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5 | [특집]
예술인의 의회진출은 절실한 선택
지방자치와 지역문화
문치상 전북일보 논선위원
(2004-02-05 15:28:40)
1. 엉뚱한 발상
몇년전 일이다. 새로운 전북예술회관 건립을 위한 자문을 구한다면서 각 분야의 예술인들을 도청회의실에 불러들였다. 가뜩이나 비좁고 어설픈 전북예술회관을 가지고 있는 처지여서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2천여명을 수용할 대규모 회관을 짓는다는 설명과 함께 얼마의 예산이 확보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새로 짓는 예술회관의 규모가 얼마가 되어야 하고 시설을 어떡해야 하며 조경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별 욕심들까지 분출되었다. 참석한 예술인들은 저마다 당국이 주문한대로 고견을 발표했지만 진지한 토론 분위기는 아니었고 그저 회의록 작성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결국 당국이 내세운 안은 「전북예술회관」(가칭) 건립을 위한 현상공모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예술인들이 동의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때서야 예술인들은 '도대체 어디에다 짓느냐'며 부지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예술인들이 부지문제를 일찍 묻지 않은 것은 부지노출로 인한 땅값 상승을 우려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현상공모 문제가 이미 터져 나오고 부지선정이 끝나고 이미 매입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국의 대답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 '부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을 서둘기 위해 설계부터 해 놓겠다' 는 것이었다.
부지의 생김새나 높낮이 그리고 주변여건을 고려치 않은채 평면위에 세울 것을 전제로 현상공모라니…. 참으로 기막힐 일이었다. 전주의 서신동 어디에 수박만평의 신시가지를 조성하고 그곳에 도청과 예술회관이 함께 옮겨진다는 소문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도청의 한켠에 부속건물로 예술회관을 짓는데 무슨 지형조건이 필요있겠냐는 발상인 것 같았다.
아무리 건축에 문외한일지라도 자문에 응한 예술인들이 그냥 넘겨 버릴 수는 없었다. 결국 탁상에서 이루어진 엉뚱한 발상은 철회되고…. 그 이후 상당 기간 도청이전문제나 예술회관 건립문제는 침체속에 빠지고 말았다.
2. 자랑거리 없는 전북
1981년 연말에 완공되어 82년 3월 10일 개관된 현 예술회관은 부지 3백55평에 연건편 1,415평이다. 4층 건물인 예술회관은 1-2층이 전시실이고 3층이 사무실 그리고 4층은 공연장으로 780석 규모다. 장소가 협소하고 편익시설이 절대부족한 것은 불문가지이고 주차공간이 없어 도심지 교통난까지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새로운 예술회관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주 바뀜에 따라 예술회관 건립문제는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거기다 전주시는 시대로 전북대와 합의를 했다는 전제 아래 전북대학교 부지에 대규모 시민종합예술회관을 U대회 이전에 완공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성급한 발표로 끝나고 말았다. 국가재산인 전북대 부지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충분히(발표 이전에)검토한 후에 청사진을 내놓는게 순서였지만 절차도 무시되고 전시효과만을 노린 결과였다. 부지사용동의를 해준 대학이나 가능성조차도 점검하지 않고 일을 서두른 시당국에 결국 시민들만 피해를 본 셈이다.
예술의 본향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고 살아온 전북인으로서는 너무 안타깝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전북에서 자랑할게 뭐 있는가? 균형있는 지방정치제도의 정착인가? 아니면 지방공업의 활성화에 따른 소득의 고장인가? 4개의 국립공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관광전북이라는 이름도 얻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과연 무엇을 대표적인 자랑거리로 내놓을 수 있을까?
동학혁명의 발상지 그리고 예맥이 살아 숨쉬는 예술분야가 아니고서는 이렇다 하며 내놓을게 없다. 걸핏하면 맛의 고장이요 멋의 고장이라면서 맛과 멋의 되살림에 소홀한게 또한 전북인 것이다. 전국 어디를 가나 전부비빔밥을 맛볼 수 있고 전국 어디를 가나 예향이라는 닉네임을 앞세운다. 그렇다면 과연 전북은 예향인가? 풍요의 고장이 대명사였던 시절만을 상기시킬게 아니라 오늘에까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또는 이어지고 있는가를 점검할 시기가 왔다. 맥없이 말로만 예향을 찬미하다가 오늘에 산다. 그러니까 권력을 쥐고 있는 행정당국이 이 고장 주민은 물론 예술인들의 정서는 뭉개버린 채 제멋대로 예술행정의 잣대를 늘였다 줄였다 한다.
