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9 | [파랑새를 찾아서]
저널여정
여름의 끝-지리산 무명의 계곡에서
글/조연 산모임 ‘두류패’회원
(2004-02-10 10:32:46)
산에 오르다보면 이따금 이 고생스런 작업이 미친 것 같기도 하고 편한 생활이나 할 것인데 괜스레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 작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은 평범한 목표이자 인생의 목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근본적으로 모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의 유혹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털어 버리고 기어오른다.
나쁜 날씨나 최악의 건강 상태가 아닌한 그산 정상에 우리의 이상이 그곳에 있다. 별을 쫓아 사막을 여행하는 캐러벤이 결코 그 별에 다다를 수 없듯이 우리 산사람은 그 이상에는 도달할 수 없으나 그 이상을 향해간다.
걔곡에 들어서면 그 계곡과 능선이 눈 안에 가득찬다. 어느곳에 큰 바위가 있고, 조금 더 가면 네거리가 나오고 그곳에서 몇분을 더 가면 큰 나무가 있고, 그곳을 지나치면 가파른 능선이나오고... 이러한 지리적 개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오를수 있기게 오를 뿐이다. 마음 속에 가득히 지리산이 차 있다. 산이 거기 있어 기어이 오르고야 말겠다는 서구의 개척적이고 투쟁적인 마음은 아니다. 이 험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 산사람들이 산을 찾아온 것은 우리가 사는 곳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소중한 삶을 더욱 잘지내기 위한 삶에의 충전이다. 이곳에서 지낸 하룻밤이 한달을 지내기에 흡족한 에너지의 비축이 될 수 있다. 하찮은 일에 살의를 느끼는 흉한 문명의 시대에까지 와있는 것 같다. 우리의 생활이 자연 속에 있을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의식이 리바이어턴(Leviathan- 성경에 나오는 거대한 괴물) 같이 살아있어 단지 무관한 타인이라는 것, 심지어는 가까이에 있는 이웃에게 살의를 느끼고는 스스로 놀란 일이 없었는가. 자연은 친구고 인간에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은 자연을 닮아있다. 자연이란 인간의 마음을위해여 있으며 자연의 세계르 통하여 우리를 위로하기도 한다. 꽃으로 위로하고 푸른 숲으로 상처를 어루만진다. 자연주의자인 미국의 존 위넌은 자연을 노래한다.
산에 올라 그 정기를 느껴보라
나무에 쏟아지느 햇빛처럼
자연의 평온함이 그대 위에
쏟아질 것이다.
바람은 그대에게
신선함을 불어다 주고
폭풍은 에너지를 줄 것이며
모든 근심은 낙엽 떨어지 듯
엀어질 것이다.
엄청난 무질서와 문명의 범람으로 이렇듯 어지러우면 당연히 ‘자연으로 돌아가지 말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다시는 이 산을 찾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떠나버린다. 다음에 여름이 오기 전 살며시 이산자락을 찾아온다. 위대한 이 산은 새로운 산으로 되어있다. 자연의 경이가 지리산에서 매년 일어난다. 이 산자락에서 장사를 하고 마음껏 어질로 놓고, 생계를 이어가고, 또 돈으로 버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국립공원이라고 그곳을 직장으로 하는 많은 사람들도 있다. 이들 모두가 산을 더럽히기도 하고 청결하게도 한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다녀갔음에도, 언제나 아름다운 숲과 계곡을 보여준다. 점술에서 소중한 말은 희망이다. 이 지리산이 흉하게 길이 나있고, 파헤쳐져 있고 함부로 어지렵혀졌으나 이 산에는 희망이 있다 그누구도 이 산을 내버리자고 말하지 않을 터이니, 이 겨레의 터전이었고 우리 함께 숨쉬는 곳이고, 이 산이 살아있는 한 우리도 더불어 있을 것이다.
문명의 세계에서 우리의 아이들과 더불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도시는 아니다. 아름다ㅇㄴ 우리의 아들딸이 호화스런오락시설이나 깔끔한 가득에서 고급 식사를 한다고 해서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 같이 자연 속에서 몸을 부딪히고 함께 하늘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라 천왕봉을 몇 회 등반한 기록이 있다고 자랑하며, 그 기록 때문에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에 가득 담은 추억이나 무명의 계곡이나 짐승이 다니는 호젓한 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수많은 폭포들, 계곡 웅덩이들, 푸른이끼가 억겁같이 세월을 겪어온 이 계곡을 그들은 올라갈 자격이 없다. 여기는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찾지 못하는 무안한 자유가 있고, 또한 산이 이루는 맑은 정신세계가 있다.
산을 사랑했던 탓에 비교적 다른것에 대한 정열은 무력했으나 산에 대한 정열은 깊었다. 여름에는 무명의 계곡으로 또는 이름모를 계곡으로, 겨울이면 흰눈 쌓인 봉우리를, 칼날같은 첨봉으로, 에메랄드 빛으로 꽁꽁 얼어붙은 계곡을 찾았다. 산이야말로 우리의 고향이다. 모두의 고향이다.
산행이 끝나고 돌아올 때 그 큰 산에서 무엇을 가져왔을까. 아름다운 일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있겠으나, 더욱 소중한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에 담아 올 때가 더욱 많이 있다. 큰 깨우침도 없으며 위대한 사상의 편린을 담아온 것도 아닐터이다. 그 계곡과 능선과 봉우리를 다녀 본 후 후회없이 돌아온다. 몸과 마음의 찌꺼기를 대 자연의 품에 털어버리고 온다. 그리고 편히 쉬어야 할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