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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0 | [교사일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 사라져 가는 농촌 국민학교
글/정은숙 (2004-02-10 10:40:59)
엊그제 우리반 아이 한 명이 전학을 갔다. 물론 도시로 말이다. 농촌의 국민학교 6학년 담임 교사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2학기 중반이나 지나 중학교 입학원서를 쓰기 시작하면 전학이 힘들다는 압박감 때문에 서둘러 기를 쓰고 전학을 시키시는 학부모님을 누구라서 담임이랍시고 원망할 수 있겠는가? 헌법에 보장된 거주 이전의 자유를 만끽하는 전 가족의 이사가 아니고 농촌살이에 대한 서러움에 농촌 교육에 대한 막막함에 공부 제법하는 자식이라도 건져내고 싶은 몸부림으로 달랑 아이만 도회지로 내보내니까 하는 말이다. 농촌에서는 6학년 담임이 아니더라도 4~5학년 담임이면 많이 겪는 일이다. 한반에 대여섯 명이 전학을 가면 대개 족집게로 집어낸 듯 1등에서 5~6등이다. 문제는 그 전학을 못가고 처져서 남는 걸로 여겨지는 우리 아이들이다. 한명 한명 친구가 그것도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전학을 갈 때마다 부러움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알게 모르게 패배감에 젖어드는 아이들을 뭐라고 하며 달래야 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도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면 단위 큰 학교라서 이 정도지만 리 단위 학교로 들어가면 정말 심각하다. 이농 현상이 뭐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나 이제는 농촌이 사멸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전교생이 50명 미만이고 특히 저 학년으로 내려갈수록 이동수가 적어서 폐교 문제가 거론되면 학부모님들은 어느 누구도 나서서 반대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농촌 벽지에 초등 학교 하나가 폐교되면 마을 공동체가 없어지는 걸 뜻하는 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 자식이 축구 한 번 해볼 인원이 채 안되는 속에서, 1학년 취학 아동이 1명 밖에 없는 곳에서 공부하는 건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이 교사에게서 전달되는 지식만이 전부가 아니고 어린이 상호간의 사회성 발달이 중요함을 부인하지 못하는 바에야 너무나 일리가 있는 행위일 것이다. 교육부의 소규모 농촌 학교 통폐합 지침에 따르면 2001년까지 1개면 1개교로 계획되어 있다. 폐교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정부의 계산은 1개교 폐교에 1년 예산 1500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농촌 주민들은 너나 없이 심한 상실감에 빠지며 미래에 대한 절망을 잃고 20~30대 젊은 층에서 국민학교 폐교문제 자체가 압도적인 이농 요인으로 작용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희안한 일은 폐교될 학교의 교사들은 하나같이 폐교에 반대하며 교장은 하나같이 찬성하는 것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교장은 어서 떠야 영전이 될 수 있고 교사들은 승진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벽지 학교 근무 점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이제라도 절대 서둘러야 할 일은 더 이상의 폐교를 막아야 한다. 지난 5·31 교육 개혁안 발표 이후 조기 영어 교육 바람이 공식화 되기 시작했다. 농촌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마침내 우리 학교에서도 요즘들어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영어 반을 뽑아 방과 후 매일 한 시간씩 지도하라는 지시를 내려졌다. 하기야, 지시는 아니고 양해를 구한다는 덧붙임과 함께였다. 나는 취지야 훌륭하지만 현재의 열악한 초등 교육 여건 속에서는 오히려 정규 교육 과정에 큰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반대했다.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담임 교사 한 명이 8개 과목에 걸쳐 일주일에 29시간의 수업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일기장이나 과제 해결 상태, 자습 진행 상황 한 번 제 때에 살펴주기 어렵다. 매 시간마다 바뀌는 수업 내용을 창의적이고 즐겁게 학습하기 위한 교재 연주가 자료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아 내가 생각해도 수업의 질이 너무 낮은 데에 자존심이 상하고 죄의식이 늘상 떠나지 않고 있는 마당에 그런 시급한 일을 제쳐 두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도 교육청의 농촌 학교 종일 학교 정책을 들이대며 밀어부칠 태세였다. 원래는 지역의 자원 인사를 활용해 수익자 부담으로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해야 하는데 농촌지역에는 미국을 갔다온 사람이 없으니까 교사가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페스탈로찌가 환생하신 게 분명한 우리 교감 선생님께서는 컴퓨터, 풍물, 산수 경시 등 모든 특활 영역에 확대해서 매일 1시간씩 더 지도해 주고 싶은 욕심을 부렸는데 포기해야 하는 게 못내 아쉬워 나는 게으르고 사명감없는 교사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부지런하고 사명감 넘치는 분이 초등 교육이 요모양 요꼴로 낙후되도록 30년 넘게 왜 가만히 놔두기만 하셨냐고 나도 당돌하게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농촌 교육을 위해 해야할 일은 바로 따로 있다. 지는 초여름 지자체 선거에서 농촌 지역의 각 후보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농촌 교육을 살리겠다고 공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그 실천을 더 늦춰서는 안된다. 가장 현실가능한 합리적 대안은 도시와 농촌의 지역 여건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농촌 지역의 일방적인 태도를 멈추기 위해 학급당 수를 농촌부터 30명 미만으로 줄여 개인의 적성과 인성를 개발하는 전인 교육을 모범적으로 실시하는 일이다. 농촌에서야말로 이상적인 전인 교육이 가능하며 지역 주민과 함께 교육 자치를 완벽하게 실시해 낼 수 있는 곳이다. 과자, 술, 휘발유 심지어 담배에까지도 매겨진 교육세로 늘어나는 5조 원의 돈은 최소한의 사회 복지 개념과 국가 의무 교육을 무시하고 1500만 원을 아낀다는 논리로 폐교되는 농촌 지역의 초등 학교에 최우선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교감 선생님께서 그렇게도 소원하시는 특활반의 과외 활동도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고, 내가 바라는 국어, 산수, 자연, 사회, 도덕, 실과 수업도 제대로 정상적인 수업도 받아보고 농촌 젊은이들은 삶의 원천인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게 해야 한다. 높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우리 아이들은 운동회로 한참 바쁘다. 이 가을이 깊어가기 전에 나는 그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 이 시대를 사는 내가 몸담고 있는 농촌의 어린이들을 위해 당연히 해야할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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