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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 | [서평]
서평 전라도의 사랑과 기독교의 사랑 허소라 시집 겨울밤 전라도(유림사 , 1995)
글/윤여탁 문학평론가 군산대 교수 (2004-02-10 14:00:57)
시은은 어떤 다른 호칭보다 시인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또한 시인은 인간적인 시를 쓰는 시인으로 이 세상에 남고자 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참으로 인간적이고자 한 시인 한 사람을 만나고자 한다. 이 글읽기의 여행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은, 우리 전북 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의 한 분인 허소라씨이다. 이미 시인은 ■목종■, ■풍장■, ■아침 시작■, ■겨울나무■를 통하여 우리 전북 시단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간행된 다섯 번째 시집 ■겨울밤 전라도■역시 이런 시인의 자리를 더욱 분명하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제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이 느끼고 있는 현실의 모습과 그 해법을 찾아보자. 일반적으로 시련에는 분노가 따른다. 그러나 이 시인의 시들에는 분노보다는 시련에 대한 진한 애정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신앙의 힘이 나타나 있다. 이렇기에 시인은 감정의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절제된 언어 형식을 빌어 이를 형상화하고 있다. 우선 시집의 제목을 살펴보자. 문학 작품에서 ‘겨울’이나 ‘밤’은 어둠과 시련의 상징이다. ‘전라도’라는 지명 역시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특히 현대사의 중요한 시기인 1980년대를 계기로 하여, ‘전라도’의 어둠은 어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인에게는 희망, 민족에게는 해방,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구원이라는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이 시집의 제목인 ■겨울밤 전라도■는 이런 측면에서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의미는 진정으로 겨울밤의 전라도를 사랑하는 마음의 역설적 표현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시집은 겨울밤 전라도가 극복하고자 하는 바와 그 염원을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임을 떠나보낸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말이다. 다음으로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크게 대별된다. 우리 역사에서 ‘전라도’로 상징되는 시련과 갈등을 노래하고 있으며, 이런 아픔을 극복하면서 도달한 종료적 구원과 용서의 세계가 그려지고 있다. 즉 전라도에 대한 진한 사랑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서로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고리를 이 시집의 시들은 확인시켜 준다. 시인은 이 시집의 자서에서 “인간생명의 본향추구라는 영원한 불변축과 시대마다 온 몸으로 부딪치고 질문을 던져야 하는 변화축”이라는 두 축을 펴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의시집 1◦2부에 시린 시들이 후자를, 3◦4부가 전자의 계열을 형상화하고 있다. 즉 1부에서는 전라도라는 절마으이 땅에서 희망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2부에스는 자연 대상을 통하여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질문시’또는 ‘계절의 추이와 일상적 감상에서 얻어진 인식의 편린’이라는 겸손한 표현속에서 날카로운 동학군의 죽창을 찾고 있으며, 여기저기 우리 주변의 대상 속에서 ‘봄이 오는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 너의 눈길이 닿은 저편에서 금간 기억 사이로 단 한번 운 일 없는 새가 비로소 자유르 나르고 우리는 뿌리들의 합창을 캐낸다 저절로 오는 봄이 아니라는 듯이 그루터기마다 끌안고 있는 칼날같은 햇살의 둘레를 보아라 ■뿌리들의 합창■의 부분 이 시에서처럼 그의 시에 표현된 자연 대상 어느 하나도 범상한 자연이 아니다. 의인화되고 상징화된 자연이다. 아름다운 기억보다는 금 간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새, 그루터기의 뿌리들은 칼날같은 햇살을 받고 봄과 자유를 누릴수 있다. 이런 표현 속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웠던 겨울의 어둠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이겨내고 있는 봄을 만나고 있다. 이에 비하여 3부와 4부는 ‘신앙시’라는 이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어떤 계기를 통해 얻게 된 신앙에 대한 확신과 감사의 마음을 진실하게 읊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시를 통하여 목자를 찾아 나선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의외침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시들이 1,2부의 시와 비교하여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 시들이 시인의 진솔한 내면의고백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이런 고백을 통하여, 시인이 현실에서 느낀 여러 갈등을 종교적인 차원에서 극복하고자 한다. 즉 이 시들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갈등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미소를 주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소가 확실치 않은 오늘이 광장에서 얼어붙은 우리로 하여금 뜨거운 감격을 주시고 내일의 입맞춤을 주시옵소서 ■기도(1)■의 부분 그의 신앙시는, 자기만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한 바리새인의 기도와 진실로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세리(稅吏)의 기도(누가복음 18장)가 주는 교훈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게 하는 시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시대의 아픔에 대해서도 진정한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참회를 만날 수 있을 때, 위의 시도 새롭게 읽히게 될 것이다. 그의 시처럼 ‘전라도’에 대한 사랑과 기독교가 추구하고 있는 사랑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인 사랑으로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으로 용서받기 전에 진정한 자기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흘러도 흘러도 형벌인 / 우리들의 목숨 / 우리들의 겨울강” (■겨울강■의 한부분)의 얼음깨지는 소리를, 우리는 같이 들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지금 지닐로 참회하는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런 참회가 있을 때 하나님이 세리를 ‘의롭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 국민들도 또다른 세리의 용서를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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