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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2 | [문화와사람]
작품과 나 변화에 대한 갈등과 선택 연극<꽃신>
글/류경호 연극 연출가 창작극회 (2004-02-10 12:25:27)
꽃신은 아름다운 이름이다. 내부에 담긴 가시 돋친 의미는 차지하고라도 연분홍 앞치마를 상기하는 싱그러움이 있다. 처음 접한 꽃신은 작가 곽병창씨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졌던 지난 3월의 일이었다. 작가로서 연출로서 또 극단의 대표로서 3역을 한꺼번에 수행하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차 공연이 끝나자마자 몇몇 선배들이 의견을 교차한 뒤 나한테 연출이 떨어졌다. 곰곰이 생각 해보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한 번 무대에 올려진 작품이고 안다는 사람은 전부 아는 판에 연출이 바뀌다고 얼마나 큰 변화가 있겠느냐는 것이 주변 인물들의 걱정 아닌 빈축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것이 수학적으로 결론 지어진 말이었다. 사실 화폭에 그럼을 그리면 화가의 붓이 한 번 더 가고 덜 가고는 액자 속에 들어가기 전에 끝이 나고 전시하면 그만이지만 연극은 공연이 끝난 뒤에 무수한 말이 쏟아져 나오는 생리를 안고 있다. 어디에 붓칠이 더하고 덜하고를 평하는 것이다. 그점으로 해서 공연 때마다 달라져 다 나은 작품으로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소극장연극을 살펴보면 더하다. 초연작품의 경우 두 시간이 넘게 걸리던 공연시간이 막판에는 30여분 이상 단축되는 차이가 나기도 한다. 날마다 새로운 모습을 찾고 군더더기는 삭제하는 작업이 지속되는 것이다. 결국 액자 속에 들어가는 것은 마지막 공연이 끝이 났을 때의 이야기가 된다 <꽃신>의 경우가 그렇다. 지난 3월부터 줄곧 이어져 왔고 배우들 또한 지칠대로 지쳤으리라는 것을 직감할수 있었다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공연이다보니 연출이 바뀌고 대본이 바뀌고 배우가, 무대가 끝없이 변화하는 통에 자신감의 실추를 걱정할 수 밖엔 없다. 종잡지 못하는 선의 혼란이 있었고 순회하는 공연 장소의 변화에 적응하려니 더욱 심기가 불편한 것은 배우들이다. <꽃신>은 전라예술제 기간 동안 정읍과 고창에서 일정에 따라 공연되었다. 무대가 전북예술회관과는 퍽이나 다르다. 창을 위한 국악을 위한 무대에서 연극공연을 해야만 했다. 애초에 바라던 무대의 그림은 그릴 수 없었던 것이 당연했따. 큰 공연을 앞두고 혼란만 가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뿐만아니라 지난 전북연극제에서 각계의 격려와 혹평이 엇갈리는 가운데 대본의 수정도 가했고 달라진 무대에서의 경험은 배우 뿐만 아니라 연출로서 당혹감 밖에는 느낄 수 없었다. 더욱이 전국연극제에 참가한다는 전라북도 대표극단인 ‘창작극회’의 <꽃신>이 고무신도 제대로 그릴지 하는 의문만 남긴 채 한번 더 변화의 시련을 겪어야만 했으니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탄생되다는 것은 산고 이상이다. 그렇다고 최종 공연인 인천에서 ‘창작극회’의<꽃신>이 제대로 된 꽃신을 그렸느냐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제13회 전국연극제는 인천 종합문예회관에서 열렸는데 14일간의 일정속에서 <꽃신>은 맨 마지막 날 공연이었다. 무대 관계자들 뿐만아니라 전국의 연극인들도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또다시 달라진 무대에서 배우들의 자신감에도 우려되는 것이 많았다. 처음 시도해는 보는 경사진 무대의 활용과 깊이와 전북예술회관의 3배에 가까운 공간의 활용 등 하루아침에 적응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직감할수 밖에는 없었다. 연습하면서 구상했던 공연장에서 하나둘씩 삭제해야 했고 또 새로운 상황에서 도입할 것은 변용하여<꽃신>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었다. 끝없는 갈등과 선택의 기로에서 꽃신의 변신은 연출로서 내가 수용해야 만했다. 결국 보여지는 것은 한번 뿐이고 두고 두고 보면서 평가될 수 없는 일회성 무대를 아쉬워 하기란 때이른 후회가 되기도 한다. 연극의 일회성이 짧은 예술혼을 부태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는 하지만 그 또한 불꽃에 몸을 던지는 열정과 흡사하다 어느덧 전국 연극계는 전북의 연극이 최고를 점하고 있다는 결론이다.자부하는 것보다 인정하는 것이다. 숱한 갈등과 선택의 연속에서 재탄생되는 전북연극을 잣대로 재어서서 어디가 위고 얼마나 나은지를 누구라고 가늠하지는 못한다.그러나 사람이 공감하는 척도는 스스로가 깊이로서 잴 수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 깊이를 재는 가슴의 정열이 전북 연극인들에게는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경험에서건 예술적 잠재의식에서건 간에 풍토적 결과가 아닌가 한다. 지역의 여건이 열악하고 취약해서라는 변명은 지금까지 통했고 이젠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흐르는 전통은 그 굽이가 쉬이 꺾이지 않는다. 다행하게도 창작극회는 굽히치는 전통의 깊이가 깊어 흐름이 묵직하다. 그것이 저력이라는 것과 상통한다는 생각이다. 이어져 온 면면한 흐름의 맥은 지금에 와서 끊어질 수가 없다. 연출로서 현재의 역할이 어느덧 버겁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나하나 얹혀지는 무게가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꽃신>은 언젠가 또다시 부활의 노래를 부르며 탄생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터이다. 그것이 내용에 담겨있는 통일에의 염원에서건 아름다운 축억의 <꽃신>이건 간에 다시 창출되어지는 꽃다운 이름이 되어 우리의 가슴에 담기길 기대하고 있다. 못다한 정성으로 우리들 곁에 살며시 다가오는 그날에는 완성의 노래를 부르다 부르다 사그러질 것이다. 아직도 미완의 그림으로 남아있는 꽃신은 지금도 창작극회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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