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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7 | [서평]
대중화된 아카데미즘, 세련된 저널리즘 김은정, 문경민, 김원용, <동학농민혀명 100년>, 나남출판, 1995
원도연 <문화저널>편집장 (2004-02-05 16:37:48)
내가 그동안 보아 오기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은현대 지성사의 양대산맥이면서 동시에 여간끈적끈적한 관계가 아니다. 두 집합의 사람들 모두 자존심 강하기로 하늘 높은 줄 몰라서 본디 궁합은 잘 안맞지만(?) 직업상 서로 합(合)이 들지 않으면 곤란한 경우가 꽤있기 마련이다. 지난 4월에 이들의 궁합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 두툼하고 그리고 그 두께만큼이나 예사롭지 않은 책 한권이 선을 보였다. <동학농민혁명 100년>이라는 책이다. 이 책 한권에는 저널리즘과 아케데미즘의 끈적끈적한 관계가 녹아있고, 두 영역이 가장 모범적으로 만났다는 자타의 평가를 두루 받았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은 갸륵하고 소중한 성과임과 동시에 또 그만큼 애매한 책이다. 단순하게 기자들의 리포트냐 하면 거기에는 넘치는 점이 많고, 그렇다고 전문적인 한술서적이냐 하면 그렇다고 보기에는 또 석연치 않다. 굳이 말하자면 대중호된 아케데미즘이면서 동시에 셔련된 저널리즘이라고나 할까. 정확이 말하면 이 책은 한권의 책으로 씌여진 것이 아니라 한권의 책으로 묶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원고는 이미 92년 6월부터 2년여동안 전북일보에 매주 월요일마다 거의 쉼없이 연재되어 왔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깊은 의미는 단지 책 한권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 작업에 쏟아졌던 2년여세월이 갖는 무게와 깊이에 있다. 사실 자진해서 나서기는 했지만 내게 이 서평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기획과 연재의 과정을 비교적 가까이서 보았고, 또 이 책의 공동필자인 세명의 기자와 또 학계참여자들의 세명의 학자 모두 도저히 사정권 밖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분들이어서 웬만해서는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욱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것은 우선 이 세명의 기사들이 정말 열심히 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2년여의 작업과정을 통해서 이들은 '미쳤다'고 할만큼 기자 이상의 열정과 탐구정신으로 동학과 혁명에 다가섰다. 이 책을 출판한 나남의 조상호 사장은 사회과학계에서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까다로운 출판기획과 알아주는 악담으로 이름을 떨치는 인물인데, 원고를 받아보고 그의 첫 번째 공식반응이 바로 이 '기자들이 미쳤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 정신나간 기자들은 때로는 기자의 역할범위를 넘어서 강도 높은 전문답사를 한달이 머다하고 전국적으로 돌아다녔고, 매주 교수들과 함께한 세미나에서는 보통 3-4시간 이상씩 온갖 자료를 다 늘어놓고 여간 전문적인 토론을 벌이는 것이 아니었다.그러나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인가! 원고에 기는 기자들 얼굴이 말이 아니었고, 간혹가다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우리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 표정들이 &#50677;력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농담처럼 이들에게 학위 하나씩 주어야 하는 것아니냐고 말하곤 했었는데, 어쨌거나 그들은 모두 방학도 없는 2년여를 기특하게 버텨냈고 총 99회를 (99회는 미완을 의미한다나)연재하는 동안 연재물은 갈수록 탄력이 붙어 결국에는 94년의 한국기자상이라는 빛나는 졸업장(이건 돌아가면서 타는 보통의 상이 아니다)까지 타고 말았다. 우선 2년여 세월동안 그들이 집요하게 붙들고 있었던 것은 크게 보면 전라도의 역사였고 작게보면 자존심이었다. 동학 농민혁명에 대한 제대로된 안내서적 한권 없고, 그 흔적은 이미 곳곳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던 것 같았다. 