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1 | [서평]
약속 없는 시대의 글 읽기
전정구 약속없는 시대의 글쓰기
문화저널(2004-02-10 11:27:59)
전정구교수의 제 2 평론집 『약속없는 시대의 글쓰기』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자서(自序)에서 󰡒 이책에 수록된 글들은 21세기 문학 예술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 바황하는 나의 정신적 편력을 반영한 읽기/쓰기의 길찾기 과정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이발언에서 이 평론집이지금까지의 다른 평론집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 평론은 대체로 작가나 작품에 대하여 평하고 논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나의 정신적 편력에서 작가나 작품보다 앞서 평론가를 만나게된다. 이는 우리의 기존의 관념을 뒤엎어 놓는다. 평론 활동의 객관성보다도 주관성에 마주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평론가의 입장을 자서의 맨 앞 첫줄에서부터 읽을 수 있다.
문학텍스트의 읽기 작업은 단순히 텍스트 의미의 소비 행위는아니다 그것은 <나/독자>가 텍스트와 관계맺는 방식에 의해 텍스트의 의미들을 새롭게 생성해 내는 창조적 작업에 속한다. 나의 두 번째 평론집『약속없는 시대의 글쓰기』는 원저자가 텍스트에 부여한 의미를 발굴하는 방식의 구비평적 독서관을 거부하고 텍스트의 의미들을 창조적으로 산출하는 탈구조 주의/해체 이론이 지지하는 새로운 독서관에 입각한 읽기 작업의 산물이다. 나/독자의 시인/소설가의 텍스트들의 <관계맺음의 방식>을 통해 <끝없는 의미의 갱신>이 시도된 또다른 텍스트들의 변형이 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비평 대상이 된 텍스트들이 나의 글쓰기 흐름에 따라 원저자의 텍스트 맥락과 상관없이 그 조합과해체가 자유롭게 변형된 또 다른 텍스트들로 재창조 되었다.
이글에서 우리는 이 평론집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저자는 작품의 의미를 작가의 머릿속이나 텍스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슴속에서 차기 우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반응, 이것이 나의 정신적 편력이다.
원저자가 텍스트에 부여한 의미를 발굴하는 방식의 구비평적 독서관(그것을 기존이 아닌 구로 단저한 패기를 보라)을 거부하고 텍스트의 의미들을 창조적으로 산출하는 비평 태도는 60년대부터 유럽과미국의 비평계에 널리 번지고 있는 현상이지만 우리의 보수적 풍토에서 이를 과감히 수용하기가 어려운 처지였는데 이제 우리는 전정구 교수의 정신적 편력에서 이를 정면으로 대하게 된것이다.
이자서는 기존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세기말이 다가온 지금 우리는 자신있게 무엇이가를 약속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라 하여 이 책의 이름에등장하는 약속없는 시대에 대하여 한 마디를 언급하고 있다 이 또한저자의 방황의 원인을밝히면서 이 책의 진로를보여주는 언급이다. 이 약속없는 시대는 또한 저자가 표방한 탈구조주의/해체이론의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어구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나름대로 텍스트의 의미들을 창조적으로 산출한다면 거기에 잘못읽기가 끼어들 소지가 있다 그것은 명백한 오류인가 아니면 그것도 창조적 의미 산출인가 그 한게는 어디인가 텍스트는 우리에게 어떠한 약속도 할수없다. 텍스트는 불확실성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21세기 문학예술환경의 불확실성이 방황하는 나의 정신적 편력의 원잉ᄂ이면서 또한 역으로 방황 그자체가 불확실성의 원인이기도 한다.
이책에 수록된 첫 번째 평론 약속없는 시대의 시쓰기는 운명이여 이상 당신은 싸늘한 지하에 있으면서도 성좌를 간직하고 있다 로 시작된다 평곤가는 글쓰기의 첫머리에서부터 영탄조로 운명의 신을 부르고 있다. 평론의 ABC의 A에 해당하는 객관성 냉철한 이성은 어디로 갔는가 독서여 평론가 당신은 싸늘한 지하에서 일어나 성좌의 불덩이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이 문체에서 바실라르가 초의불꽃 이나 불의 정신분석학에서 자기/세계혹은 주관/객관이 하나되어 몽상하면서 발하는 영탄/탄식의연속인것이다. 당신의 싸늘한 지하에 있으면서도 성좌를 간직하고는 박인환의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 이 또한 바실라르가 세계를 몽상하면서 수많은 시구를 인용한 것을 연상시킨다.
