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7 | [문화시평]
감동이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남긴 과제
<열린 음악회>를 보고
문윤걸 우석대 강사
(2004-02-05 16:31:53)
<열린 음악회>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잔비가 뿌리는 주말 저녁. 예상되는 많은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내는 짜증없는 수많은 얼굴들을 보면서 <열린 음악회>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 몇 해 동안 전주에서 그처럼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구경하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데 수많은 마음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경이에 가깝다.
이처럼 경이로운 일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열린 음악회>였다. 도대체 <열린 음악회>가 갖는 그 힘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러럼 많은 사람들을 한자라리에 불러 모을 수 있으며 그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낼수 있었을까? 도무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 이유에 대해서 무언가 대답해 낼 수 있는 꺼리를 찾기 위해서 이것 저것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청중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 중 하나가<열린 음악회>는 우리 시대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방송국의 이벤트성 행사이기 때문이라는 쉬운 대답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해답을 통해서는 이제 무엇을 하든 TV의 힘을 빌지 않고 서는 제대로 된 행사를 할 수 없다는 비판적인 생각에 도달할 뿐이기 때문에 다른 답을 찾아 보기로 했다. 특히 이는 지난해에 이 지역으로서는 쉽지 않는 투자를 했던 동학백주년 관련 여러 행사들을 떠올리면서 더욱 깊은 상념을 갖게 했다. 그래서 <열린 음악회>가 갖는 그 가공할 힘이 부럽기도 했다.
물론 <열린 음악회>도 음악회의 한 형식이니까 주된 무기는 역시 음악일 것이다. 그러나 음악만으로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여타의 음악회에는 왜 그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아하!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음악회면 다같은 음악회냐 <열린 음악회>의 음악이 다른 음악회의 음악보다는 한 수 위가 아니냐고 그러나 순전히 음악적 완성도로만 본다면 이에 동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열린 음악회>의 형식이 갖는 특징때문인가, 음악적 취향이다른 다양한 계층을 포괄해낼 수 있는 음악적형식, 즉 최근가요,클래식,국악 등을 혼합함으로써 다양한 음악적 메뉴를 제공하는 그 형식말이다. 이것은 조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클래식이나 국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신세들도 <열린 음악회>에의 청중이 되면 그흥에 한껏 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프로그램의 이런 시도가 매번 성공했던 것은 아니니까. 이외의 또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열린 음악회>가 여타의 행사와 다른 점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여기서 또 하나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열린 음악회>가 갖는 상호모순적 이중적 힘이었다. 일단 <열린 음악회>는 TV방송용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엄격한 형식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중들을 수동적 감상자 층으로 묶어 두지 않고 적극적 참여형 청중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중들은 감상보다는 오히려 참여함으로써 더 큰 만족을 얻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짧은참여의 만족을 위해서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과 진흙타에 발이 잠기는 고통까지도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열린 음악회>가 우리 사회에서는 드물게 만나는 수준 높은 프로그램이라는 확신이 전제해 있었고 이 프로그램에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 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같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열린 음악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신뢰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만큼 <열린 음악회>는 이시대 음악공연 문화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로서 자리잡았고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열린 음악회>는 더욱 중요한 가치를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첨병의 역할을 자임한 <열린 음악회>스스로의 건강진단도 필요하겠고 그를 모델로 삼기위해서는 해부학 실험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열린 음악회>가 <닫힌 음악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절대로 매너리즘에 빠져 스테레오 타입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열린 음악회>가 우리 음악문화의 모든 문제 -국적없는 음악문화, 정신은 없고감각만있는 음악문화등을 해결해낸 완성품이라는 과장된 평가를 마나곤한다. 그러나<열린 음악회>는 수단이지 결코 목적은 아니다. 우리가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며 그것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목적에 <열린 음악회>가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열린 음악회>자체가 모든 것을 해결한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처럼 당연한 얘기를 아까운 지면을 통해서 언급하는 것이 가끔 혼돈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열린 음악회>는 우리가 문화예술을 접하면서 얻는 감동을 경험할수 있는 기회의 장이며 그로인해 다시 그런 경험을 원하도록 유도하는 데는유용 하지만 <열린 음악회>자체가 우리 음악문화가 추구해야할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그보다는한 단계 더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열린 음악회>는 감동이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 감동의 원천이 <열린 음악회>의 무대에서 들려주는 노래가 전부였다고 말할 수 없다. <열린 음악회>에 출연한 가수들의 음악이 출중한 것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감동은 그들이 노래에 의해서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노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청중들의 안타까운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날 모인 청중들은 감동을 맛보기로 작정하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것을 비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이 마음들이 안타까우면서도 사랑스럽다. 감동되는 일이란 쥐뿔도 없는요즘 세상에서 그래도 감동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모든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고 생각하는 마음들이 이처럼 많다고 하는 것은 분명 희망적인 일이다.<열린 음악회>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것은 마음에 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다음이다. 감동을 원하는 이 마음들의 욕구를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 또 채워줄 수 있을까?<열린 음악회>가 다시 전주를 방문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은 너무 비참한 일이다.
<열린 음악회>의 역할은 감동의 첫 경험을 유도해냄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그 다음은 이지역 문화예술 일꾼들의 몫이다. <열린 음악회>의 청중들을신뢰할 수 있는프로그램을 원하고 보여주는 행사보다는 함께하며 행사를 원하며 건강한 문화적 이미지를갖는 행사를 원하고 있다. 우리는 전주와 군산에서 있었던<열리 음악회>의 두 차례공연에서 이 지역에도 함께 노래 하고 함께 춤추며 자신의 마음을 감동으로 가득 채우길 원하는 참여형 청중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열린 음악회>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