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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5 | [사람과사람]
땅과 함께 하는 진짜 농사꾼 '이효신·박연희 부부' 그들에게선 살 속 깊이 흐르는 흙내음이 난다!
이진호 전북청년문학회 회원 (2004-02-05 15:37:14)
그저 처음에 원고청탁을 받았던대로 하자면 '소박한 농부와의 하루'라 할까 그 정도로 여기고 쓰겠다 했는데 막상 내용을 알고 마감날짜에 닥치고 나니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망설여지고 막막하기만 하다. 더욱이 수십 년에 걸쳐 사귄 친구사이나 피를 나눈 형제지간에도 서로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는 인간관계에서 어느 하루를 함께 하고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니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른도 안된 내 짧은 연륜으로 누구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고 관심조차 갖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의 아픔과 고민을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시대 우리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인간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TDmaus 한다. 두등산(斗升山)자락, 도계(道溪)마을에서의 하루! 두등산(斗升山)자락 아래로 도계리(道溪里)라는 작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예부터 유생과 의병이 많기로 유명하고 특히 정유재란, 임진왜란을 통해 의병장으로 활약하던 오봉 김재민 선생이 후생을 위해 세웠다는 도계서원(道溪書院)이 수 대에 걸쳐 내리 자리하고 있으며 김환익, 김상훈 등 의병장의 고택이 전해온다고 한다. 농민회 사무실까지 손수 마중나온 이효신 형의 낡은 화물차로 마을에 다다랐을 때 마을어귀에 있는 표지판 앞에서 마을의 내력을 잊지 않고 일러 주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다리 모양이 도마같다 해서 붙여졌다는 이름이 '도마다리'라는 것도, 이 마을 전체 천여마리 넘는 젖소가 길러지고 있다는 것도, 그만큼 수질오염을 비롯한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것도, 올해 청년회 사업의 하나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꼬불길을 지나 작년에 집을 내 땅을 사고 새로 지었다는 집에 도착했을 때 먼저 나를 반긴 건 몇 마리의 개와 비육우 이십여 마리였지만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일반 다른 농가에서는 볼 수 없는 노란 천의 '수입반대' 깃발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가 함께 타고온 낡은 트럭 위에도 나중에 면 사거리에서 끌고 온 구다락 낡은 경운기 위에도 비슷한 문구로 씌여진 깃발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여느 다른 농촌 마을과 다를바 없는 도계(道溪)마을의 하루는 일로 시작하여 일로 끝난다. 비온 뒤의 날이라 그런지 더욱 그렇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긴 하지만 볍씨 담그는 일도 그렇고 못자리 하는 일도 그렇고 논농사를 하는 농부들의 손이 많이 가는 때임이 분명하다. 젖소 돌보고 들을 밭일 나가고 그리고 각자 맡아보고 있는 농민회 일까지 손이 몇이여도 모자랄 형편이라 말하고 있다. 실제로 남편 이효신(32)형은 정읍농민회 정책실장과 지제제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지방자치선거를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은 상태여서 지역을 돌며 지자제에 대한 교육시업으로 자신의 일을 돌볼 여력도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 더욱이 부인인 박연희(29)씨 마저 정읍여성농민회 선전부장과 여농노래단 일을 맡아보고 있어 더욱 그렇다고 한다. "먼저 농민이 되어야 해, 운동을 하기 위한 농민이 아니라..." 먼저 농촌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어려움과 고민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고 농활(농촌봉사활동)을 통해 알게된 정읍으로 91년 2월 졸업과 더불어 내려오게 되었다. 농민운동이라고 하는 막연한 농촌에의 삶을 꿈꾸며 내려온 두 사람은 이후 많은 시련과 부딪히게 되었다.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은 안식할 수 있는 집이 없다는 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눈과 행정과에서의 회유 때문이었다 말한다. "젊은이가 그것도 대학까지 나온 손발 멀쩡한 젊은이가 뭐가 부족해서 집버리고 남들 다 떠나는 시골로 내려와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하는지" "기대 반 의문 반, 버티면 일이년 버티다가 길어봐야 오육년 살다 떠나겠지" 하는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다. 그럴 것도 그럴 것이 젊은 사람은 남으려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일찍 떠나 보내려 하는 농촌의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막상 농촌에 내려와 살면서 이전 대학시절에 보고 듣고 혹 농활이라고 하는 작은 경험을 통해서 느꼈던 점과는 다른 현실에 대한 불안이 가장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던 점으로 말하고 있다. 그 작은 경험이 농촌에 터를 잡게 하고 자리를 잡게 만들고 또한 개인의 안위를 위해 살아가기 보다는 많은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지만 이제 그들은 한 때 지나가다 들르는 농촌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으로 받아 들이며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농민이 되어야 해, 농민운동을 하기 위한 농민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농민이 되어야 해, 처절히 이론이 먼저가 아닌 실천이 필요한 농민이!" 