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0 | [저널초점]
지역 감정론에 대하여
글/천이두
(2004-02-10 11:00:18)
약20여 년 전에 소설가 오영수씨가「특질고(特質考」라는 글을 발표하여 크게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소설이라 하여 발표되었었지만 사실은 각 고장의 인심이나 기질 같은 것을 쉴 식으로 진술한 글이었다. 이 글에서 오 씨는, 가령 함경도 사람들은 지저분하다는 등 평안도 사람은 성깔이 급해서 걸핏하면 우지끈 뚝딱 박치기부터 해 놓고 본다는 등 이런 식으로 각 고장 사람들의 인심과 기질을 열거하는 가운데, 특히 전라도 사람은 겉으로는 간이라도 빼 줄 듯하지만 속은 딴판이라는 식의 진수을 했던 것이다. 당시 이 글을 읽고 난 직후의 필자의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해서 불쾌감 그것이었다. 오 씨로 말하면 이름 있는 소설가요 또 나와는 유별난 사이여서 문단의 선배로서 깍듯이 대해 오던 터였다. 그런 분이 소설도 아니요 수필이랄 수도 없는 D런 문장을 화자회에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도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뒤미처 각 고장 인사들로부터 맹렬한 비판이 일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라도 쪽이 비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전라도에 대한 그의 언급은 선의로 보아 넘기기에는 너무도 지나친 바가 있었던 것이다. 이 일로 하여금 그는 말 할 것도 없고, 그 그을 게재한 당시의 ‘문학 사상’지 역시 호된 곤욕을 치렀었다. 이보다 다시 10년쯤 전에 조 모라는 사람이 전라도를 험담하는 글을 발표하여 호된 추궁을 당한 일도 있었다. 민족의 단합과 화해를 위한 글을 쓰기에도 힘에 겨운터에 민족의 분열과 지역간의 반목이나 조장하는 이런 따위의 글을 쓰는 일은 도시 문사의 할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각 고장의 인심이나 기지를 풍자적으로 나타낸 말을 예로부터 적지않게 전해 오고 있다. 가령 함경도 사람의 기질은 사나운 호랑이가 숲에서 뛰쳐나오는 것 같다(맹호출림,猛虎出林)느니, 강원도 사람들은 바위 아래의 오랜 부처상같다(암하로불,岩下老佛)느니, 전라도 사람은 바람 앞의 가는 버들가지같다(풍전세류,風前細柳)느니 하는 말들은 그 한 예이다. 어느 호사가가 지어냈을 것임에 틀림없는 이런 말들은 사실은 귀거리, 코거리 식의 한낱 재담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시대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의「택리지(擇里志)」에는 각 고장의 풍속, 인심 등이 진술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특정한 고장을 좋지 않게 기술한 부분도 있다. 또 가령 강원도××바위니, 경상도 ×딩이니, 전라도 ×땅쇠니 하는 식의 말도있다. 다른 고장 사람들을 이런 유의 말로 놀리다가 시비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유의 말이나 글에 일면의 재치가 있고 취택할 점이 다소 있다 할지라도 이런 일로 시비를 벌이게 된다면 그건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름지기 삼가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것은 농으로 치부해서 무방할 일이요,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사람이란 원래 자기 고장에 대한 애향심을 갖게 마련이고, 이이 한 반동으로 낯선 고장사람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위화감을 갖게 되는 법이다. 이런 위화감이 앞서 예시한 바와 같은 가벼운 농으로 표출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정도의 위화감은 더 큰 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자연스럽게 포섭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 흔히 운위되는 이른바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이런 유와는 사뭇 다른, 심각한 문제성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근래의 이른바 지역감성이라는 것은 애향심이라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 거의 병적이라 할 정도의 지역 이기주의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지역감정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이는 이미 감정의 문제라기보다도 각 지역간의 심각한 격차에서 연유되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다 아는 바와 같이 3공이후부터의 일이다. 3공 이래의 역대 정권들은 계속 특정한 지역 인사에로 편중되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은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라 해서 조금도 달라진 것이없다. 최근의 신문 보도는 김영삼 대통령이 법무부 계통의 모든 장자리를 전부 자기 고등학교 후배들로 배치해 놓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권력의 중추 기관이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겠다는 뜻이겠으나, 다른 고장 사람은 도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라면 이 이상의 지역감정은 다시 또 없다고 보아야 하겠다. 얼마 전에는 여당의모 중심 인물이 부산에 내려가 이번에는 부산에서도 대통령이 하나 나와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고장 신문과의 대담에서 한 말이니 가벼운 농으로 한 말이라 할 수 도 있겠으나. 아무리 그러더라도 이는 결국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언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3공이후 30여 년 동안을 계속 정권을 장악해온 고장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더구나 농담으로 치부하기에는 아무래도 거부감을 지울 수 없다.
며칠전의 신문 보도에 의하면 Y대의 윤 모 교수가 여당 산하의 한 연구소가 발행하는 출판물에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요지인즉 지역감정이 빚어지게 된 것은 호남 출신의 정치인들이 지역 주민들을 부추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제까지 지역감정을 부추겨서 영화를 누려 오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생각한다면 이 주장이 전혀 타당성이 없음을 이내 알 수 있다.
우리는 어서어서 이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시대를 졸업해야 한다. 우리는 안으로는 통일의 대업을 성취해야 할 중대한 시점에 서 있고, 밖으로는 세계로부터 무한한 도전에 대응해 나가야 할 시점에 서있다. 이제는 지역감정을 부추겨서 자기 앞의 이익만을 탐하려는 망국적 책동은 단호히 분쇄해야 한다. 각 지역간의 경제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고, 각 고장의 인재를 고루 기용하는 그러한 건강한 정권이 들어설 때 해묵은 지역감정은 해소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세대 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