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8 | [세대횡단 문화읽기]
한과 화해의 구성진 조화
박병천 - 구음다스름
글/문윤걸
(2004-02-10 09:44:12)
요즘 우스갯소리 하나로 ‘이제 이 땅에서 유가족이 아닌 사람은 기념관에 보존하자’는 농이 있다. 그만큼 이 땅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또는 죽어가는 목숨들이 많다는 말일진데 그런 억울함과 애통함 속에서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당혹스럽다. 이럴 때 우리 민족은 바로 이런 ‘소리’를 통해서 망자를 달래고 그 원통함을 풀어내었다고 한다.
박병천은 진도 농요인 ‘나도들노래’의 기예능보유자인 조공례와 함께 진도가 만들어 낸 보물이다. 따라서 이 음반에는 진도의 갯내음과 함께 진도의 소리가 흠뻑 묻어있다. 그는 망자를 천상세계로 인도하는 그 유명한 ‘진도씻김굿’을 세상에 알린 ‘진도씻김굿’ 기능보유자로 굿 장단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데 평생을 바친 굿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의 무속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 음악의 모태는 무속이라고 한다. 또 남도음악은 육자배기조의 애절함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 음반에는 진한 남도의 냄새와 함께 혼을 부르고, 달래며, 이야기를 주고 받고, 화해와 함께 이들을 떠나 보내는 그 절절함이 가득하다. 의식적으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들려주려는 자세 대신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때로는 미풍으로, 때로는 삭풍이 휘몰아치듯이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신명과 화해를 지향해 간다. 나의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은 일천하지만 이 음반은 온갖 감정을 가슴에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는 글로써 설명되지 못하는 그런 경험이다. 이런 경험을 여러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이를 권한다.
구음이란 ‘아 으 어’ 같이 의미 없는 음절을 길게 뽑아 목소리를 악기의 음처럼 내면서 소리하는 것으로 무가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음절이 얼마나 많은 말을 우리 마음 속에 만들어내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알기로는 박병천의 구음다스름 외에 김소희의 구음과 안숙선의 구음 음반을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
바람직한 문화적 결과물들을 사주는 일도 우리 문화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30대의 무관심이 우리 문화를 점점 회복 불능에 빠트리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제 문화를 향유할 만한 처지에 놓인 30대들이 문화에 참여하자. 문화에 참여하는 가장 손쉬운 길이 바로 문화를 사주는 것이다. 좋은 소리, 좋은 그림, 좋은 공연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힘을 주자. 그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