이상의 예술적 이상(理想)이 결국 그 시대의 분위기 때문에 이상(異狀)에 그쳤고 이상문학상(異常文學賞)인가 시여 트림을 하자 등 수많은 패러디가 이 평론집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어차피 평론은점잖은 이성저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산출 행위인것이다. 생산은 결코 이성간의교접이란 과학적 공식만으로 되지 않는 다 여기에는 80, 90년대의 괄목할 만한 시이과 소설가 그들의 시와소설에 대한 재치있고 날카로운 비평과 독설이 있고 그리하여 한국문학의 앞날을 조명하고 그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잇다 여기에는 불화길성의 미래일망정 21세기에 문학 예술이 어떻게 변모할 것인지 그에 대한 우리의 자세의 어떠해야 하는지의 상황 판단이 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다소 낯설은 탈구조주의니 해체이론이니 독자 반응 비평이니 하는 새로운 비평의 본보기가 있다 이 평론집은 비! 평가가 일반 독자와 어떻게 같은가 어떻게 다른가 또 작가와 얼마나 같은가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저자와 같은 목소리(패러디에 의한 문체, 어조)를 내보이려했으나 역시 안된다. 해체비평의 한계인가 아니면 나이 탓인가.
하나의 조국 실현위한 민족적 활동공간 넓혀가기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송두리율 저)
글/이중호 전북대교수 정치학
동서 냉전이 세계 도처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지만, 동서 갈등이 해결된다고 남북 갈등이 해결된다고 남북 갈등이 당연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지구화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한반에는 여전히 냉전적인 사고와 행동 양식이 만연하고 있다. 주사파 발언과 조문 파동, 북핵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전쟁 도발설, 국가보안법이 그대로 있는가하면 국방부는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였다. 더구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은󰡐94년 8.15 49돌 김 대통령의 기념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한반도에서의 흡수 통일을 공공연히 기대하고 예측하게 하였다.
과연 독일의 통일의 교훈은 무엇인가? 해방50주년을 맞아 그 어느해보다 활발해진 통일 논의 들(각종강연회 학술세미나 논문이나 저술등)소개서 이 문제는 여러 가지 형태로 제기되고 있지만 송도율 교수의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만큼 본격적이고 진술한 그러하면서도 균형잡힌 객관적인 논의는 드물다고 보여진다.
그의 사히ㅗ사상논집,『역사는 끝났는가』에서 보여준 역사와 민족에 대한 열정과 희망이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저자는 남북이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를 뿐 아니라, 동족 상잔의 비극과 현대사의 왜곡을 통해 한반도는 독일의 경우보다 더 높은 󰡐마음의 장벽󰡑을 쌓게 되었기 때문에 숫자로 환산되는 통일비용 계산이나 통일 한국의 체제 구상이전에 우리가 서 있는 좌표를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 통일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한반도의 통일이 독일과 비슷한 흡수통일 방식으로 전개되리라는 즉 서독=남한, 동독=북한이라는 유추를 내재적 비판적 방법론에 의해 검토하고 있다. 여기서 내재적-비판적 방법론이란, 북한사회의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그들 스스로가 설정한 목표에 비추어서 비판적으로 분석해야지 우리가 지닌 선험적 척도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통일의 내외적 조건과 문제점들을 비교 분석함으로서 한반도에서의 흡수 통일! 은 바람직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전망하면서, 요사이 경쟁적으로 추진되는 재벌들의 남북 경험 노력들같은 자본의 논리가 아닌 역사와 민족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문화적 논리의 개발이 절실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독일 통일 후 5년은 흡수 통일의 비용과 함께 서로의 기대에 못미침으로써 그 절차적이고 실질적인 당위성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서독의 기대나 예측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정당성의 위기를 바탕으로 한 󰡐탈출혁명󰡑에 의해 동독이 붕괴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독일 통일의 교훈은 동독 붕괴 요인의 분석된 이와 관련한 북한의 미래에 대한 전망, 통일 비용에 대한 남한의 부담 의사와 능력, 신세계 질서와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에 대한 민족적 대응 방법 등에 대한 반성적 검토를 통해서만 얻어 질수 있다고 본다.
