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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9 | [교사일기]
교육현장을 생각한다 당당한 교단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 늘 푸른 소나무와 청년교사
글/주중일 무주 부당국교 교사 (2004-02-10 10:00:01)
“산생님! 저 의대 원서 써주시면 안될까요?” “안돼!” “......” “내가 널 위해 생각한 곳이 있는 데... 너 교대 한번 가봐라” “교대요?!”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나 버린 일이지만 대학 나온 사람 누구나 기억하는 원서 쓸 때의 일이다. 집안 사정을 잘 알고 계시던 담임 선생님이 날위해 고민하셨다며 권유한 교대. 한 번도 교대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더군다나 내가 교사가 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었을 때 이야기다. 아니 솔직히 애기하면 쩨쩨하게 꼬마들 앉혀 놓고 분필 가루 묻혀 가며 악을 써 댄 그런 모습이 너무도 싫었었다. 하지만 대학을 가고 싶은 작은 욕망(?) 때문에 난 교대에 첫 발을 디디게 되었고 180명의 동기생 중 많은 여학생들 사이에 묻힌 소수의 남학생이 되었다. 같이 입한한 남학생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교대로 왔다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항변 그리고 절망감으로 가득할 술잔을 나누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웬지 남자가 국민학교 선생을 하면 창피하고 쩨쩨하고 좀 작아 보일 것 같았던 그런생각,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시기에 있는 젊은 청소년들이 지금은 얼마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묻고 싶다. 교대4년 발령 대기 2년. 교사가 되어 5년, 벌써 11년이 지난 지금 난 젊은 남자 교사가 되어 있는 것에 얼마나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가? 대답은 교사라는 특수한 직업이 주는 가치와 즐거움을 조금씩 느껴 가고 있으나 만족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진짜 교육이 전문인의 매력 있는 자기 실현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잘못된 편견과 오해를 버리고 교사가 돼야겠다는 자신 있게 생각하기에는 우리 교육을 둘러싼 환경에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한마디로 인간을 두루는 작업이다. 인간은 계속 변화하며 인간이 창조하는 가치와 물질은 그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큰 힘을 갖고 있다. 변화하는 인격체인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선생님을 따르진 않는다. 적어도 교사가 자기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으며 배울 만 하다고 생각할 때 아이들은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부모 아닌 또 다른 삶의 안내자로서 교사들을 만나 자기의 능력을 키우고 무궁무진한 참 가치를 창조해 가는 것이다. 1년 전부터 교사 모임에서 배우기 시작한 풍물을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점심시간마다 가르쳐 보았다. 내가 완전한 실력자가 아니기에 두려움도 있었으나 아이들은 너무도 좋아했다. 두달만에 장구로는 성이 안 찼던지 한 녀석이 쇠(꽹과리)를 두들겨 대더니 지금은 풍물반 상쇠가 되었다. 일기장이나 글쓰기 공책엔 글쌔, 나중에 국악을 전공하는 음악인이 되겠다고 썼다.(원래 그 아이는 장사해서 돈을 많이 버는게 희망이었었다.) 이렇듯 변화하는 한 인격체의 옆에서 그들 많은 영혼의 깊은 곳에 투영되어 영향을 주고 다시 그 반사빛으로 자신마져 깨끗해져 가는 것이 교사의 가장 큰 기쁨인 것 같다. 그럼 난 왜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 교육 현실은 많은 교사들의 자부심과 만족감을 높이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는, 우수한 초등 학교 교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 교사의 질이 향상되려면 우선 우수한 인력을 교사로 양성하기 위한 사회적 인식과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더욱이 교육 중에서도 기초 교육이며 기본적 능력과 인성을 기르는 초등교육에서는 교사의 질이 곧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임용고시라는 제도적 틀 속에 갇힌 교대는 그 목적자체가 심하게 위협받고 있고 학부모나 학생들도 교대를 소신껏 지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머지않아 교육현장에서 남자 교사들은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이 때문이다. 얼마 전에 만난 교대 재학생 후배는 임용고시르 준비하다 보면 차라리 공사나 기업체 시험을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런 교대생들에게 전인적 아동을 기르는 교사의 사명감이라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지 궁금할 뿐이다. 둘째로, 교원에 대한 처우는 어떠한가? 이 부분은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5.31교육 개혁안에서도 미처 담지 못한 내용이라고 교육 관계자들도 시인하는 문제이다.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 봉급체게, 국가 기관 중 가장 정보화 첨단화가 늦다는 학교 환경, 갈수록 폐교의 위기에 처해있는 농촌 하교에 대한 지원의 부족... 직 간접적으로 교원의 처우를 통제하는 교육 환경 자체가 문제인 것 같다.(GNP 5% 교육 비 확보는 이번 교육 개혁안에도 선언 식으로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처우와 제반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진정한 교육 개혁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중등 교사에 비해 여러 가지 잡무 처리에 더 시달려야 하는 초등의 경우 교과전담제 실시나 사무 보조원 파견 등이 점진적으로 시행되고는 있다. 그러나 담임 수당의 신설이나 농촌 학교에 대한 지원 등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셋째로, 창의적인 교육 인간을 살리는 교육을 하자고 주장하는 교사들의 요구가 언제나 벽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 해 두 번째로 내가 근무하 무주 지역에서는 어린이날 행사를 치렀다. 농촌아이들에게 즐거운 놀이마당을 열어 공동체 정신과 다양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 선생님들이 준비한 이 행사에는 무려 500여 명의 아이들이 참석하였다. 지역 주민들의 협조와 선생님들의 성원에 힘든 줄 모르고 즐거웠는데 행사가 끝날 즈음 우리에게 날아온 소식은 도교육청에서 전교조와 연관된 것 같기 때문에 참가 교사들에게 징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속리산에서 참교육 실천을 위한 교사 연수가 열린다. 처음에는 중등 교사들이 많았는데 얼마 전부터는 초등 교사들이 주를 이룬다. 국어 교과를 연구하는 모임, 아동 미술을 연구하고, 동화를 교사가 직접 써 보기 위한 모임 등에서 더위도 잊은 채 많은 초등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마치 예술적인 그림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작년에 교육 문예창작회 연수를 받고 동화를 두 편 써 보았다. 스스로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읽어 주고 반응을 보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누구 이야기 같은데?!”하며 재잘거릴 때 “야 이거 선생님이 쓴거다” “와~!” 작은 예이지만 교사들은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비록 만족스럽지 못한 교육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언제나 또렷한 눈으로 교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교직 경력이 얼마 되지 않으면서 너무 단정적으로 교사로서의 자기 존재를 바라보고 있느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하지만 젊은 교사들이 소명의식과 열정을 갖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우리 교육 현실을 염려하며 떳떳하고 당당하게 교단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책을 한 권 사거나 연초에 일기장 첫장에 늘 쓰는 말이 있다. 그말로 끝을 맺고 싶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언제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청년 교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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