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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8 | [교사일기]
내 인생의 진로를 읽었다
글/유용균 (2004-02-10 09:42:33)
1. 두드리는 글 어린 시절의 영화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비내리는 흑백 영화의 한 장면으로 소중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명절 때면 특선영화를 보기 위해 걸어서 1시간이나 되는 상영관을 친구들과 찾아가곤 했다. 그 당시에도 인류 극장의 문턱은 높아 보였는지, 쥐나 벼룩, 빈대가 나온다는(실제로 쥐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삼류극장으로 항상 향했다. 당연히 싸고, 두편 동시상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출해진 배를 채울 수 있는 짜장면까지 먹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 두편 보고 50원짜리 짜장면을 먹으며 그 명절을 아주 잘 보낸 것이다. <시네마 천국>의 토토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나오는 최민수, 독고영재처럼 영화광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영화에 대한 소박한 관심만으로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내 나이 30이 넘어섰다. 그러던 어느라 연화에 대한 궁금증을 한번에 날려보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처음엔 망설여졌다. ‘내가 영화에 대한 관심을 새삼스럽게 갖는 것은 어떠한 연유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이 길이 내가 갔어야 할 길은 아니었는가 하는 아쉬움에서인가, 아니면 ‘그래 바로 이 길이야’라며 새 진로로 방향선회하는 기회로 삼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는가. 사실이 그랬다. TV의 오락·연예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매체의 양면성을 관통해 TV를 읽어내기 보다는 TV속으로 푹 빠져들어 황당무개한 몽상에 몇날 몇일을 멍청히 보내는 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이런 조바심 속에 전북문화저널사에서 주최한 ‘95시민문화강좌인 영화사 강좌에 참석하게 된다. 거기엔 안면이 있는 선후배들이 많아 외롭지 않았고, 소위 X-세대 차림의 여대생들이 눈에 많이 띄어 괜히 즐거웠다. 더구나 모선배의 강압(?)에 못이겨 소위 ’낙하산 반장‘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결석을 자주 하지 못한 이유나 이 글을 쓰게 되는 이유도 반장이라는 직책 때문일 것이다. 2. 영화강좌에 대한 몇마디 이번 영화사 강좌는 총12회의 강좌에 매 강좌는 금요일 오후 5시부터 정장 4시간(2시간 영화상영, 2시간 강연 및 질의응답) 동안 진행되었다. 특히 영화강좌에 초대되어진 강사님들은 영화<장미빛 인생>의 감독 김홍중 씨로부터 영화평론가 이정하, 이효인 씨 등 쟁쟁한 인물들이었고 특히 부산에서까지 오신 김지석 교수등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매회의 영화상영은 접하기 어려운 귀한 테이프들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으며, 그 강좌는 진지함과 웃음의 한마당이었다. 이번 영화사 강좌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첫째, 영화사 100년과 한국영화 70년을 맞이한 해에 이루어진 시기 적절한 기획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영상미디어와 광범위한 보급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영화에 대한 관심에 비해 영상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에 대한 높아진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셋째, 지방에서는 좀처럼 만나보기 힘들고, 접하기 어려운 인물이나 영화를 접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기회라는 점이었다. 더욱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접해왔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헐리우드 영화의 특색을 알 수 있었고, 영화의 창시자인 뤼미에르,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키아로스타미나 영화사조인 누벨바그니 네오리얼리즘이니 하는 등등의 유익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강좌의 이같은 의의에도 불구하고 문제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첫 번째는 영화사 강좌라는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 대한 합당한 강의는 이루어지지 못한 듯하다는 점이다. 매회의 강좌는 이루어지지 못한 듯하다는 점이다. 매회의 강좌는 영화사에 좀더 충실한 필요가 있었으나 실상 유럽과 러시아, 이란과 아시아, 헐리우드를 넘나들면서도 영화사적인 특색에 대해서는 집중적인 강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같은 배려 없이 쇼트니 시퀸스니 신(scene)이니 하는 영화이론을 들춰내는가 하면, 영화사조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등등의 얘기까지 나오게 된다. 둘째로는 강좌에 강사들에게 영화사 강좌의 성격이나 특색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하다 보니 강사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매 강사의 강연은 훌륭한 명강의였으나 강연의 내용이 하나의 뿌리를 갖고 일관성과 계속성을 가지면서 전진하지 못하고 일회성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셋째, 이번 강좌가 시민강좌인지 학생강좌인지 불분명했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번 강좌에 자주 참여한 대다수는 학생들이었는데 시민들의 참여를 권유, 홍보한 노력에 비해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없었던 듯싶다. 더욱이 두시간 영화를 상영하고 또 두시간을 강의를 듣는 것은 지루하고 배고픈 일이었다. 이 점은 시민과 학생 모두에게 마찬가지 문제였으며, 강좌가 다섯시에 시작한다는 것은 건전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넷째, 영화강좌에 참여하는 수강생들끼리 좀 더 친해지고 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나눌 수 있는 MT나 영화촬영현장에 대한 견학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싶다는 아쉬움이다. 개인적인 영화보기나 참여에만 그치지 않고 수강생들끼리의 인간적인 친목이나 화기 애애함이 있었더라면 훨씬 즐거운 강좌가 되었을 것이고, 거기에 영화촬영현장을 직접 답사하면서 영화제작 현장의 분위기에 깊이 호흡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3. 글을 마치면서 문화저널의 영화사강좌는 마침내 끝났고, 그 강좌를 통해서 나는 인생의 진로와 영상매체가 나름의 연결고리로 묶이는 성과를 얻었다. 문화저널이 어려운 조건과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전북·전주의 문화의식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점은 영화사 강좌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문화저널이 이번 강좌를 통해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의식의 성숙이라는 측면과 영화매체에 대한 이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면, 문화저널은 나름대로 충실했고 그 목표들은 이루었다고 보고 싶고 그 점에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강좌가 진행되면서 전주지역 영상모임단체를 서서히 움트게 했다는 점도 역시 커다란 성과가 아닌가 싶다. 다음에 다시 이같은 강좌가 만들어진다면 영화제인지, 영화이론에 대한 강좌인지, 실무를 중심으로 한 영화제작강좌인지를 분명히 한다면 더 커다란 성과가 있을 듯 싶다. 문화저널의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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