3. 신발에 발 맞추기
공무원을 탓할 일도 아니다. 방대한 예술의 각 분야별 특성이나 창작과정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감상이나 관람력만으로 예술행정을 다스리거나 입안하기는 어렵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조예가 깊은 것은 더구나 아니다. 인사이동에 따라 적재적소가 아닐지라도 자리를 물려 받아 전임자들이 해놓은 서류만을 근거로 예술정책이 수립된다. 어느 정도 예술업무에 익숙해질만하면 그때는 또 자리를 옮긴다. 일관성이 없고 전문성이 결여된 예술행정은 그래서 체계적이나 조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그때그때 땜질 형태로 메꾸어지고 있을 뿐이다.
충분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준비와 연습과정이 필요한 작품들이 시간에 쫓겨 대충대충 발표되고 공연된 적이 어디 한두번이었던가?
왜? 어째서? 그만한 투자가 필요한가도 검토될 겨를없이 신발에 발을 맞추는 식으로 예산도 편성된다. 워낙 가난한 예술계이기에 그나마 감지덕지 신에 발을 맞추는게 현실이다. 그나마 큰신이나 준다면 언젠가는 발이 크리라고 기대라도 갖겠지만 항상 적은 신발을 지급한다. 그래서 늘 발이 아프다. 몸둥이에 비해 발이 너무 적이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퉁퉁부은 발로 얼마나 더 걸어 갈 수 있겠는가?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집행부의 모순은 이를 바로잡아야 될 의회쪽도 마찬가지다. 예술쪽의 전문인이 의회에 진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집행부의 일방통행을 가로막아야 되겠지만 외고집으로 살고 있는 장인들이 선거에 출마할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예술계 사람들이 의회의원을 대상으로 향토예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이해시키고 납득시켜야 될게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법하다. 당연하다.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다가 '예술의 예자(藝字)도 모른다' 며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 분야에 자기 삶 전체를 걸고 정진하는 예술계 사람들이 똘똘 뭉쳐 예산투쟁에 나설 지도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일단은 예술인들의 집한체인 단체의 임원들이 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지만 예술계 스스로가 단체 육성에도 소홀하고 무감각하며 선택의 폭도 좁고 진취적이지 못하다.
어쨌든 지방 광역의회에 비례대표제가 도입됨에 따라 가장 취약한 부분인 여성과 예술쪽에 그 손길이 미치리라는 예측은 가능한다. 특히 전북의 경우 마땅히 자랑할 것도 개발할 것도 없는 처지임을 감안한다면 예술의 고장으로 꽃피울 가능성은 매우 높고 그 잠재력 또한 대단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래서 전북의 경우 두각을 타나낼 수 있는 예술분야의 의회진출을 당연히 선택하리라고 믿는다. 제발 지방의회는 비례대표제의 근본목적이 상실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4. 비례제 우선권은 예술인에게
지방자치단체의 출범과 함께 집행과 의결기관의 양 수레바퀴가 한치 오차도 없이 잘 굴러가기를 바라면서 그들이 설정해야될 한가지 정점은 바로 전북예술회관의 마무리라고 서슴없이 권하고 싶다. 지난해 12월부터 재 추진된 예술회관은 금년 4월 건설부지도 확정했다. 1백억원의 부지매입자금도 마련되어 있다. 예술로 빛낼 전북의 앞날을 위해 더 이상 방치되거나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이의 원만한 추진을 위해서도 예술계 인사의 등용과 등장은 필수적이다.
전북예술의 모든 것이 함축된 예술공원은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장소로 꾸며져야 한다.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부부간도 각기 자기취향에 맞는 구경거리가 제공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언제 어느때로도 쉴 수 있는 터전이 돼야 하며 예술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 예술의 멋을 느끼기 위해서는 의례히 전주의 예술공원을 찾을 수 있는 관광의 명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일들은 누가 해야 하는가? 예술인들이 아니다. 그주역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의욕과 진지한 자세에 달려 있다. 도표에 나타난 전북의 현황을 참조하면 우리의 낙후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