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2 | [파랑새를 찾아서]
저널여정
겨울의 세석,온통 하얗게 꿈꾸는 설국이 있다
한신계곡에서 삼정까지
글/이승일 산모임<두류패>회원
(2004-02-10 12:26:31)
지리산 세석의 철쭉이라 하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산행을 즐겨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70년대에서 80년내 초까지 해마다 6월이 오면 철쭉제가 열렸고,아름다운 세석의 철쭉은 사람들을 세석으로,세석으로 끌어들였다.초여름 대축제로 북새통을 이루었던 세석을 눈이 몹시 내렸던 그해 겨울에 힘겹게 산행한 적이 있었다. 텅 빈 세석에 혼자 야영하였던 기억. 그때 세석은 온통 하얗게 꿈꾸는 설국(雪國)이었다.
세석이 설야(雪野), 12월의 산행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겨울산행은 예상 산행 시간보다 훨씬길어질 경우가 많다. 항상 시간의 여유와 간식,파카,여벌,장갑,랜턴 그리고 아이젠등이 필요하며 가급적 야간 산행보다는 주간에 산행을 마칠수 있도록 시간을 잘 조정하여야 한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으로
세석을 직등(直登)하기 위한 길은 단연 한신계곡 코스이다. 한신계곡은 지리산의 깊은 속살처럼 품속 싶숙이 숨겨져 있는 지리산의 유명 계곡이다. 이 코스를 당일로 결정할 경우 인월에서 백무동행 첫차를 이용하여야 한다. 전주에서 출발을 한다면 새벽기차(5:10)를 이용하여 남원에서 인월행 첫차로 이을 수있다.
산행은 백무동 버스 종점에서 출발한다.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10분 오르면 백무교를 지나 3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에서 왼쪽 길이 장터목, 천왕봉 코스인데 멀지만 ‘세석’도 갈 수 있다.(눈이 많으면 이길을 이용하여야 한다) 한신계곡 코스는 이정표에서 직진하여야 한다. 30분 정도면 첫나들이폭포(이정표)와 철교를 만나고 철교를 건너 오르다 보면 3개의 다리(跢唎)를 지나 포장길 끝부분에서 화장실을 만나다.(15분 소요)여기서 직진하면 지계곡코스(일명 한신지계곡)로 장터목에 직등하는 코스인데 겨울철 코스로는 적당하지 않다.
화장실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계곡을 건너면 가내소폭포에 이른다. 15m 정도의 얼음 물줄기가 검푸른 연못으로 곤두박질친다. 한신계곡은 여기서부터 시작이고 본격적인 산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5분 후 계곡을 건너고 나면 나무 사이로 5층폭포가 보인다. 5층폭포 이정표에서 15분 오르면 한신폭포 이정표에 도착된다. 폭포는 80m쯤에 위치하는데 시간상 폭포 감상은 생략하는 게 좋겠다. 이정표 옆 늙은 떡갈나무가 아주 인상적이다.
한신폭포부터 잠깐 길이 단조로워진다. 계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산길을 물소리를 감상하면서 40분 정도 오르면 그 계곡을 만나다. 계곡을 건너 조금 오르면 다시 다른 계곡을 마나게 되는데 여기가 영신봉(세석 옆 봉우리)쪽에서 흐르는 물고 촛대봉(세석 위 봉우리)쪽 계곡이 만나는 합수골이다. 계곡 왼쪽으로 60m정도 진행하다가 그 계곡을 건넌다.
길은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고 사나워 진다. 불쑥 불쑥 드러나 나무 뿌리, 모난 바윗길로 영신봉을 빤히 바라다보면서 가쁜 숨으로 1시간 남짓 오르면 시원한 평원이 펼쳐진다. 세석고원이다, 세석은 한창 공사중이다. 식수는 공사중인 새 산장 30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세석에서
세석은 수많은 지리산 안내책자나 지도에서 ‘세석평전’(細石坪田)이라 표기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어느 지리산의 역사에 관한 안내서는 잘못된 명칭이라 지적해 놓았다. ‘세석高原’ 또는 ‘세석坪原’이라 불러야 옭다라고 했는데 나도 동감한다. 높고 넓은 대평원의 뜻을 좁고 낮은 밭(田)으로 격하한 인상이 짙다. 추측컨대 일제(日帝)때 크고 넓은 세석을 작고 좁은 의미로 고쳐 놓았지 싶다. 촛대봉 끝에 서 보면 대평원의 장쾌한을 실감할 수 있다.
