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0 | [문화비평]
우리 음악의 깊은 속을 이해하라
<호남벌의 북소리> 비평에 대하여
글/류장영
(2004-02-10 11:02:01)
올해로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도내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치러졌다. 그 중에서 전라북도국악원에서 제작한 창무극 <호남벌의 북소리>는 유난히 평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젖혀 두었던 전통 연희 양식에 대한 고찰이 새삼 활기를 띠고, 창극에 대한 진정한 모색을 통해서 우리 공연 문화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서 시작되는 이러한 평은 그러나 그 세부적인 지적에 이르러서는 단연 밀도가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판의 건강성이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창무극 전체를 평가하기에는 결코 전문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의 잡다한 식견과 여기 저기서 얻어들은 편린들의 조합 같은 평은 어떤 부분에서 공연 제작자들을 참으로 아연케 한다. 차라리 부분별로 조망한 전문가의 공개된 평이 모여 있다면 아픈 매라도 달게 받으련만 아쉽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힘들게 작품을 만들어 온 사람들에게 이러한 무분별한 평은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던 지역을 지키며 전도의 활로를 개척해 나가려는 책무와 의욕마저 일시에 떨어트리게 한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것인가? 주지하다시피 전통 예술의 현대화는 부분적으로는 아직도 난망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일거의 난도질로 이 지역 예술 주체들의 전통성 포기라는 결과에 대해 누가 대신 짐을 지려는 것인가? 혹자는 말한다. 이 공연의 외형이 동일하더라도 성가 높은 중앙의 모씨 등이 만들었다면 그들의 평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을 거라고.
우리 지역에서 이번 공연에 대한 기록된 평이나 혹은 여기 저기에서 흘러나온 말들을 종합해 보면 대체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문제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대본상의 약점, 둘째 연출상의 문제, 셋째 음악 완급의 조절 실패.
이 중에서 첫째, 둘째 문제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견해는 있으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급할 만한 전문적인 식견이 모자란 탓에 할 말이 없다. 다만 세 번째 지적에 대해서는 직접 당사자로서 할 말을 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이 작품의 음악 작업에 대한 의뢰는 작년에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흘러 나왔다. 올 들어서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몇 차례의 고사 끝에 결국 이 지역에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창극의 현대화와 미래화의 해법을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결국 이 일을 시작한 것이다.
5월 어느 날 연출자로부터 대본을 전달받았다.
많은 작곡자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이러한 작업에서는 가장 우선하여 대본을 많이 읽어본다. 극적 흐름에 동떨어진 음악은 전체적인 이미지를 이끌어 내는 데 결코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곡을 쓰는 중간에도 성이 차지 않으면 대본을 들고 처음부터 악상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때까지 반복하여 읽는다. 특히 성악곡의 경우에는 이렇게 함으로써 가사가 지니고 있는 <이면(裏面)>과 <경우>를 곡으로 형상화하는 데 무리가 없는 것이다.
현재 익산시 문화원장으로 계시는 이인호 선생의 사가인 예도원(藝道院)에 몸을 부린 후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여느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이 작품은 몹시 힘이 들었다. 먼저 성악곡 작업부터 시작했다. 단원들이 하루라도 빨리 목에 올려서 소리가 익어야 하기 때문에 첫 곡인 <여기는 종성리>의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 소리는 단순한 음계(음계란 선율을 구성하는 음들을 차례로 모아 논 것으로 이러한 음계를 선행 조건으로 제시할 때 우리 전통곡의 경우 새로운 곡의 확대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전통적인 소재를 충분히 살려서 작업하리라는 의도에 충실하자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음악적 표현 능력에 따라 음악의 질적 수준도 크게 의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공연자들이 충분히 표현할 만큼 훈련이 되지 않았다면 그 밖의 다른 요소들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만다(물론 이것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은 개별적인 부분에 따라 평가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 소리에 있어서 표현 능력은 중요한 변수인 것이다.
다시 구체적인 작업 이야기. 그러나 아무라 읽고 또 읽어도 첫 곡부터 막힌다. 에이, 이 곡은 다음에 하지, 우선 되는 것부터! 적어도 곡을 쓰는 순발력과 극적 이미지의 순류(順流)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평을 받아 온 나로서는 진땀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연출자와 상의를 했다. 가능하면 극작가의 노랫말을 최대한 살리되 음악적 흐름이나 장단의 한배(를 이르는 전통 음악 용어)에 따라 음악적 길이를 단축하거나 보충해야 했다. 따라서 가사의 첨삭을 가능케 해 달라는 협의를 요청한 것이다.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힘들 때가 있었는가? 담배는 꼬리를 물고 연기를 피워 올렸다. 날이 밝아도 기쁜 줄을 모르고 다듬고 다듬는 작업이 무려 한 달을 채워 가고서야 비로소 전체적인 틀을 다질 수 있었다.
