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0 | [문화칼럼]
예술적 성과에 걸맞는 문화공간이 필요하다
글/박희태
(2004-02-10 10:56:41)
우리지역 문화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교육이 요구되는 시점이 왔다.
지금의 전북예술회관은 1982년 3얼 10일 도내 많은 문화 향수자들의 오랜 바램으로 개관된 이래 94년도 공연, 전시 실적 494건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인들의 도량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러나 개관 13년째를 맞이하는 전북예술회관은 장소의 협소, 시설 및 장비의 노후 등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따라서 예향으로서의 면모 쇄신과 지방 문화예술이 진흥을 위해 94년부터 가칭 전북예술회관의 건립이 가시화되었다. 그에 따라 그 기능과 활용도를 새롭게 마련하며 앞으로 건립될 회관에 대해서는 미래지향적이며 문화공간 본연의 개념과 기능 및 운영에 대한 올바른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필지가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공간 중 공연예술 분야와 관련된 공연장(극장)부문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문화예술진흥원이 간행한 93년도 문예예감 <표1>과 95년도 문예예감 자료의 전국문화공간현황 <표2>에 따르면 전국의 공연장을 2년 사이 34개소가 늘어난 230개소이다. 그 중 서울은 소극장 13개소가 증가하여 총 77개소로 전체의 33%를 차지함으로써 중앙으로의 문화편중 현상은 심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14개 시도 별로는 강원, 대극장 1개소 중극장 3개소 소극장 2개소, 경북, 중극장 6개소, 경남, 중극장 2개소 소극장 1개소, 인천, 대극장 1개소, 전남, 중극장 1개소, 대구, 광주, 대전, 충북이 각각 소극장 1개소 그리고 경기는 올해 말 중극장 1개소가 완공될 예정이다. 특히 지방에 중극장 12개소, 소극장 7개소가 증가한 것은 지방문화 활성화 측면에 중점을 둔 공연장 기능의 확보로 보아지며 무척 고무적인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전북, 부산(92년 대·중·소극장 건립), 충남, 제주지역은 단 한 건의 공연장도 건립되지 못했다. 우리지역의 공연장은 숫자상으로 타지역에 비해 적지 않은 수치이나 극장의 시설이나 운영에서 공연장 고유의 기능을 상담부분 상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내 예술인들의 활동이 심도를 더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공연장 수치의 우위가 예술적 성취도와 반드시 비례한다고 볼 수많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내는 도내 예술인의 사기진작과 문화휴식공간을 총족시키기 위해서는 공연장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각 공연장을 특성있는 공연장으로 개축)가 있어야 하고 예술행정에 보다 전문화된 문화정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전체적인 문화공간이 점증적인 증가는 당연히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나 중앙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게 된다면 지방화 시대를 맞이하여 지역주민의 문화 향유에 대한 불만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극장이라고 유추되는 디오니소(Dionysus)극장이 기원전 6세기 후반 희랍에 수용인원 17,000명 규모로 아테네 자리잡음으로써 동시대의 많은 문인과 철인들이 그곳에 모여 활동하게 되고 그 힘이 희랍문화를 꽃피웠던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02년 최초의 관립극장『헙률사』가 설립되고 전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예인들을 헙률사 밑에 관장시켜 주 활동무대를 중앙에 집중시키고 지방 예인들의 쥐요 연희 장소인 사찰에서의 연예활동을 금지시켰다. 그로 인해 지방의 문화전수는 단절되고 지방민의 유희거리는 차츰 없어지고 이후 일제하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은 그나마 면면히 맥을 이어오던 지방전통 예인의 정신과 문화유산을 황폐케 하였다. 더욱이 해방 후 외지에서 돌아온 지식인과 예술인들은 중앙에 몰려들어 우익과 좌익으로 갈리어 사상적·정치적 입장에 부합된 예술만을 취하여 모든 부분에서 소외받고 문화적 명맥이 끊어진 지방 전통문화의 부활에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거기에 한국전쟁으로 많은 예술인들이 남북으로 갈리어 체제에 영합하는 예술만을 집착, 민중과 지역 주민의 예술 정서와는 거리가 먼 정치성 강한 작품으로 일관되었다. 5·16이후 정권은 이른바 강력한 근대화 정책을 통해 ‘가난으로 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세운 경제 개발에 주안을 두었고, 이는 다시 국가의 문화 정책에 대한 몰이해와 전시행정에 의한 치졸한 건물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양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단적인 예로 1967년 기공하여 1973년 준공된 국립 중앙국립극장을 들 수 있는데 이 건물은 당시 남북회담의 진행중에 북측에 견줄 만한 문화공간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지어졌다. 여기에 1974년 기공하여 1978년 준공된 세종 문화회관은 소실되기 전까지는 시민회관으로 불리우며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이 공존하는 시민의 친숙한 문화공간으로 남아 그나마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이 완공된 해 통일주체국민회의 회의장으로 활용된 이후 관급 행사장의 역할에 그 본래의 기능을 많은 부분 침식 당해 왔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또한 본의 아니게 관악캠퍼스로 자리를 옮긴 서울대학교 자리에 추억에 대하 보상의 차원에서 문예진흥원 문예회관이 1981년 건립되었다. 이후 격변하던 80년대에 독재권력에 대한 민심의 동요와 경제적 풍요로움으로 사회 분위기의 일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인구 1,000만이 집중되어 있는 서울에 또다시 대단위 복합 예술회관의 건립이 추진되었다. 바로 이 건물이 1982년 논의를 시작하여 1984년 기공, 1988년 서둘러 일부를 개관하는 공정을 거쳐 1992년도 준공을 보게된 예술의 전당이다.
