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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8 | [문화칼럼]
여성의 아름다움은 문화적인 것이다
글/유영대 (2004-02-10 09:27:27)
배꼽이 보일 듯한 옷을 입은 처녀가 앞을 지나간다. 화장을 튀게 하고 나서면 누구든 한번은 더 쳐다볼 것이다. 여성의 즉물적 아름다움이 일반화되어서 ‘섹시하다’는 말이 최상의 찬사가 되어버렸다. ‘버렸다’라고 말한 나의 레토릭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전처럼 ‘청순’아름다움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만약 국립창극단에서 공연하는『박씨전』을 보고난 이후라면,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꿈꿀 것이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천하에 박색이었던 아내가 아침에 깨어나보니 문득 절세미인으로 변해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꿈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내에게 불만이 많은 남편들은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인 박씨의 모습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한 전형을 보았노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예술작품을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 대하여 잠깐 눈을 돌려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장치이자 도구이다. 『박씨전』은 조선후기의 소설 독자들, 특히 여성독자들이 애독하였던 작품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에 팽배한 민중의 좌절감을 보상시켜주는데, 이 작품이 일정하게 기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이시백과 박씨의 개인적 생활과 결혼을 다루는 전반부와, 병자호란 중 박씨의 활약이 돋보이는 후반부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극『박씨전』을 제대로 보기 위하여 작품의 줄거리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인조 무렵, 서울 안국동에 이득춘 이라는 양반이 살고 있었다. 그이는 명분거족으로 부러울 것이 없이 살았으나 불행하게도 아들이 없었다. 그는 금강산에 들어가서 기도를 올린 후에 비로소 하늘이 점지한 아들을 얻게 되는데 그이가 바로 이『박씨전』의 남자 주인공인 이시백이다. 이시백은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능력이 뛰어났다. 그 무렵 금강산에서 도통한 사람인 박처사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그중 큰 딸이 천하의 박색이어서 출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딸은 천성이 현숙하고 능력이 뛰어났으며 도술을 알아서 불가능한 일이 없을 정도였다. 시백이 열여섯이 되던 어느날 이공과 박처사는 서로 아들과 딸을 혼인시키기로 결정한다. 이공은 길일을 택하여 아들 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박처사를 찾아가서 성례한다. 기대에 차서 금강산에 이른 시백은 첫날밤에 천하의 박색인 박씨를 한번 보고나서는 실망하고 박씨를 돌아보지 않는다. 박씨는 후원에다 따로이 거처를 마련하고 혼자지낸다. 박씨는 남편에게 푸대접을 받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뒤에서 남편을 보좌하며 시간을 보낸다. 박씨는 정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앞일을 예견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미리 내어 처리했다. 이같은 일을 몇 차례 반복하자 박씨는 점점 가족의 신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결혼한지 삼 년이 지난 어느날, 박씨는 자신에게 부여된 액운이 다하였으므로 드디어 허물을 벗고 절세미인으로 변한다. 그러자 시백을 비롯한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박씨를 사랑하게 된다. 시백은 아내 박씨의 덕으로 장원급제하게 되고 평안감사와 병조판서를 거친다. 이때, 중국 남경이 소란하게 된다, 중국 조정에서는 조선에 원병을 청하게 되고 우리 조정에서는 임경업과 이시백을 중국에 파견하여 사태를 진압하게 한다. 이들 두 장수는 중국에 가서 큰 공을 세우고 조선으로 돌아오며 그 이름을 크게 떨친다. 때마친 병자년이 되었다. 오랑캐왕이 조선을 침략하려다가 이시백과 임경업이라는 두 장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인계를 써서 이들을 제거하고자 공주를 밀파한다. 공주는 조선에 들어와서 ‘설중매’란 기생으로 변장을 하고 이시백을 찾아가 유혹한다. 그런데 박씨는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남편과 설중매가 함께 있는 자리에 들어가서 설중매의 정체를 밝혀낸다. 오랑캐 왕은 용골대와 용총대 두 장수에게 병사 3만을 주어 조선을 침공케 한다 박씨는 전쟁이 일어날 줄을 예감하고 남편을 시켜 왕족을 남한산성으로 피난시키고 도술로 오랑캐 장수를 무찌른다. 결국 박씨의 지략과 도술로 오랑캐는 이 땅에서 물러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창극에서는 소설보다 다채로운 인물을 도입하여 훨씬 흥미롭게 보여준다. 『박씨전』의작품의 구성도 재미나고,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이해를 도와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 전쟁을 치욕적으로 경험했으며 그에 대한 심리적 보상의 차원에서 『박씨전』이나 『임경업전』 그리고 『임진록』등의 작품이 인기를 누렸었다. 궁극적으로 침략당한 전쟁을 승리한 전쟁으로 바꾸는 허구적 장치의 산물이 바로 이『박씨전』이다. 참담한 상황에서 헝클어진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고자 하는 의식이 이 작품의 기저에 담겨 있다. 또하나 이 작품은 힘찬 여성의 모습을 정면으로 내세워 남성중심 사회의 허약함을 풍자하는 기능을 한다. 박씨는 남편인 이시백의 뒤켠에 있으면서 그를 지배하는 여걸이다. 그이는 물론 처음에는 추한 외모로 인하여 따돌림을 받지만 스스로 지성과 교양을 갖춰나가면서 급기야는 아름다운 자태로 탈바꿈을 한다. 박씨부인의 거듭나기는 이시백의 바라는 바이며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꿈같은 것이라 할수 있다. 또 여성의 입장에서는 당당한 자아실현에 대한 소망이기도 한다. 박씨의 변신은 여성과 남성에게 서로 다른 초상으로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아름답다. 이 작품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너무 즉물적으로 다루어진 감이 없이 않다. 박씨부인은 원래 박색이었고 나중에 허물을 벗고서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 박씨는 원래부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이시백이 박씨의 아름다움을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삼 년이다. 여성의 아니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박씨가 추한 면모를 벗어내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했다는 이야기로 보자면, 기실 여자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윤곽선이나 외양으로 표방되는 아름다움에 더하여 가슴 저 깊은 곳에 진정한 지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야 비로소 문화적 아름다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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