어쨌든 끝냈음을 스스로 위안 삼으며 1차 작업을 종료했다. 이제는 창극부 단원들과 단단한 각오를 서로 다짐하며 목청을 돋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제 2라운드의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국악계에서, 특히 목으로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전통 소리의 악보화에 일종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감정은 전공자들로 하금 악보 보는 능력을 소홀하는 데까지 이어져 지금 대부분의 창자들은-대학의 관련학과 출신이라 할지라도-악보보다는 선목으로 시범을 보이면 그대로 따라서 배우는 방법이 거의 유일한 전창(傳唱)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작곡자에게는 크나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끝날 때쯤에는 “우리 목에 공력(功力)이 들어가야 할 터인데 당신 공력이 훨씬 좋아졌다”라는 칭찬(?)도 들어가며 의욕과 즐거움이 넘치는 가운데 이 작업이 끝났다. 어쨌든 일차적인 전창작업을 마치고 이제는 이것을 농 익히는 일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것은 한 마디로 서로의 피를 말리는 일이다.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의 음역과 시김새(장식음 등 전통음악의 독특한 표현 방법) 구사 능력을 살펴 가며 곡을 두 번 세 번 손질하고 연출의도에 따라 덜고 빼는 작업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어떤 평에 이 작품에서 보여졌던 곡의 실험성을 긍정하는 글이 있었다. 서울 공연에서 관람하였던 국악계 인사들은 이번 공연에 대해 대체적으로 호평하였는데, 음악적인 면에서만 말하자면 어떤 이는 창극의 미래화의 전형을 제시하였다는 칭찬으로 노고를 위로하기로 하였다. 아마도 그것은 전통 음악 어법에 충실하면서도 여기에 관현악 반주와 서양 합창단의 결합, 이질적인 대위 선율이 분위기에 따라 분해되고 결합하면서 모노톤에서 폴리톤으로 넘나드는 (민영환의 죽음에서 불려지는 곡 시일야방성대곡은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기법 등으로 풍성해진 음악을 평하는 말로 생각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관현악 편곡과 합창단의 훈련 그리고 서곡, 무용곡 등을 해결해야 했다. 서곡은 극의 마지막 임병찬과 마을 부녀자들의 이별 장면에서 사용하였던 곡의 이미지와 연결시켜 구성하였다. 그런데, 서곡에 이어지는 무용곡은 원래 극 중에서 의병들의 훈련 음악으로 사용하기로 작곡된 곡이 없어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에 새로이 곡을 만들지
않고 그 곡의 동기를 이용하여 무용 분위기에 따라 발전시켜 나간 것이다. 따라서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안무자는 이내 이 곡의 분위기를 파악하였고 무용수들의 몸에 곡의 느낌을 안정되게 실어 주었다. 편곡을 맡기로 한 최상화 지휘자는 이미 독자적인 작ㆍ편곡의 능력을 인정 받고 있는 터라 호흡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작곡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작업 도중에 발생하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분이었다. 그는 오히려 나의 작업 영역에 있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상대방이 바로 수긍할 만한 지적을 해준다는 것은 작업을 경쾌하게 만들어 주는 활력으로 작용한다. 그가 편곡 작업이 한창일 무렵 다소 여유가 생긴 나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그가 처한 근황을 핑계 삼아 불러낼 수 없음을 한탄했고 이 일은 다음 날 그와 얼굴을 마주칠 때쯤이면 반농반진의 핀잔이 되어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전반적인 곡의 흐름, 완급의 조절에 대해 말한다면 이것은 우리의 음악적 기호를 알지 못하고선 누구도 감히 언급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미 이 작품에 임하면서 마당 놀이식의 작곡을 굳이 우리 원에서 시도하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지적을 한 바 있다. 그렇다고 5,60년대 식의 흘러간 옛 노래를 다시 끄집어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60년대 초를 기점으로 대중을 잃어버린 창극의 기법은 그것으로 이미 그 당위성을 상실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창극은 전통의 5바탕 소리에서 창작 작품으로 전이하면서 기껏 5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창극이 금세기 초에 발원하여 반세기를 지탱하다 소멸의 위기에 처한 것과는 달리 판소리의 음악은 판소리라는 양식으로 최소한 300년의 세월을 유지해 왔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최소한 음악적으로는 세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므로 이것의 유산은 우리가 앞으로의 작업에 당연히 중요한 음악적 재료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극이 소멸되게 된 이유 중에서 음악적인 면을 말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 만한 음악적 시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왕에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음악 어법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노랑목(슬픈 느낌을 주는 계면조 선율을 ‘비비 꼬아’ 이것이 더욱 심화된 곡풍을 이른다) 위조로만 흘러갔던 작창이 과거 창극 음악기법의 주된 흐름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느 자리에서 내가 이번에 전통음악을 재료로 하여 활용한 길(法)이 과장을 보태한 10분의 1이나 될까 모르겠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나는 우리의 음악적 자원의 풍성함과 장점을 여과 없이 인정한다. 이것에 대한 연구나 이의 활용과 적극적인 반영은 오늘에 사는 우리가 반드시 살려내고 발전시켜야 할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따라서 장단이나 음계정도의 활용으로 가볍게 호소하기보다는 힘들더라도 그 깊은 속을 파고 들어가 옥석을 가려내어 어려운 것이라도 이것을 우리의 작업에 전용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어쨌든 이러한 작업에 있어서 음악의 완급이란 극이 처한 상황에 따라 운명지어진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