그래서 세명의 연구자들까지 포함해서 그들은 과하다 싶을만큼 욕심을 부렸고, 결국 이 책은 총 14장에 이르는 방대한 짜음새로 구성되었다. 그들의 첫 번째 물음은 이 백년전의 사건이 도대체 뭐냐는 것이었다. 혁명인지 전쟁인지 아니면 다른 뭇엇인지 갖가지 주장들을 한눈에 정리하면서 그들은 굳이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정확하게 100년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시점에 눈높이를 맞춰놓은채 그들이 채택한 이런적 도구는 사회사적 방법론이었다. 100년전으로부터 다시 한시대를 더 가서 조선조의 사회적 모순과 혁명의 조건들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당시의 국제정세까지를 스크린해주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혁명전야다. 혁명전사의 주된 줄기를 그들은 동학으로부터 찾아낸다. 이필제의난부터 금구취회까지 동학도들의 움직임을 중심에놓고 혁명이 잉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약간 불만이다. 물론 현실적인 힘이긴 했지만 동학이 너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동학사, 동도문변, 일성록, 시천교역사 등등 한회당 보텅 10-15권 덩도의 방대한 원자료들이 속속 등장하고 본격적으로 혁명의 줄거리가 시작된다. 자칫하면 페이스를 잃을뻔 했지만 고부에서 사건이 시작되고 전봉준이 뜨면서 기자들은 이제 사건기자가 된다. 마침내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사건현자응로 기자들이 뛰고 온갖 자료들이 모아지고 정리된며서 입체적으로 엮어졌다. 관련된 사람들의 면면이 밝혀지고 전부측 자료, 일본축 자료 그리고 그 사건에 일가견이있다는 웬만한 학자들의 갖가지 학설들이 소개된다. 간혹 동학연구의 대가를이룬 박맹수 교수(영산대학), 박명규 교수(서울대), 이진영 선생(전북대) 등이 내놓은 비장의 자료들이 선을 보이면서 새롭게 밝혀진 싱싱한 사실들도 지면에 올라온다. 이 세분의 학자들이 이 이책과 함께 꼭 기억되어야 할 공로자들인 것이다.물론 기자들이 발로 찾아낸 특종도 만만치 않다. 석남역사, 해월문집, 김낙철 역사, 고부고지도 등등. 기자들답게 책임추긍도 날카롭고 상황묘사도 흥미진진하다. 한때 전라도따에서 위세를 떨치던 고부땅이 몰락한 사연들이 절절한가 하면 고부봉기 5적에 대한 규탄도 뜨겁다. 전봉준과 손화중, 김개남을 삼국지의 세 영웅에 비유한 이야기, 전봉준과 대원군의 밀약설, 농민군의 2차봉기때 김개남이 남원서 버티고 올라오지 않은 까닭, 설화와 한국문화속의 동학혁명 등등 곳곳에 흠이로운 발상이 넘쳐나기도 한다. 저널리즘의 미덕이 한껏 발휘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들은 매회 100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면서 오늘을 이야기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100년 전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그들은 잊지 않고 끊임없이 말해주면서, 우리가 그동안 그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소홀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이 책이 갖는 두가지 장점을 꼽으라면 나는 첫째는 약간의 인내심만 가지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마치 동학의 백과사전과 같다는 점을 말하겠다. 연재되는 동안 신문에서 읽기는 꽤어렵다는 것이 중평이었지만 막상 책으로 나와보니 오히려 읽기가 수월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책를 반드시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필요하거나 재미있을 것 같은 대목만 찾아 읽어 좋을 만큼 하나한의 주제는 서로 독립적이다. 또한 이책의 곳곳에 박스로 묶어진 용어나 지명 또는 인물에 대한 정보는 간략한 것이지만 딱 w호은정도다. 체면상(?)한마디쯤 보탠다면 필자들이 책앞에서 밝혔다시피 왜 이런 작업이 이제야 이루어졌는지 조그만 일찍 시작했더라면 훨씬 생생나는 작업이 됐을 뻔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얼ㄴ론은 반성하라. 그리고 반성의 의미에서 이 책이 처음과 마지막에 이야기 하듯이 100주년이 지났으니 이제 끝났다고 말하지 말고 이땅과 선조들의 이야기를 다시 또시작하라. 해야할 일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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