새산장 옆에 커다란 ‘자연보호’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새 산장 신축에 따른 엄청난 훼손과 너무 잘 어울려(?) 묘한 웃음이 나온다. 고산(高山)의 산장이란 산악인의 대피소를 일컫는다. 그런데 새 산장은 대형 빌라의 뉴 호스텔, 즉 관광의 개념이다. 평원 위에 원목 빌딩. 세석의 철쭉보다는 세석 관광호스텔이 더 명물이 될 것 같다.
세석상장에서 왼쪽으로 올라 영신봉을 가로지르다 보면 영신봉 정상 부근에 웬 벙커가 보인다. 군사 훈련용인지 작전용인지 영신봉과 촛대봉 일대를 온통 휘저어 놓았다. 그러한 참호는 1800고지의 고사목 지대인 재석봉도 마찬가지다.
영신봉에서 3km정도 오르내리면 칠선봉이다.(50분 소요)일곱개의 바위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는 봉우리이다. 여기서 10분더 진행하면 전망이 훤히 트이는 1500고지의 넓은 바위가 있어 잠깐 쉬기에 그만이다.
왼쪽에서부터 중봉,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 그리고 영신봉에서 이어지는 남부능선이 수많은 산자락을 뽑아 내며 펼쳐진다. 남으로 멀리 광야 백운산, 화개와 쌍계사의 분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 무명 암봉에서 20이면 선비샘인데 세석에서 선비샘까지 위험스러운 곳에는 철교와 손잡이 시설들이 있어 수비게 이를 수 있다.
외로운 봉우리 덕평봉, 그리고 군사 작전도로 벽소령
선비샘을 품고 있는 봉우리가 덕평봉인데 상행인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 거칠고 외로운 봉우리이다. 왜 덕평(德坪)이라 했냐는 덕평봉 끝에 서 봐야 그 의미를 안다. 넓은 잡목 지대의 평원이 남으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실제 선비샘에서 남으로 산행하여 보면 완만한 경사길을 계속되어 평원의 특징을 느낄 수있다. 가을 산행길로 한 번 쯤 권해 보고 싶은데 하산 지점(의신마을)에서 돌아 올 수 있는 차시간이 애매하다.
선비샘 이정표에 ‘벽소령 4km’라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3km정도, 덕평봉을 가로질러 내리면 벽소령 갈림길에 도착한다.(30분 소요) 직진하면 형제봉,연하천,노고단 방향이고 오른쪽 도로가 하산길이다.
벽소령 산도(山道)는 지리산이 무장공비들의 은신처나 거점으로 이용될 것을 대비하여 70년대 초반에 뚫린 군사작전 도로중 하나라 한다. 또 하나는 천은사에서 노고단 성삼재를 거쳐 반선(뱀사골)까지 잇는 횡단로, 이미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관광도로로 포장되어 각광받고 있다. 이제 또 다시 이벽소령 길까지 포장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한다. 벽소령은 지리산의 허리다. 관광사업이아닌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여기만큼은 그나마 이대로라도 보존되어야 한다. 허리가 잘리면 이 산도 끝장이다. 상상하기도 싫다.
하산은 이정표 앞갈림길에서 오른쪽 도로이다. 이정표에 ‘삼정 10km'라 표시되어 있는데 이 꼬불꼬불 작전도로로 하산 할 경우이고 지름길을 택할 경우 1시간은 절약할 수 있다
이정표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20정도 내려오면 오른쪽에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 건너 산죽과 철쭉나무 숲 사이로 산행로가 보인다. 삼정리 지름길이다. 내리막길로 30정도면 계곡을 만나다. 계곡을 건너면 또다른 계곡(마른계곡)이다. 건너편 산죽숲에 희미하게 길이 보인다. 10분 정도 후면 갑자기 큰 신작로가 열리고 그림 같은 별장이 나온다. 최근에 산림보호의 최고기관인 영림서에서 개발하는 ‘자연휴양림’이다. 조금전 헬기장에서 군사작도도 로를 끝내는가 했더니 산밑에선 관광작전도로의 시작이다. 이래저래 지리산은 수난의 연속이다.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말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한치 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운 어리석은 사람들’ 이라고 길은 큰 신작로를 따라 직진한다. 30분이면 ‘음정마을’에 도착한다. 10분정도 포장길을 따라 더내려오면 ‘양정마을’이다
버스는 ‘삼정상회’앞에서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