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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1 | [파랑새를 찾아서]
뿌연 달빛에 산등성이가 지나간다 지리산의 연봉들
글/조연 (2004-02-10 11:37:53)
예전 같으면 하룻밤을 산기슭에서 묵어야만 지리산 어느 곳이든 다다를 수 있었다. 이제는 모든 곳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야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낭만적이라고 모두 생각하는 별빛의 철학은 이미 잃어버렸다. 문명이 자연 생활과 야성을 몰아내듯이 우리 산사람들도 자극히 고전적인 산생활 하나를 버리게 된 셈이다. 모두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각에 새벽길을 달린다. 전주에서 벽소령 입구에 있는 의신까지는 남원과 섬진강변을 지나 화개, 그곳에서 다시 쌍계사를 지난다. 다시 신흥골도 지나야 하니 어림잡아 삼백 리가 넘는 셈이다. 보통처럼 일어나 적당히 늑장을 부려서는 하루에 다녀올 산행이 아니다. 차 안에서는 다들 말이 없다. 경쾌한 안부 인사만 나누고 곧 침묵에 빠진다. 산행 자체는 고독한 자신과의 투쟁이고 또한 약속이지만 갈 때까지의 준비는 비밀스럽기도 하고 은밀한 모의를 하는 것처럼 치밀하다. 무심히 자라서 번식하는 하찮은 식물조차도 은밀한 삶이 있을 터인데 우리의 은밀한 만족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조용한 도로 가에 코스모스가 달빛에 아름답다. 산허리에 꽉 차 있는 들국화는 벌써 가슴 설레게 한다. 이것만해도 산행의 즐거움이 반은 채워진 셈이다. 뿌연 달빛에 산등성이 지나간다. 오늘의 산행을 각자 깊이 가늠해 보고 지나온 산행활의 추억들도 잠깐 되씹어 본다. 남원에 들어서는 순간 지리산의 연봉들이 눈에 꽉 들어찬다. 언제나 다시 온다고 했던 산들이다. 숲 생활을 찾아서 지리산을 찾은 자연주의자, 식물을 연구하려 찾아왔던 식물 학자들, 약초 캐러 온 사람들, 체력과 인내를 시험하러 지리산의 대장정을 시작한 운동 선수들 시험에 합격하여 기념 등반을 했던 젊은이들,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좌절을 이기려고 찾아 온 많은 사람들, 여름에 구름처럼 모여든 피서 온 사람들, 더 높은 곳으로의 욕망을 얻으러 모험을 찾아나선 우리 산 사람들, 항상 찾아온 이 산이 결코 일상의 삶은 아니다. 이 지리산은 되풀이 하는 일상을 깨는 곳이다. 산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곳을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유쾌한 초상은 아니다. 슬픔으로 와 닿기도 하나 놀라움으로 오랫동안의 많은 일들이 전설처럼 있는 곳이다. 지상 낙원인 무릉도원을 꿈꾸었던 창학동 도인들이 처음 찾아왔다가 골이 너무 깊어 되돌아 갔던 신흥에 어느덧 다 왔다. 확트인 벽소령 넘어가는 아스팔트 길은 아직 미완이지만 시원하다는 느낌보다는 문명과 탐욕의 침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이권을 챙기려는 관리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벽소령 길을 내어서는 안된다. 지리산 허리 한 가운데인 이 길만은 더 이상 안된다고 투쟁하지만, 언제까지 유보될지 걱정하면서 대성골로 들어선다. 대성골 중간끔 오면 아름다운 세 개골에 이른다. 폭포와 암장과 바위길로만 정상까지 이어져 있는 드라마틱한 산행길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지나온 세 개골과 거림골이 보인다. 반야봉이 거구처럼 눌러 앉아 있고 더 먼 곳에 만복대 억새밭이 보인다. 바람에 춤을 추는 억새밭에서 산멀미를 느낄 수 있는 그곳이다. 고된 산행 끝에 맛보는 상쾌함으로 모든 보상을 받은 셈이다. 열기로 숨이 꽉 막혔던 능선길이 불타는 아름다움으로 숨막히게 한다. 어느 곳은 피를 토해 놓은 것 같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내가 태어난 것이 고맙기만 하다.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 되었으며 어느 것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이 지리산 자락들, 골짜기들, 능선들, 봉우리들을 사랑할 수 있고 이 산을 오를 수 있는 건강한 자신이 한없이 감사할 뿐이다. 젊은 시절 수많은 밤을 이곳에서 보냈으며, 같이 별빛을 맞으며 인생을 이야기했던 자랑스런 산 친구들을 만났던 것에 감사를 한다. 더욱이 산행을 할 수 있는 평화가 고마울 뿐이다. 하산길은 짦아진 해로 발걸음이 바빠진다. 느긋하고 아늑한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다. 하시길의 야간 산행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잠시 바위턱에 앉아서 휴식한다. 자연의 이치에 몸과 마음을 맞춰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 아니겠는가 하늘과 땅의 상호 작용과 조화 - 사람들과의 조화가 있을때만이 산이 살아난다는 생각이 자리잡는다. 사람이 땅의 개쳑과 진보된 문명을 앞세우며 전진만 하던 서구 사람들의 인식에도 대 전환이 오고 있다. 우리는 이땅에 잠깐 머무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그들에게도 깊이 느껴지는 것 같다. 골짜기 양편에 장사가 번창해 있는 것을 보며 지난 여름 아주 가물었던 여름날 외국인 은사님의 고별사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분은 시간만 있으면 조국 산하를 설립하셨다. 1954년 청년시절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바로 한글을 익히고 천자문 외우며 그후 성균관 대학에서 동양 철학학위를 얻고 40년을 한남대 강단에 섰으며 3공화국 시절에는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추방당한 최초의 미국인이었다. Dr.Sumoville(한국이름 서의필 목사)은 아름답게 할 일을 마치고 떠나게 되었다. ‘한국 벗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우리 조상들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아름다운 산과 함께 맑은 강물로 이어진 그림같은 골짜기를 가진 아름다운 땅에서 살았습니다. 산과 들은 나무와 관목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시골은 수십만 마리의 새와 많은 야생 동물이 살았습니다. 우리가 이룩한 진보와 발전을 자랑하지만 환경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 이것들이 우리가 자손들에게 물려줄 새로운 것입니까?.....” 그분은 떠나는 순간에도 한국이라 하지 않았고 우리나라라고 했다. 모든 것을 거절하고 소박한 친구들과 제자들이 구내 식당에서 먹을 갈비탕값 삼천원씩 가지고 모였다. 떠나기 직전 그분은 대전 광역시에 있는 대단히 비싼 5천평이나 되는 선교사 땅을 조건 없이 기증했다. 이 아름다운 산이 석양에 비친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움을 느낀다. 우리 산 친구들은 그냥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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