먼저 동독의 정통성은 자신들의 역사인 탈나치화(반파쇼)에 근거하고 있지만 북한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대항(반체)과 이에 상응한 민족 내부의 연대에 기초하고 있다. 또한 경제 침체의 극복 가능성과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의 계승은 북한 붕괴에 의한 흡수 통일 가능성을 기각하게 한다. 다음으로 서독처럼 남한도 북한을 흡수 통합할수 있으리란 전망은 사회통합적인 경제 정책과 복지 정책을바탕으로 한 라인강변의 기적과 대외 의존적인 불균형 성장 정책과 노동계급의 희생에 기초한 한강의 경제 기적의 차이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상이한 체제를 대상으로 한 비교분석의 방법론적 어려움 북한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의 절대적 부족과 왜곡 그리고 남한에 대한 자료의 차별성과 이에 대한 상이한 평가와 해석이라는 여러 가지 제한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일본 모델과 중국 모델을 준거로 하여 남북한의 사회 경제구조와 그 변화를 설득력있게 비교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60년대 이후의 산업화에 따른 남한 사회의 경제적 역동성과 사회적 불안정성을 지적하는한편,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이에 대처하는 북한 사회의 사상, 기술, 문화 개혁과 민족적 정체성에 기반한 사회 안정에 대한 귀납적 추론을 통해 북한 경제 침체론과 북한 사회 붕괴론의 허상과 실상을 밝혀내고 있다.
끝으로 남북한의 실질적인 군사력 비교와 국방비의 지출 현황에 대한 분석은 미국방성의 전쟁 시나리오나 전쟁 도발설으 허구성을 폭로하고 북핵문제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 중심의 정치 군사 체제의 서역과남한 정부의 반북적 태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통일 여건의 조성을 위해서는 한반도의 긴장 완화가 선결조건이며, 이를 통해 nr제정치의 역학관계속에서 민족적 활동 공간을 확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분단 국가 수립 이래 남북간의 정통성 경쟁으로서의 기만적이고 지리한 남북 협상과 시류에 편승한 백가쟁명식의 장황한 통일논의에 적잖이 식상해 온 우리에게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는 통일 문제와 북한 바로알기에 관련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의문과 질문들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응답해주고 있다.
한반도의 구조와 위상에 대한 고찰을 통한 새로운 통일 논리의 모색이 저자의 멀처럼 자칫 논리를 위한 또 하나의 논리를 쫓는 위험에 빠질수 있다
그러나 민족 분단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누렸던 동질적인 삶의 역사에 비하면 한 단면에 불과하다. 따라서 남북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는 자기비판과 역지사지가 요구된다는 저자의 논지는 명쾌하다. 그의 마음의 장벽 허물기는 보론2(통일문제 접근의 방법론적 반성0에서 검토되듯이 통합체제의 구상이나 세계화 구호같은 하나의 추상들에 비해 우리의 가슴속에서 오히려 더 구체화 된다.
또한 현실을 미래로 추동시켜야 한다는 논의의 실천성에 대한 요구에 부응한 보론2(민족과 체제사이에서)은 체제 통합에 선행하는 통일 민족국가의 연방적 구조를 제안하고 있다. 남과 북이 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같지도 않은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다시금 새롭게 인식하고 지금까지의 소모적인 남북 관계를 지양하여 현대와 주체, 세계화의 동시성과 민족이란 비동시성의 결합으로서의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남북한 다 살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21세기 통일 시대를 앞두고 민족공동체로서의 하나의 조국의 실현을 위해 민족적 활동 공간을 넓혀나가는 조그마한 실천의하나로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