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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2 | [세대횡단 문화읽기]
새로찾는 전북미술사 25 새로운 표현 수용과 전통 산수로의 회귀 임신(林愼)
글/이철량 전북대 교수 미술교육과 (2004-02-10 12:11:35)
임신의 작가적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가 1907년에 고창에서 출생하였다는 것과 서양화로 전향한 최초의 인물이었다는 기록이 단편적으로 전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광주 무등산에 칩거하며 남도 산수화를 이끌어 갔던 의제 허백련에게서 남종 산수화를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그의 활동에 대한 자료가 빈약한 가운데에도 작품은 대단히 예사롭지 않은 명품을 남기고 있다. 임신이 이렇듯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내력이 전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이 시기의 몇몇뛰어난 작가들의 행적이 전하고 있지 않은 시대적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히 아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임신은 그의 출생 시기로 보아 근대적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그가 어떤 교육과정을 거쳤는지 알수 없지만 적어도 일제가 설립한 근대적 학교 교육을 마쳤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그의 미술 수업도 초기에는 학교식 공부를 통한 여러 가지 표현 방법을 경험했을것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당시의 한국적 현실이 전적으로 학교 교육에만 의지하지 않고 사숙을 통해 다른 그림공부를 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없다. 이를테면 어릴 적부터 누구에겐가 서화공부를 시작했거나 성장한 이후에 전통회화나 문인화 등을 공부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여러 가지 추정은 실제 그의 작품 속에서 읽어 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에게서 쉽게 발견될 수 있는 화제의 다양성은 없어보인다. 이를테면 산수,화조,사군자 등과 같이 당시 전통화가들이 흔히 다루었던 화제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물론 이 부분은 더욱 조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그의 몇 작품은 주로 산수이거나 또한 동물인데 이러한 표현방법에서 보면 문인적 기질 보다는 장이적 기질이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그의 화풍은 근대 일분화풍의 요소를 많이 담고 있는 그림이 있는 반면 전통적인 우리 남화품의 산수화도 있다. 이러한 작품 경향을 바탕으로 이해하면 임신이 과연 기록에 전하는 것처럼 일본에 유학했었는지, 했으면 어떤 과정을 통해 공부하였는지 궁금 한 부분이다. 그리고 전통 남화풍의 산수에서도 그가 의제 허백련에게서 사사했다는 설을 도한 뒷받침하는 예이기도하다 . 임신에 대한 작가적 활동에 대해서는 단지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할 뿐이다. 첫째 당시 한국의 정치상황 속에서 혹시 월북이나 남북작가일 가능성, 둘째 해방 이후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친일 배제운동에 의해 붓을 버렸을 가능성,셋째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조용히 은둔했을 경우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떻든 풍부한 가능성을 보였던 작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사라져 갔던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임신의 작품들 중에서 6폭으로 된 병풍산수는 임신의 작품 성향을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이 산수의 전체적인 경향, 이를테면 산세의 흐름이나 화면의 포지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등이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이 그림은 금강산의 어느 부분을 그렸을 것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이 작품이 완전한 관념성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 점에 있다. 좌우의 산허리를 대담하게 잘라내고 전면에 큰 폭포를 배치했다. 그리고 화면 중앙에서 원경으로 빠져 나가는 독특하고도 새로운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만일 전통적인 산수화의 구성방식이라면 좌우 어느 한편에 중심 축을 잡고 대각선으로 시선을 옮겨 가는 형식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작품은 화면 한중앙에 초점을 맞추고 일직선 상에서 원근을 잡아내고 있다. 화면이 대단히 압축되고 시선이 명료한 면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화면 전체의 규모에 비해 풍경이 위축되어 보이고 단조로운 감도 없지는 않다.그러나 화면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는 중경의 폭포와 언덕의 상단이 수평으로 안정되게 자리하고 있어 화면전체가 대단히 편안한 모습이며 원경의 산 정상을 구름으로 가리우고 하늘 부분이 지금까지의 그림들처럼 그냥 남겨두지 않고 구름을 그려넣어 화면 전체가 꽉차있고 풍부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 작품의 특징은 어디까지나 필선의 운용에서 찾아진다. 임신이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에 노력했던 작가였음이 그의 표현 방식에서 찾아진다. 이 6폭 산수에서 보는 필선은 당시 화단의 일반적인 표현에서 훨씬 벗어나 있다.이러한 자유로운 필묵의 구사는 마치 조선조 말기 이색 화가였던 조희룡의 <매화서옥도>를 연상시킨다 임신이 한국에서 전통 회화를 공부하고 일본에 가서 서양화를 공부했다는 항간의 설이 확인되고 있지는 않으나 이 작품을 통해 표현에서의 자유롭고 대담한 모습은 그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느끼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생각의 뒷받침은 또다른 작품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숲속의 말을 그린 것으로 여백이 없이 전면을 채워넣은 표현이라든지 먹의 구사에서 마치 수채화를 다룬듯한 담묵의 겹침, 그리고 골격을 잡아나가는 선의 강조보다도 먹빛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던 모습에서 당시 전통 화풍에서 벗어나있다.오히려 일본 화풍의 영향이라고 보아야 할 이러한 작품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일본에 유학하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일제 시대에 왜색 화품에 상당히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러나 임신의 또다른 작품 난수화를 보면 대단히 전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8목으로 된 산수병풍으로 계절을 살려 그려냈는데 전통 남화 산수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남화 산수의 표현에서 보면 임신이 의제 허백련에게서 공부했다는 설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8폭산수는 의제의 필묵을 상당부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의제 허백련은 근대화가 중에서 남도 산수화풍을 이루어낸 대표적 남종화가였다. 그는 무등산에 칩거하여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는데 임신이 어떤 경로로 그의 지도를 받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작품이 대단히 수준있는 필묵을 구사해 내고 있는 점에서 혹 말년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적당한 물기와 농하게 익어 낸 담묵의 먹빛이 전통 남화의 정신적 기품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준의 표현에게도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이8폭 산수화는 6폭의 작품 성향과는 대단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필자의 추정으로는 6폭의 산수도는 임신이 한창 혈기를 드러내던 젊은 시절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운필이 대단히 빠르고 분방하며 일정한 준의 형식에 구해받고 있지 않다. 먹빛 또한 농묵의 진한 먹위주로 처리되었는데 그럼으로 해서 분방한 필선의 효과가 더욱 강조 되어있다. 임신은 이렇듯 당시의 시대적 환경을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소화해내고 있다. 말하자면 일제의 격동기를 지내며 왜색 화풍과 또한 새로운 서양미술의 사조에서 감각적으로 수용된 새로운 표현, 그런가 하면 다시 전통 산수에로의 회귀가 있다 한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표현 속에서 다양한 모습의 시대상을 들여다 보게 된다.다만 이렇게 출중한 표현을 하였던 임신이 많은 자료를 남기고 있지 않은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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