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6 | [문화와사람]
창작발레 소품의 아름다움을 실어낸 무대
「고귀한 유혹」
손윤숙 전북대학교 교수·무용학과
(2004-02-05 16:19:38)
지난 1월 말과 2월초 사이에 약 3주 동안의 소련 Stanislavski Ballet Company연수는, 한겨울 모스크바의 혹독한 추위가 매서웠지만, 세계 최고의 정통 클래식 발레 테크닉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뜻 있는 기회였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모스크바발 서울행 소련 이에로프트 항공기는 흰눈으로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끝없이 날아왔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가슴 조이면서 전화해본 곳은 한국문예진흥원이었다. 서울에 있는 유수대학의 발레단도 문예진흥기금을 받기 어려운데 지방대학인 우리에게 문예진흥기금이 나와 있을까, 두근거리며 전화해보니 심사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지난 1년 이상을 땀흘려 연습하며 구상해오던 작품, 이제는 남은 3개월 동안 잘 마무리해야 된다는 결심뿐이었다.
세계발레의 거장 조지 발란신은 "시에서 운율의 역할을, 발레에서는 음악이 한다"라고 했다. 오랜 기간동안의 발레작업을 하면서 음악의 중요성은 갈수록 절실히 느낀다. 이번에 서울, 전주, 군산을 순회하였던 나의 다섯 번째 개인 발표회 작품 '고귀한 유혹'의 배경음악은 주로 시벨리우스와 베르디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작품을 싱그럽고 은은하게 그리고 고혹적인 분위기가 흘러넘치게 만들었던 시벨리우스의 음악 'Spring Song'은 작년 2월 호구 Sydney Dance Company 연수 중 만났던, 훌륭한 발레지도자였던 토리 랙트혼이 추천해 준 음악이었다. 핀란드 태생으로 소련에서 바가노바 학교를 졸업한 그는 호주에 이민하여, 시드니에서 후진들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온 나에게 그가 50여년 동안 배워왔던 발레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려고 했다. 따뜻한 소유자였던 그는 떠나오는 나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훌륭한 발레리나에게는 꼭 필요하다면서, 비타민과 칼슘정제를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준비를 동안 시드니로부터 온 슬픈소식, 그는 하늘나라에서 이번 나의 공연을 인자한 미소를 머금으며 축복하고 계셨을 것이다. 토리 랙트혼 선생님께 공연 무사히 끝났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베르디의 음악은 모스크바 예술인들의 거리인 아르바트거리에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서점의 음반 판매장에서 사온 여러개의 발레음악 CD 중 하나에서 나온 주옥같이 아름다운 발레곡이었다.
약 1년 이상을 구상하고, 그리고 실제로 발레 선진 외국에 나가서 체험해온 좋은 발레기법들을 이제 사랑스러운 제자들에게 접목시켜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 작업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국제적인 수준의 안무작품을 지방무용수들에게 접목시켜 서울에서 하는 공연을 꿈꾸어왔던 나에게 여러 가지 난관이 없을 수 없었다. 우선 지방에서의 공연 준비는 남자 무용수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무용수들이 조기교육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큰 난점은 지방무용수들은 무대공연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연외적인 문제였지만 전주 군산 등 지방 공연장은 공연시설 미비로 준비과정을 힘들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발레 및 무용공연을 위한 무대 고무판이 비치되어 있지 않아 서울에서 일일이 운반하여 까는 작업도 해야했다. 조명시설 문제 해결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밤낮을 가리지 않는 마무리 공연 연습을 시작되었다. 졸업 후 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졸업생들도 모든 개인생활을 포기하고 서울 전주를 오가며 헌신적으로 연습에 참여했고 재학생들이 흘린 인고의 땀의 양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인내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흘렸던 땀과 노력은 공연장에서 보석처럼 빛났다. 지역무용인들의 서울 데뷔 기회를 준다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덕수 원장의 격려사처럼 5월 1일밤, 서울 문예진흥원 대국장의 분위기는 전북대 발레단에 대한 환호와 찬사의 연속이었다.
현란하고 화려한 발레 육동의 움직임이 관중들을 압도해 있었고, 변형되지 않은 정통 클래식 발레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창작 발레 소품이 이렇게 아름다울줄 몰랐다는 격려에는 지난날 준비기간 동안의 모든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특히 여러 가지 열악한 조건의 지방대학교 발레단이 거의 완벽한 정통 클래식 발레 공연을 이루어낸 데 대해 놀라와하는 분위기였다. 5월 3일과 6일, 전주 군산에서 각각 열렸던 공연도 우리 전북대 무용학과 발레단을 아끼는 열렬한 지역 발레 애호가들의 성원으로 성황리에 끝났음을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번 공연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전북지역에서도 모두 열심히 힘을 합치면 서울의 어느 발레단 못지 않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것이었으며 앞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전북지역 발레예술의 조기 교육에 힘을 쏟아야 되겠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 여러분들의 전북발레예술 발전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지원을 부탁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