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7 | [문화와사람]
여성잡지를 통해 본 '여자이야기'
여성문화연구모임
(2004-02-05 16:39:14)
옛날에 한 부지런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던 어느날 쉬기 위해 들른 휴게실에서 두 노인의 바둑을 구경하고 돌아오니 시대가 엄청나게 변해있었다던가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을 준다. 멈추지 말라, 멈추면 도태된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사회는 감당 못할 속도로 변해있기 마련인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습득해야 할 정보의 분량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지금 '빠르게, 빠르게, 더빠르게'를 외치는 현실속에서 현대인 - 특히 현대 여성의 정보습득의 창구는 과연 어디인가. 그 대부분은 TV,라디오등의 방송매체와 다양한 출판문들을 통해서이다. 전업주부의 경우는 방송매체의 의존도가 높지만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일 경우에는 바쁜 일정 때문에 혹은 퇴근 후의 피곤 때문에 방송매체보다는 출판물에 많이 의존한다. 그 중 에서도 단행본의 도서보다는 여성잡지류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매 달 도서계의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여성잡지이며, 성인여성이 있는 집을 방문하였을 때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여성잡지이며, 또 미장원이나 은행 등 여성의 발길이 자주 닿는 곳에 빠지지 않고 비치되어 있는 읽을 거리가 여성잡지라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몇 년 전만 해도 여성잡지는 <여성동아>,<주부생활>등 주부대상의 읽을 거리로 그 가짓수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여성잡지는 <우먼센스>,<FEEL>,<ELLE>,<SHE`S>,<레이디경향>,<주부생활>,<쎄씨>,<피가로> 등등등... 일일이 주워 섬기기도 힘겨울 정도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들 잡지들은 크게 주부대상을 잡지들과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로 나눌 수 있다.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들은 주부대상 잡지들의 한 부분만을 특화시켜 놓은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즉 미혼여성을 독자로 선정한 잡지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광고,패션정보 그리고 피부관리나 다이어트 정보가 대부분이다. 나머지 부분에 패션,미용 다이어트,실내장식,요리, 그리고 연예가 화제나 유명인사의 동태기사를 덧붙이 것으로 한결같다. 즉 여성잡지는 여성의 최고 미덕은 소비라고 규정하고, 현대여성의 정체성은 '꾸미기'에서 획득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스스로를 꾸며야 한다. 왜?아름다움이란 여성의 권리이자 의무이므로, 여성은집안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어야 한다. 왜? 편안하고,아늑하며, 세련된 집안을 꾸미는 것은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지름길이므로. 여성은 식탁을 꾸밀 수 있어야 한다. 왜? 맛있고 풍성한 식탁은 건강한 가족과 사랑받는 아내를 약속하므로. 이와같은 단순논리에 의거해 여성잡지가 제공하는 꾸미기 정보는 현대여성을 꾸미기광으로 몰아가고 있다.
물론 꾸미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여성, 세련된 실내장식, 맛있는 식사를 대했을 때 누구나 좋은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다양성이 강조되는 현대사회 속에서 여성잡지들의 획일성이라는 구시대적 특성으로 뒷걸음질 치게 한다. 요즘 거리에는 비슷한 옷차림과 비슷한 머리모양, 비슷한 화장을 한 비슷한 여성들로 넘치고 있다.왜냐하면 여성잡지가 올여름 여성패션의 정답을 이미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미니스커트 차림인데 나만 긴치마를 입을 수 없고, 모두들 '하니베베'립스틱을 바르는데 나만 다를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또하나 여성잡지가 지향하는 현대여성의 미(美)와 더불어 경제관념과 강한 생활력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성잡지에 빠지지않는 주제는 직업정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현실성이 없는 직업을 제시해 주부들의 열등의식을 자극하는 반면에 현실성있는 부업이더라도 수박겉핥기식으로 소개해 실질적인 위험부담이나 사회적 압력 등은 삭제하여,누구나 시작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부추기고 있어 독자에게 실제적인 부업정보를 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또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않고 나오는 것이 바로 부부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섹스(sex)테크닉이다. 좀더 나은 성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갖가지 성행위에 대한 소개가 낯 뜨거울 정도로 세세히 소개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여성은 수동적인 성의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성을 향유할수 있는 주체로 역할변화가 일어났음을 증명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기사를 접할 때 누가 볼까 마음 졸이며 숨어서 보는 현실과 소개된 기교라고 하는 것이 남자를 흥분시키는 것, 혹은 피곤에 지친 남편을 유혹하는 방법등이 대부분인 점을 생각해 보자. 여성은 성을 즐기는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즐겁게 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에 여전히 머물러 있음을 여성잡지는 현란한 언어 사이로 교모하게 숨기고 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가십(gossip)거리다. 모여자 MC가 수필집을 출간하고 '눈물의 결혼식'을 올린 것이 독자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미스코리아 출신의 텔런트가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것이 여성에게 정보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그야말로 소문거리를 싣고 그것이 무슨 여성이면 누구나 알야하고, 알고 싶어하는 엄청난 정보인 것처럼 수다를 떠는 여성잡지는 여성 우민화 현상을 유도하는 느낌까지 갖게 한다.
결국 현대여성은 아름다운 인형이며 동시에 충동적인 소비동물이면서 반면에 강한 생활력으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는 사회의 일꾼이어야 하며, 현대판'옹녀'의 기질까지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 여성잡지의 주장이다. 날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세련된 화장을 하고, 우아한실내에서 가족을 위해 정성껏요리를 준비하면서, 밖에 나가 열심히 돈을벌고, 남편과의 황홀한 성관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휴일이면 야외에 나가 환상적인 낭만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여성. 맙소사!여성잡지가 요구하는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몸은 세 개에 얼굴은 다섯은 되어야 할 판이다.
지구 위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고 동물의 세계와는 달리 인간의 특성은 획일화를 거부한다. 그러나 제시된 여성상에 부합되지 않는 여성은 도태도리 것이며, 행복한 인간으로 존재하기 어려울 것같은위기의식을 여성들에게 심어주어 획일화를 강요하는 여성잡지는 분명히 시대에 역행하고 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