이처럼 문화공간이 준공은 순수한 문화정책의 반영이기보다는 정치적 상황이나 과시적인 선전물로서의 가치에 중점을 주어졌고 따라서 문화공간에 대한 배려는 늘 모든 상황의 진앙지가 되는 서울에 집중적으로 건립되었다. 결국 계속적으로 소외되어 온 지방의 문화공간은 1981년 서울 문예진흥원 문예회관이 건립을 시작으로 <표3>에서와 같이 각 시, 도 문화예술회관이 건립되면서 오히려 더욱 좋지 않은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표3>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문예회관 건립에 있어서 공사기간(6·8년), 공사비용(336억원) 및 공연장, 부대시설 면에 있어서 현저히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문예진흥원에서 지원하는 기존문화시설 개수 지원실적을 보면 1985년 총공사비 4억원 중 2억원의 지원을 받아 개수공사를 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원액수 면에서는 중소도시 소재의 시민회관의 지원액과 비슷하며 복합공간에 대한 정책적 배려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93·94년도 문예연감에 나타난 지역 공연 현황을 살펴보면 지방의 예술활동은 양과 질 모두에게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지역은 양악의 공연 횟수가 93년에 비해 2배 이상으로 증가하여 의미있는 변화를 보여주었으나, 오페라와 같은 대형무대는 상대적으로 93년에 2회로 끝났다는 것은 지역 음악가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공간의 부재가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실내악 연주에 필요한 중극장 규모의 콘서트 홀이 전무한 상태에서도 년 11회를 치루어 냈다는 것은 지역문화의 특성을 살리고 지역적 조건에 걸맞는 예술행정의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악 공연은 지역 특성상 해마다 증가해 왔으며 타 지역에 비해 많은 공연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남원의 국립국악원 공연장이 완공되면 보다 활발한 국악공연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전통있는 전주 대사습의 공연장을 독립된 장소를 마련하여 지역 문화공간의 명소로 만들었으며 하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바램이다. 이태리 북부의 소도시 베로나의 노천극장(Arena diverona, dir 2,000명 수용)은 주변의 아름다움 풍경과 어우러져 여름에는 오페라 축제가 2개월간 계속된다. 여기에는 전세계의 오페라 매니아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흥겨운 시간을 보내며 그들이 지출하는 비용은 그 지역경제 엄청난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전북지역 역시 자연의 수려함과 전통의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한 문화사업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정책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하겠다.
한편 연극공연은 전북지역에 소극장 2개라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질높은 공연은 매년 증가하는 상황을 보여 연극인과 연극 애호가들에게 공간문제는 가혹한 정도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극장(Theatre)이라면 의례 영화나 감상하는 장소로서의 이미지 이상은 없으며, 또한 행사장으로 혼용함에 따라 극장으로서의 기능마저도 부분적으로 상실하고 있는 형편이다. 서양의 경우 연극 공연장과 영화상영을 위한 시네마(Cinema)는 엄격히 구분되고 있으며, 연극이 자생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 주고 극단을 위해 시나 경제단체 또는 기업체에서도 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도내 극단의 연습장 폐쇄 소식은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써 자괴감마저 느끼게 하는 일 이었으며, 청소년층의 건강한 문화적 의식의 확산을 위해서도 이에 대한 보완이 시급하다 하겠다.
끝으로 무용공연의 현황은 애석하게도 94년에 오히려 감소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물론 도내에서의 공연과 외지에서의 공연을 합친다면 분명 증가 했을 것이라 본다. 다만 도내에는 무용과가 4년제 대학 3개와 2년제 대학 1개가 있고 이 수치는 전국적으로 서울 경인지역 다음으로 많은 수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북지역에서 공연횟수의 감소는 무용예술인 스스로 반성해보아야 할 문제이겠지만 도내 공연장의 종합적인 형태로 공연되는 무용극을 선보이기에는 너무 고충이 크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더욱이 보다 풍요로운 무용활동을 위해서는 도내 4개 대학에서 배출된 인력을 수용할 도립 국악원 무용단의 확장(연습실확보와 인원)과아울러 시립단체가 시급히 창단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공연 예술분야에서의 우리지역 예술인들의 활동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새로이 지어질 전북문화예술회관은 보다 전문성이 있는 알찬 공연장으로의 탄생되어야 한다. 질적으로 안정된 문화공간은 질높은 문화예술의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는 평범한 사실에 진지한 관심과 애정이 모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