지난 5년, 대학생활에서 채 체험하제 못한 농촌에서의 삶을 통해 그가 뼈저리게 느끼고 피부로 체험하여 얻은 진리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하루 하루 깨지며 깨치며 살아나가는 자신의 삶의 변화에서 터득한 삶의 진실일지도, 그 진실을 몸 속 깊숙이 받아들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시골 토박이인 남편과는 달리 서울에서 나고 자란 부인에게는 그간 막연히 듣고 알아왔던 농촌과는 다른 오늘 자신이 피부로 느끼는 농촌의 실정과 농민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믿음의 붕괴와 상실이 더욱 새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장가 못간 농촌 총각이 자살을 하고 장가들기 위해 돈으로 각시를 사오고 갓 또래의 젊은이들은 아이들의 교육문제니 의료문제니 갚지 못할 빚으로 장래를 위해 도시로 떠나고 마는 오늘의 농촌 농민 문제를 피부로 느끼며 그래도 한가닥 희망의 끈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을 희망의 노래로 알리려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 부분에게 5년이란 세월은 특히 30대에 이르는 5년이란 세월은 그리 짧은 세월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선택의 길이 많았을 것이고 그만큼 힘들고 괴로웠을 것이고 그 선택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이제 '일이년 살다 지쳐 나가겠지!'하던 주위의 소리는 10년 20년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아직도 이들을 바라보는 눈에는 '언젠가는' 하는 우려의 소리가 있는 것도 사살이다 인정하여도 그러나 분명한 것은 땅과 함께 하여온 5년, 그 세월은 이들에게 진정 소중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을 계속 이어가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더 아름답고 소중한 지 모르겠다. 그들에게선 살 속 깊이 흐르는 흙내음이 난다! 처음 이들 부부가 농촌에 내려와 빈 집에서 빈 손으로 시작할 때의 어려움 단지 바람을 막아줄 집의 귀중함을 아니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알았던 날들을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노래를 잘 하지 못한다는 아니 아는 가사가 없어 노래를 하지 못한다는 남편의 손을 잡고 반주없는 곡의 가사를 마디 마디 소리모아 불렀을 이들 부부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작은 일이지만 이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소중하고 부러워 보이던지 지금은 서로의 일로 인해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고 하는 아쉬움은 언제나 채워질지 모를 일이다. 선교원 마치고 오다 엄마도 아빠도 없는 빈 집이면 동네 형님벌 회장님댁에 하루종일 놀곤 한다는 그러다 잠이든 밤이면 업고 데려오곤 한다는 귀여운 국현이(4세)와 12월이면 또 다시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이기도 한 아이를 키우 듯 꿈을 키워가는 그런 재미로 살아간다는 이들 부부에겐 아직도 많은 할 일이 남아 있다. 40여 마지기의 농사와 새 싹이 자라는 밀밭, 20여 마리의 소 그리고 이들이 지금껏 지켜온 신념과 농촌과 농민에의 믿음과 사랑 말이다. "농업에 대한 전망은 없어, 솔직히 내 주위 사람들이 아니 국현이가 자라서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나 자신도 어떻게 대할지 자신없어! 그러나 농업이란 것이 그렇듯이 많이 배우고 잘 났다해서 잘 하는 것이 아니듯이 씨앗을 틔우고 비료와 농약을 제 때에 해야 잘 자라듯이 농사라는 것도 수년, 수십년에 몸으로 배우는 수 밖에,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니 말여! 농업을 단순 비교하듯 1,000원 어치 투자했다고 해서 1,100원 이상을 벌어야 하는 산업하고 비교하면 안돼. 1,000원 어치 투자해서 400원, 500원 벌어도 해야 하는 것이 농업의 특성이여!" 이들 부부의 소박한 마음처럼 농업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내게 있는지, 농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농업정책과 정치인의 자세는 어떠한지 자문할 일이다. 30여년을 두고 다시 맞은 이번 '지자제'를 두고 많은 우려의 소리가 높이 이는 것도 이해할 일이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농민을 달래가며 농업을 망쳐온 농업원칙이 바뀌어야 한다. 교육장에서 집회장에서 또 농성장에서 자주 얼굴을 대하던 이들 부부의 삶을 통해 잃었던 많은 것을 찾아간다. 흙에 대한 애정과 사랑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 모양까지도 닮아가며 말이다. 흙을 사랑할 줄 알고 그 흙 속에서 삶을 일구어 나갈 줄 아는 진짜 농사꾼! 수백 년, 수천 년을 두고 생명의 씨앗을 묻을 줄 알았던 그 자리에서 새 싹을 틔우기 위해 땀내음 밴 노동으로 싹을 키워가는 그들! 그리하여 그 싹을 우리의 영원한 대지위에 심고 마치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손길과 같이 돌보고 열매를 맞어가는 그리하여 서로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줄 아는 농부의 마음처럼 말이다! 별들보다 낮은 둥근 달이 두등산(斗升山)산자락에 걸리었다. 아니 세상보다 낮게 내려앉아 있다 해야 옳겠다. 어둠을 타고 황토현 전적지를 지나며 나는 수천 수만이 죽어간 100년전의 역사 그 함성을 듣는다. 100년이 지난 오늘, 그 역사의 현장에 세워진 야영장에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이 가르쳐지고 있는지? '벚꽃축제'로 한 장인 거리를 달리며 네온등 밝혀진 줌가에 기우는 술을 달을 본다. 땅을 가꾸듯 삶을 가꾸어가는 '이효신·박연희 부부'와 같은 이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곁에서 함께 할 때, 우리의 몸 깊숙이 흐르는 진실된 흙내음이 서로에게서 묻어나는 애정어린 사람내가 나리라 믿는다! 땅과 함께 하는 진짜 농사꾼 '이효신/박연희 부부!" 그들에게선 살 속 깊이 흐르는 흙내음이 난다! 몸 속 깊이 흐르는 땀내음이 난다! 맘 속 깊이 흐르는 사람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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