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7 | [문화계 핫이슈]
국내 첫 집단 창작공간
임실 신덕면 '오궁리 미술촌'
김태호 기자
(2004-02-05 16:30:30)
전북지역에 미술인들이 함께 모여 작업하는 공동의 창작 공간이 문을 열었다.
임실 신덕면의 한 폐교된 국민학교 자리에 들어선 '오궁리 미술촌' 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미술인들의 공동 창작 공간이다.
이 '오궁리 미술촌' 은 단지 창작의 집단 산실로서 만족하지 않고 주변 녹지와 어우러진 실내,야외 전시 공간으로서의 몫과 아울러서 문화예술 휴식공간의 역할도 당당히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같은 미술문화의 중심적 역할은 '오궁리 미술촌'의 '전북미술문화센터'라는 공식 이름에서도 그 의지를 찾아 볼 수 있다.
회화(繪 )나 조각 등 평면 또는 입체 작업을 필요로 하는 창작은, 작가를 작업에 몰입시킬 수 있는 일정한 공간과 전시 공간을 동시에 요구하게 되는데 지금까지도 이 문제의 해결은 전적으로 작가 개인적인 문제처럼 인식되어온 게 사실이다. 도예와 같이 흙의 맥을 따라 형성되는 특정 분야는 이미 그 작업의 특수성에 따라 이천 도예촌이나 계룡산 도자예수촌 등과 같이 튼튼한 부리를 내리고 있지만, 회화나 조각 등 비교적 개인 작업 주가되는 다양한 장르의 작가 모여 집단 창작 공간을 마련하기는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더욱이 경제인구의 도시 이동으로 농촌이 인구 노령화 현실을 말해주듯 늘어나는 농촌 폐교의 공간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점에서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주에서 삼십여 분 거리에 있는 '오궁리 미술촌'은 행정구역상 임실군 신덕면 지장리 45번지에 위치하지만 신평면 소재지에서 더 가깝다. '오궁리 미술촌'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도시 인근의 다른 농촌과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 짙은 아스팥트길 주변의 정리된 농토와 올망졸망한 산들, 늙은 농부님네들과 그들의 부친 힘을 덜어주는 농기계들의 턱턱거리는 소리가 그렇다. 하지만 아이들 키만한 담으로 둘러진 '오궁리 미술촌'에 들어서면 전혀 새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어린이들의 소란스런 웃음과 뜀박질하던 발자국, 진지한 눈길이 오가던 교실과 운동장. 강당에는 대신 화구와 조각품들이 놓여지고 각각 작업실로 또는 전시 공간으로서 새살림을 꾸리고 있다. 본관 2층 건물 10여개의 마룻바닥 교실은 작가들의 작업실이 되었고 별관 80여 평 강당은 전시실과 세미나실로 쓰이며, 본관 뒤쪽의 관사 몇 동은 가족의 주거 공간과 작가의 쉼터로 이용되며, 운동장은 조경과 함께 야외 전시 공간이 되고 때론 미술인친선 도모의 장(場)으로 활용된다.
'오궁리 미술촌' 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도 지난 2월18일 제39회 졸업생을 끝으로 폐교된 이 오궁리 국민학교의 이름을 되살리자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제 입촌한 작가는 아홉 명으로 서양화의 강신동,김한창(전북미술문화센터 대표) 선기현(미협전북도지회장) 이상조(전북대 교수)씨 조각의 임석윤 전병관 조성민 씨 한국화의 박인현(전북대 교수) 송계일(전북대 교수)씨 등이다. 40대 내외의 이들 작가는 이미 지난 3월부터 입촌해 의미있는 '미술의 해'를 보내고 있다. 서양화가 선기현 씨는 "창작이란 결국 자연을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도시의 건조한 시멘트 덩어리를 벗어나 주변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자연 속에서 창작을몰입할 수 이어 더없이 좋다"는 '오궁리 미술촌'의 분위기를 전한다. 이들 입촌 작가 가운데는 가족 모두가 이주해와 이곳에서 생활하는 이도 있고, 주변의 천연덕스런 풍경을 벗삼아 버스로 전주의 직장까지 출퇴근하며 자연에 보다 가까워지려는 사람도 있다.
"입체작업으로 인한 공간의 협소가 미술촌 구상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서양화가 김한창씨(태고종 임실 운수사 주지 스님)는 '오궁리 미술촌'의 촌장(?)으로 미술촌 조성과 '전북미술문화센터'개관을 주도해 왔다. 처음엔 교실 두어 칸 정도의 개인 작업실을 구상했던 그는 몇몇 폐교를 돌아보면서 지역미술인들이 보여 함께 작업할 수 있다. 본격적인 집단 창작공간을 마련, 전북 미술문화의 발전을 위한 자산으로 삼고자 여러 작가들의 뜻을모아 지금의 오궁리'미술촌'을 조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공동 창작 공간이 자칫 개개인의 창작 활동을 침해할 소지를 안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입촌 작가들의 공통된 인시은 그런 일반적인 우려를 일축하고 있어 '오궁리 미술촌'과 어우러진 자연의 녹음만큼이나 짙푸른창작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오궁리 미술촌'의 '전북미술문화센터'운영에 대한 김한창 대표는 크게 두 가지 활성화 방안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미술인들을 위한 왕성한 창작활동과 교류의 중심역활이며 또 하나는 지역사회에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으로 제공되길 바라는 것이다. 6월 23일의 '전북미술문화센터' 개관을 시작으로 국내작가들의 전시회나 세미나를 개최 하고 미술인 친선 체육대회도 마련할 계획이며, 이미 인근 초중학교로부터 미술 실기지도나 견학 드으이 제안을 받고있어 미술문화 저변확대를 위해 그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 중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오궁국교 출신 김 모씨는 고향을 찾았다가 폐교된 모교에 들어선 미술촌을 보고 고향의 새로운 자랑거리라며 고마움을 전하고 폐교된 모교의 새 모습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고 촌장 김한창 대표는 전한다.
'오궁리 미술촌'은 지금도 새 모습으로 단장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음양오행의 괘(卦)를 잡아 백년을 내다보고 진행된다는 촌장의 말을 생각하면 아직 첫 술에 불과 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괘(卦)에 따라 미술촌 입구를 옮기고 나무를 심어 녹지 공원을 조성하고 쉴만한 의자를 놓는 일까지 아직도 그리 수훨치만은 않은 일들이 많은 것이다.또한 영구 불하를 받지 못하고 임대형식을 따르고 있어 계약이 끝나는 3년 후에 재계약을 해야할 형편이다.
아직은 무관심한 듯한 눈길을 보이는 인근 주민들의 시선에서 감지 할 수 있는 '외지인들'이라는 거리감을 친화(親和)의 따뜻한 관심으로 돌리는 일도 '오궁리 미술촌'의 과제로서 빠뜨릴 수 없는 일이다. 미술의 해를 맞이하여 전북 미술계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알갱이 굵은 결실로 거두어진 '오궁리 미술촌'과 '전북미술문화센터'가 지역 미술문화의 활성화에 새로운길을 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며, 아울러 아름다운 전북의 새롭고 참다운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오궁리 미술촌'으로 가는전주-관촌-신평 길과 전주-구이-신덕 길은 대략 30여 분 남짓 걸리는데 도심을 벗어나 계속되는 자연의 푸르름은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도시 생활 속에 찌든 때를 씻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