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6 | [문화비평]
변색된 선율, 그 별리의 연극 미학
창작극회의 〈꽃신〉공연을 중심으로
김길수 순천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2004-02-05 16:12:11)
연극은 빛과 사물의 만남이다 현극은 인간 신체와 신체의 만남이다. 한 편의 연극 공연, 이는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소망과 욕구, 그 만남과 충돌의 소산이다. 이 충돌이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할 때 연극성은 살아난다.
지금 필자는 순천을 향해 달리는 기차 안에 있다. 창작극회의 〈꽃신〉(곽병창 작, 연출)공연을 보고 전주에서 순천으로 내려오는 기차여행길, 차창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낮에만 해도 신나게 움직였던 지리산 줄기 능선들, 섬진강 은어들의 모습, 이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어둠과 더불어 모든 것은 검정 실루엣으로 변용된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생명력을 상실한 사물로 변한다. 힘없는 사물들, 그 검정 실루엣 이미지는 〈꽃신〉의 마지막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사랑을 알게된 남북 연극 배우들, 분단 상황을 고려할 때 그 만남부터가 비극성을 잉태한다. '이들의 만남이 열매를 맞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 결과가 애매하여 알쏭달쏭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던 연극 〈꽃신〉, 남북 연극의 합동공연, 남북 두 대표격인 젊은 남녀를 맺어주기 위해 위기투합한다. 합동공연이 성황이레 끝을 맺을 즈음 이들은 예정에 없던 발표를 한다. "우리는 이들 남북 연극인들의 만남에 성원을 보내며 이들을 첫 통일부부로 불러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장들의 순결한 의도는 좀처럼 먹혀 들어가지 않았으니… 동행했던 남북의 기관원들이 무대를 재빨리 뛰쳐나가고, 이들의 발표 음성은 점차 시끄러워지는 음악소리에 묻히기 시작한다. 목청껏, 부지런히 외쳐보는 남북 단장들, 이들은 마치 허수아비 이미지를 방불케 한다. 왜?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기에… 그들의 언어에 그 어떤 메아리도 위따르지 않기에…
언어가 있지만 실천의 힘, 행동의 힘이 없다면 무엇보다도 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 언어는 폐기처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단장들의 발표 언어 역시 폐기되어야 할 힘없는 허깨비 언어란 말인가? 남북 연극인들의 합동 공연은 이렇게 끝을 맺을 것인가?
무대 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두 젊은 남녀, 안타까운 눈빛, 떨어지지 않는 발길, 냉혹한 분단 현실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들의 비극적 숙명, 그 숙명을 알고 있기에 이들은 타오르는 사랑의 열망을 억제해야 한다. 억제의 힘이 강할수록 관객은 더욱 꼼짝 못하며 숨을 죽여야 한다. 연극의 매력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관객은 멀어져 가는 이들의 발걸음 하나 하나에 호흡을 같이한다. 두 연인(임형택, 김경미 분), 상대를 자신의 온몸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강렬한 시선, 보이지는 않지만 그 어떤 이도 이 두 시선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끈한 줄을 끊을 수 없으리라… 감상층은 마침내 하나로 합일된 이들의 뜨거운 시선에 동정과 연민을 금할 길 없다. 기약없는 이들의 만남은 단순한 신기루인가, 아니면 현실의 단절을 넘어설 미래의 뜨거운 지향점인가? 오랜 고민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같이 한 채 관객은 공연장 문을 무겁게 열고 나와야 한다.
〈꽃신〉공연의 마지막 이별 장면, 그 이별과 더불어 필자 역시 전주를 떠난다. 그러나 전북 예술회관 무대 위의 이미지들은 나의 가슴 속에 살아 남는다. 특히 이별의 이미지가 그렇다 .이별의 이미지는 다양한 해석, 무한한 상상을 가능케 하면서 또 하나의 연극적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
분단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통일의 메시지를 배면에 깔고 있는 남북 연극인들의 합동 공연 작업, 미래에 있을 법한 소재가 이 작품의 외형적인 틀을 이룬다. 극중극 '꽃신'에 나타나는 무장항일투쟁의 소재, 배신, 실패, 좌절, 죽음, 이로인한 고뇌와 몸부림의 과정은 강렬한 충격파를 던져 주면서 연극적 써스펜스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노래와 춤은 관객의 중간 박수를 얻어낸 정도로 강렬한 시청각적 에너지를 활휘하고 있다. 투쟁의 이미지. 배우들의 눈에 살기가 번뜩인 정도로 광채를 발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일사불란하면서도 정밀하게 움직이는 배우들의 집단 신체 움직임, 이들 집단 신체기호가 만들어 낸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이미지, 이를 위해 류장영 작곡의 선율은 톡톡히 제 노릇을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선동적, 투쟁적 이미지만이 강조됨으로써 틀극 공연의 주제를 떠받쳐 주지 못한다. 극중극에서 연회 역의 인물이 죽는데, 그녀의 죽음이 뜨거운 감동으로 이어졌는가, 그리고 익찬과의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유발시켰느냐 하는 점은 확실치 않다.
남북 젊은이들의 만남과 사랑, 이같은 이미지에 반대되는 이미지는 산발적인 보고 형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들을 둘러싼 각종 반동적 요소, 각종 불리한 가족 관계 등은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 가장 큰 갈등요인은 분단의 현실에서 살고 있음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갈등이 관객 모두에게 완전히 전이되었는가에 대해선 긍정하기 힘들다. 과거 사건의 현재화, 그것의 강렬한 연극성 창출, 이를 위해선 단순한 몇 개의 보고언어나 인과성이 결여된 산발적인 구성 형태는 극복되어야 할 최대 숙제이다.
한편 통일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합동공연 역시 얼마나 어려운가를 일깨우는 장면은 신선하고 재치있다. 남북연극인들의 단합대회, 서로의 장기자랑과 화합의 열기가 절정에 달하는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모두가 스크럼을 짜고 부른다. 노래의 절정, 갑자기 노래 반주의 음색이 변질되기 시작한다. 노래가 중단되고 모두가 정지와 침묵상태를 유지한다. 통일의 열망이 깨지는 상징적 무대 그림이다. 핀조명으로 클로즈업된 남북 기관원들, 무대 앞으로 등장하여 서로를 비난하고 야유한다. 삿대질이 절정에 대할 때 무대 어두워진다. 노래의 파괴, 음색의 파괴, 흥과 분위기의 파괴, 이는 통일을 향한 만남, 통일을 향한 사람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상징한다.
무대그림의 평면성, 인위적인 데이트 행각, 사건 부재의 인위적인 보고형식(특히 연인들의 사랑과 관련된 소재를 중심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탄탄한 구성력이 요구된다. 사랑, 갈등,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건들이 첨가, 보완되어야 한다.
어둠 속에 불을 밝히는 전주연극인의 무대 작업, 이는 부패해 가는 분화부재의 우리 현실에 진정 소금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