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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6 | [문화시평]
녹두 장군의 부활을 노래한 무대 전봉준 장군 순국 백주년 추모 문화공연
김병직 영상모임·대표 (2004-02-05 16:10:36)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우리는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며 국사를 공부했다. 왕조의 흥망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고, 지배집단의 동향을 중심으로 민족사의 흐름이 서술되어 있는 국사책에 밑줄을 치면서, 역사에 대해 정작 배운 것과 배우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민족의 정체성과 유구함에 대한 자긍심의 고취 대신 허무와 자기비하를 가르치고, 민족의 활동무대를 반도의 남단이나 기껏해야 한바도 정도로 테두리지어 설명하는 반쪽짜리 교육,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과 민족의 영웅에 대한 자부심 대신에 역사란 그저 먼지를 뒤집어쓴 골동품 같은 것이고 민족이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도 나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가치관을 갖게 만드는 교육. 우리는 혹 그런 역사 교육을 받으며 자란 것은 아닐까? 민주통일 운동이 활발했던 80년대를 거치며 다행히 우리 사회는 역사인식의 지평을 무한히 넓혀 나가고 있다.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재평가되는 중이다. 전도된 평가기준을 바로잡는 일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그에 따라 우리의 근현대사를 거슬로 오르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거대한 봉우리, 삼남지방을 들불처럼 휩쓸며 전국으로 번져갔던 백여년 전의 반외세 반봉건 농민항쟁은, 동학난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으로 합당한 이름을 되찾게 되었고 전봉준 장군도 민란의 수괴 위치에서 벗어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복권되었다. 전봉준 장군을 추모하는 문화공연이 지난 4월 25일 전북예술회관 무대에 올려졌다. 순국 백주기가 되는 날에 맞춰 열린 그날의 공연은, 열띤 박수를 보내며 호응한 관객들에게 장군의 높은 뜻과 업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지난날에 이어 올해에도 백년 전의 역사를 오늘의 현실이 바르게 되살리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25일의 추모공연도 전날의 행사에 뒤이어 열린 것이다. 전날인 24일에는 전봉준 장군의 단비 앞에서 추모제례의식을 지낸 다음, 황토현 전적지까지 가진 걷기대회를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그밖에도 글쓰기대회와 풍물놀이를 비롯한 문화마당이 함께 열렸다고 한다. 추모공연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전주문화방송과 함께 주최한 것으로 짜임새 있는 기획과 구성, 깔끔한 연출이 돋보였다. 지난해의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사업과는 달리 서울의 유명 연예인과 예술인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우리 지역의 다양한 예술역량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공연의 의미가 한층 살아났다. 주최측으로선 경비 문제를 우선 고려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공연 내용도 훌륭했고 지역 예술인들에게 활동 무대를 제공하여 지역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효과도 거두었다는 측면에서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 된 셈이다. 다양한 매체와 장르가 동원된 만큼 출연진의 규모도 커서 자친 등 퇴장이 혼란스럽거나 주제에서 벗어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그런 모습이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았다. 공연은 무대 전면에 황토빛의 너른 들판을 담은 대형 걸개그림이 걸린 가운데, 전북대 장인숙 교수가 제자들과 꾸민 해원춤으로 1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막이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단아한 몸짓과 부드러운 동선, 춤꾼들의 흰옷과 어우러져 빚어진 숙연한 분위기의 춤사위는, 억울한 죽음을 당해 지금도 중음심으로 구천을 떠돌고 있을지 모를 전봉준 장군과 농민군의 원혼을 극락세계로 천도하는 기권이었다. 해원춤에 이어 1부의 2장과 3당에선 소프라노 임옥경, 바리톤 최덕식 교수가 서원초등학교 합창단 어린이들과 함께, 1900년 전후와 일제 치하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노래들을 들려 주었다. 우리들 귀에 친숙한 민요와 가곡이 독창과 합창으로 이어지면서, 두 성악가의 열창과 어린이들의 고운 목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었다. 전봉준 장군은 한때 서당에서 훈장을 했다. 푸르른 보리싹 같은 합창단 어린이들의 해맑은 얼굴 위로 오롯이 부활하는 정봉준 장군이 느껴진 것은 감상의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제2부 '노래여! 마침내 햇살이여'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의 이념과 정신이 8.15해방과 4.19혁명, 그리고 7-80년대를 거치며 현재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전북 청년문학회의 창작시 낭송이 슬라이드를 이용한 격동의 현대사 장면들이 겹쳐지고 노래패 선언과 초청가수 윤선애, 안치환의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무대는 면면히 흐르는 역사의 숨결로 가득찼다. 비장미가 강조된 선언의 노래는 절제된 율동과 폭넓은 무대 활용이 돋보였고 윤선애의 울림이 풍부한 노래, 관객과의 교감을 잘 이뤄낸 안치환의 노래도 좋았다. 흠이라면 미리 녹음해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 보니 몇 군데에서 노래와 반주의 음량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던 점이다. 그리고 선언의 노래 사이의 구호성 멘트도 조금 튀는 느낌이었다. 2부 3장은 원불교 국악관현악단이 흥겨운 사물놀이와 관현악 연주를 들려주는 순서였다. 연주자 대부분이 학생이라는 데도 진지한 주제의식과 실험정신을 잘 살려 힘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해원춤을 빼면 공연은 대체로 전봉준 장군의 순국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다. 그러나 근현대 백년의 역사를 연대기적인 시간 구성을 통해 짚어보고자 했던 연출의도가 명료하게 형상화되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러나 전봉준 장군의 의로운 죽음을 추모하고 그 뜻을 올바르게 계승해야 한다는 공연의 취지는 관객의 가슴에 분명하게 와닿았고 중량감이 느껴지는 무대 분위기와 잘 만들어진 '열린음악회'를 접한 듯한 산뜻함이 관객들에게 의미있는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참가자 모두가 부르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끝으로 공연은 막을 내렸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 덕택에 우리는 올해 전봉준 장군의 영령 앞에 뒤늦게나마 제사상을 차려 올릴 수 있었다. 민족정신의 마르지 않는 수원지인 동학농민혁명과 정봉준 장군의 삶을 민족사의 본류로 되살려내는 일은 이제 시작이고 그것은 곧 새로운 민족사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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