, 연록빛 머위 꽃, 하얀 쇠별꽃, 연보라 제비꽃, 불성 깊은 그윽한오랜 매화나무 그 꽃의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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