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 | [세대횡단 문화읽기]
연극평
1995 늦가을, 아돌 후가드
<아일랜드> 와 <플레이랜드>
글 / 김정수 문화저널 편집위원
(2004-02-10 14:05:34)
여름부터 거론되기 시작했던 이름들이 가을을 통째로 삼키더니 겨울이 된 지금에도 연일 신문, 방송을 누비고 있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거룩한 명제 앞에 그 누구 하나 반대가 있을 까 마는 역사 바로 세우는 일꾼들 사이에 ‘역사 뒤집어 놓기’에 가세하거나 추종했던 얼굴들의비상한 표정은 도대체 누구네 역사를 누가 바로 세우겠다는 것인지 끝내 불안하기만 하다.
이래저래 심란한 늦가을에 아돌 후가드의 연극 두편은 그 명성에 걸맞는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되어 버린 <아일랜드>와 최근작 <플레이랜드>를 우연히 같은 시기에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 재수 없는 일상에 비하면 행운에 속했다.
1995년 전북의 연극계는 다소 침체의 분위기를 띠었다. 창작극회가 전국연극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고는 하나 디딤예술단의 사실상 해체와 황토의 장기 휴면은 공연 작품의 수라는 외적인 모양부터 위축되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과작이었던 올 한해에, 비록 한 편은 외부 극단의 공연이었지만 괜찮은 작가의 작품을 동시에 만났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지 않을 수 없다.
10월 25일 전북학생회관에서 공연되었던 <플레이랜드>는 이미 TV나 영화를 통해서 대중적인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는 문성근이 출연했고, 11월 24일붙너 창작소극장에서 장기 공연에 들어간 <아일랜드>는 이 지역 극단 황토가 거의 일년에 가까운 홀동 중단의 부진을 털고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는 공연이어서 각기 연극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더구나 <아일랜드>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도 십여 년 만에 다시 보는 연극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아돌 후가드는 남아공화국의대표적 작가로 남아 프리카 연극의 선구자를 넘어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작가다. 그는 인종차별에 따른 갈등이 극심했던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발판으로 적절한 우화와 비유가 섞인 압축된 언어들을 소박한 무대를 통해 드러내 보여준다. 극히 절제된 그의 작품의 등장 인물들은 자신들의 처한 현실으 FeNLDJSJADJ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의지를 탁월하게 표출시키는 임무를 부여받기도 한다. 그 점이 바로 후가드의 작품을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 있었던 혹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있다.
이 두 작품에서 드러나듯 그는 즐겨 다루는 주제는 인간을 끊임없이 억누르고 불안하게 하는 구조와 그 구조의 폭력으로부터 상처받고 소외된 인간을 끝까지 지켜내는 ‘끈’에 관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사회가 집요하게 던지고 있는 모순과 거기에 맞선 투쟁이 작푸■ㅜㅁ 안에서 눈에 보이는 갈등으로 자리잡고 있지는 않다. 더 이상 탈출구를 기대할수 없는 극한에 몰린 인간,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내던져 버릴 수 없는 인간, 때로는 꿈꾸듯 환상적이고 때로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여주는 인간, 바로 그 사람들이 길게 끌고 다니는 어두운 그림자를 통해서 관객은 현실의모순을 발견하기도 하고 터질 것 같은 분노도, 질식할 것 같은 공포도 어렴풋이 이해해 가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후가드의 작품들은 겉과 속이달라보인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 보여주고자하는 갈등들은 쉽게 눈에 띠지 않도록 등장 인물의 갈등 뒤켯에 꽁꽁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이상적이어서 너저분해보이기까지 하는 언어들 사이에서 극적 상황은 언제나 위험한 폭발물첢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래서 관객으로 하여금 언어들 사이에서 극적 상황은 언제나 위험한 폭발물처럼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래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 폭발 가능성을 숨죽여 지켜보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다. <플레이랜드>에서 문성근이 연기한 ‘기드’도 그런 인물이고 <아일랜드>에서 안세형이 연기한 ‘존’역시 그러한 인물의 전형이다.
<아일랜드>에서 플레이랜드>까지는 거의 20년의 시차가 있다. <아일랜드>는 후가드의 연극활동 40년에서 중기쯤에 해당하는 1973년 작품이고, <플레이랜드>는 육순이 되어 발표한 1992년 작품이다. 이 기간 동안 극적 표현의 방법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주제로의 접근은 상당히 달라져 있다. 이것은 아마 남아공의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변화한 모습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20년 전 감옥인 죄수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분쟁과 살육으로부터 상처입은 영혼을 치유해야 할 번민과 자학의 백인과 흑인이 있다. 그들은 가해자이면서 정작 그 가해 행위의 피해자였고,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고통이 얼마나 치유하기 힘든 모습으로 남아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진지하고 성실함이 돋보였던 두 무대를 지켜보며 우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70년대 초, 후가드가 <아일랜드>를 본국에서 공연하지 못하고 케이프타운에서 극단원들 사이에서 비공개 공연을 가진 후 영국, 미국을 전전할 때 우리는 어떤 연극을 하고있었던가 하는 자문이었다. 우리의 삶을 움켜쥐고 있는 부조리는 애써 외면하고 서구의 부조리극들을 공허하고 전위적으로 외쳐대지나 않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애써 교양이라 치부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숱한 실의와 고통을 지나온 시간에 대해 얼마만큼의 애정으로 보상하려 하고 있는지, 아니 예술이 갖는 기본적인 양식으로서 그런 점들을 인식하고나 있는지.
어찌보면 후가드는 행복한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해결해야 할 명쾌한 대립적 갈등이 있었고, 스스로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신괴와 희망을 지니고있었기 대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이해 못할 갈등이 수도 없이 있다. 무엇 때문에 소로 뻔뻔해져야 하고 무엇 때문에 단식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모두다 역사가 자기편이라는 것을 맹신하고 있고 모두가 오만해져 있다.
정작 그것들의 주인들은 나이트쇼를 구경하듯 그저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다.
요즘 못되게 풀린 연극이 성(性)을 상품화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것도 아마 두가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인간을 믿을 수 없으니 동물의 보편적 본성을 믿어보자는 뜻에서이든가, 아니면 연극보다 더 웃기는 세태에 관객을 뺏기는 것이 두려뭐 진지하게 성(性)을 다뤄 보자는 심산에서이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