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9 | [문화칼럼]
우째 이런 일이!
-5.18관련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글/신양균 전북대학교 교수 공법학과
(2004-02-10 10:08:37)
지난 6.27지방자치 단체 통합 선거에서 반민자경향이 투표 결과로 나타나 야권이 압도적 우세르 나타냈고 이어서 민선 서울 시장 취임 하루 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마저 터지자, 여러 사람들이 김대통령의 입에서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이 터져나왔을 것이라고 상상할 것이다. 지난달 18일 검찰이 5.18광주 민주화 운동 등과 관련하여 내란죄 혐의로 고소 고발 된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속 고발인 58명 전원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이제 많은 국민들의 입에서 같은 말이 터져 나왔으리라 는 상상을 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우째 이런일이!”라는 놀라움에 대한 감정 표현이 누구에게나 어색하지 않게 된 것처럼, 충격적인 사건들도 너무 많아 이제 웬만한 일로는 국민들도 그리 놀라지 않게 된거 같다.
그러나 이른바 자극과잉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자그에 대한 반응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보다 더욱 큰문제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대개 예상했던 일이라는 사실이다. 건축시공이나 안전관리 부재로 인한 각종사고들은 물론이고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런한 사실은 최근에 여권의 핵심이었던 총무처장관이 4천억 비자금계좌설을 발설한 사건에 대해 국민들이 보인 태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정치적인 성격을 가진 사건일수록 정부와 국민들이 충격에 대한 반응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5.18관련자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잘 나타났다.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80년 당시 비상계엄하의 각종 조치들이 전체적으로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헌정질서에 근거하여 새로운 정권과 헌법 질서의 창출을 위한 행위들의 법적 효력을 다투거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면서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성공한 내란을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결정이 실제법, 절차법에 걸쳐 많은 법이론적 문제를 안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형사법을 전공ㅇ하는 한사람으로서 이러한 점들을 여기서 하나하나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80년 정치 군인들의 행위는 내란으로서 결코 생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군인들의 총칼과 적나라한 정치권력으로 국민의 눈과 입을 막아 왔던 5.6공 정권이 87년 6월 항쟁을 출발로 5공 청문회가 3당 합당에 걸쳐 존립 기반을완전히 상실해 버린 점, 그리고 검찰이 이 사건을 다루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란이 결국 실패로 끝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현 정부는 이렇게 실패한 내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대통령은 정치적 범죄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한<국민단결화해촉진법>에 서명한뒤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만 가공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화해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우리 현실의 이야기도 아니고 앞날의 희망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과거의 인종차별 정책의 이름으로 자행한 정치적 범죄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 7월 19에 제정되 법률에 만델라 대통령이 서명한 내용을 보도한 기사이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어느 문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 정부와 검찰이 5.18에 대해 “과거를 묻지(ask)마세요”를 외치는 이 순간에서 오랜 백인통치를 극복한 남아공에서는 “과거를 묻지(bury)마세요”를 외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이제 검찰의 결정을 뒤집고 과거를 묻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헌법재찬소의 위헌결정과 특별법제정이다. 전자와 관련해서 공소시효가 문제되고 있다. 겸찰의 주장에 따르면 최규하 씨 (개인적으로 이 사람에 대해 <전>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조차 아깝다고 생각한다)가 하야한 8월 15일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되었으므로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헌법재판소는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위헌 여부를 다툴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5.6공 정권이 정치권력을 잡고 있었던 동안 검찰의 공소권 행사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따라서 그 기간은 당연히 공소시효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5.18관련자의 처벌을 위한 공소시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의 현실적 위상에 비추어 보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 한다면 현정가 앞장서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이 문제르 다루는 것이 보다 바람직 할 것이다.
검찰은 이번 불기소 결정을 내리면서 법적 단절을 우려하는 내린 부득이한 결정이라고 항변하였다. 80년 당시의 행위를 내란죄로 처벌하게 되면 당시에 제정된 헌법이나 법률을 토대로 이루어진 현재의 법질서에 중대한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의 법률이 일제하의 법을 상당부분 계수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의 식민지배가 정당화되거나 과거의 역사로 묻혀질 수 없듯이, 법질서의 혼란이 결코 내란 사실을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이미 6공 정권마저도 5공의 법적정치적 유산을 청산하기 위해 광주 문제를 새롭게 다루고 보상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등의 노력을기울여 왔던 점을 감안할 때, 스스로 문민정부를 내세우는 현 정부가 내란에 의해 세워진 5공 정권을 법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검찰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더욱이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법률의 단절이 아니라 <역사의 단절>이다.그릇된 역사를 올바로 청산하지 못하면 올바른 역사가 이어질 수 없다. 친일 세력과 단절하지 못한 이승만 정권이나 친일 세력으로서 군부의 힘을 업고 20년의 군부 정권을 유지해 온 박정희 정권과 결별하지 못한 채 맞이한 1980년이 아픔이 오늘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그러나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해방 이후 최대의 사면을 단행한 현 정부가 권력형 비리 사범을 대거 사면함으로써 역사의 단절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5.18관련자에 대한 처벌은 지나친 요구일지도 모른다.
문민정부를 자처하는 김영상정부가 검찰의 금번 불기소 결정에 대해 “우째 이런 일이!”라는 경악의 말을 침묵하고 있는 이상, 해방 50년의 벅찬 감격을 맞이하는 이번 광복절 행사는 조선 총독부의 첨탑 철거 행사로 끝나고 5.18을 뒤집는 8.15로 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마무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