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9 | [세대횡단 문화읽기]
다시찾는 전북미술사 22
근대화에 대한 새로운 자각의 선구자 이상길(李相吉)
글/이철량 전북대교수 미술교육과
(2004-02-10 10:01:10)
한국의 전통회화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특히 몇 차례에 걸쳐 특별한 변화를 겪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한일합방에 의한 시대상황의 급변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합병하고 난 이후 가장 주의 기울였던 것은 문화말살정책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그 민족의 정신이며 삶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한민족 문화 말살에 대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미술 분야에서는 “조선미술전람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약칭 ‘선전’이라고 부른다. 선전은 1922년 조선총독부가 설치하여 44년까지 23회를 거쳐 전람회를 개최하게 된다. 조선총독부가 선전을 개최하게 된 배경은 서화협회의 활동에 자극을 받았던데 일차적 이유가 있고 두 번째는 초기의 강압통치가 3.1운동 같은 대규모 독립운동을 불러와 문화를 표방한 새로운 통치개념을 설정한 데 원인이 있다고 보여진다. 서화협회는 1918년 결성된 최초의 민족작가들의 단체로서 민족적 긍지를 일깨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미술인의 모임체였다. 선전은 한국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역할에 대해 크게 정리하면 먼저 한국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부츠기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고 두 번째는 역기능으로서 한국 전통 미술이 일본색을 닮아가는 경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 전통 미술은 근대화에 대한 새로운 자각에 눈뜨기 시작했음도 지적되어질수 있었다.
전북지역의 작가들 중에서도 적어도 1900년대에 활동한 작가들의 경향은 앞서 언급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파악되어질 작가들이 많다. 이상길이 그렇고 임신(林愼), 정복연(鄭復然), 박래현(朴崍賢)등이 그렇다. 이들은 1900년대이후에 출생하여 일재의 교육을 받았으며 화가로서 활동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작품 속에선 과거의 조선조적 관념의 작품들하고는 표현 형식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상길은 1901년에 정읍 고부에서 출생하여 1959년까지 활동했던 작가였다. 그리고 그의 호는 소제(昭齊)라고 불렸으며 전주에서 주로 활동했었던 지역작가였다. 그리고 그의 일찍부터 서예에 몰두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스승 황종화가 제2회 선전에 입선한 서예가였고 또한 그의 작품 속에 서체적 필치가 넘쳐나고 있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그림은 황종화에게 배웠다고 전하나 필자는 황종화의 유작을 확인하기 어려워 그 상황을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이상길은 서예뿐만 아니라 산수화와 문인화 등 다방면에 걸쳐서 출중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작가라는 점이다.
이상길의 산수화를 보면 그의 작품이 예전 그의 선배들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8폭으로 된 춘경산수화는 전통과 근대가 홍용된 표현으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전체적짜임새는 좌측하단에서 우측상단으로 밀어 올려 나가는 구도법을 쓰고 있는 전통적 기법이다. 왼쪽 계곡에서는 폭포가 시원스럽게 쏟아지고 있는 전경과 후경을 가르는 산덩어리 사이의 계곡에서도 한줄기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다. 전면에는 작은 초가들이 소곤거리듯 마주 앉아있는 소담한 마을들이 산밑에 자리하고 들에는 갓 일구어진 밭고랑에서 아지랑이가 피는 듯하다. 마을 주변엔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들녘과 산허리엔 봄빛이 완연하다. 산능선을 타고 서있는 소나무들의 정겨운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풍경의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이상길의 산수 속엔 이렇듯 정이 듬뿍 담긴 한국적 풍경의 정서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감이 사실성을 바탕에 둔 기법에서 우러나오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상길이 이렇듯 전통산수의 묘법에서 벗어나 사실적 묘사에 접근해있는 점이 1900년대 선전을 통해 한국화단에 심어진 새로운 경향이었다. 물론 이상길이 지역작가로서 선전과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선전을 통하지 않고는 근대교육을 통한 새로운 묘사방법과 의식을 갖게 되었을 가능성은 많았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상길은 이 작품만을 통해보면 아직도 전통적 관념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다. 화면의 구성과 산세의 조합 그리고 산을 그려나가는 준의 표현이 전통쪽에 훨씬 가까이 서있다. 예컨대 쏟아 지는 폭포와 물줄기의 묘사에서 그렇고, 소나무를 비롯한 중경에 나타나고 있는 수목의 묘사 방식이 전통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기본적인 자연관이 관념성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점이다. 한국의 산야를 사생하고 그려나가느 전통은 18C겸제를 비롯하여 나타나지만 일제 이후 새로운 각도에서 사생풍이 등잔한다. 이는 일본이 일찍이 서양회화를 받아들여 시작한 근대적 시각이 한국화단에서 수용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왜색화풍의 수용으로 발전하게 되지만 이상길의 경우는 아직 전통적 관념의 세계에 발을 딛고 있어 왜색 화풍으로 발전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상길이 범상한 작가는 아니었다는 점은 화조병풍에서도 잘 알 수 있다. 8폭의 화조병풍 속에 제비,모란,물새,다람쥐 등 다채로운 소재를 담고 있는데 모두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사진에서 보는 수양버들 사이를 날고 있는 두 마리의 제비그림은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인다. 화조는 조선시대에서부터 많이 다루어진 소재이지만 이상길의 작품은 조선조의 화조화에서 훨씬 벗어나는 감각을 갖고 있다. 이것은 산수에서 보였던 것과 같이 그가 사생을 통한 사실감의 표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보인다. 두 마리 제비가 날개짓하는 동세의 원할함이나 묘사의 능력은 이상길이 많은 관찰에서 얻어진 결과인 듯하고 버드나무 가지의 유연성은 그의 필세의 운용이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물새와 연꽃이 어우러짐도 수준작이다. 연과 갈대가 교차하며 포물선을 만들고 그 중심에 두 마리의 물새를 포치한 구도감각과 사실묘사는 뛰어난 예이다. 한 필 한 획도 빈틈없이 끌어나간 이상길의 운필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들이 새로운 신선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점은 무엇보다 담채의 효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초목의 빛깔들을 종래의 먹으로 그리고 담채를 올리는 방법이 아니라 직접 담채로 그려내는 수법을 쓰고 있어 훨씬 사실감을 높이고 장식성을 강조하고 있다. 담담한 담채의 빛은 수채화의 기분을 주기도 한다.
이상길의 사실묘사에 대한 능력은 영모화의 범주에 들 수 있는 호랑이 그림에서 가장 돋보인다. 이상길의 호랑이를 직접 사생하고 얻어낸 기량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호랑이의 동세의 유연함이나 얼룩무늬의 흐름, 포효하는 안면 묘사가 섬세하고 정확하다. 잔잔한 털의 묘사나 빛깔의 적절한 효과가 더욱 실제감을 나타낸다. 이 그림에서 이상길의 원숙한 필치와 자신감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데 아마도 말년에 그려진 수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호랑이 전면에 그려진 풀숲과 후면의 나무숲 표현은 달인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이상길의 작품을 더욱 많이 확인할 수 있다면 전환기의 전북 전통회화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움될 것으로 생각되나 아쉬울 뿐이다. 우리는 이상길의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서 전통회화가 근대적 시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엿볼수 있다. 다만 이렇게 출중한 작가들이 지역에서 제야에 숨어버려 더욱 발전되지 못한 아쉬움과 그동안 발굴되고 평가되지 못한 우리 지역의 문화적 척박함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