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 | [세대횡단 문화읽기]
연극평
미완의 스토리, 그 고민과 사유의 생산성
브레이트의 연극 <사천의 착한 여인>을 중심으로
글 / 김길수 영극평론가 순천대 교수
(2004-02-10 14:06:26)
선하고 착하게 살면 살수록 더욱 파멸하고 망하는 세상, 악을 이겨내기 위해 엄격하고 냉혹한 규범만이 필요한 세상, 브레히트의 연극 <사천의 착한 여인>(안상철 연출, 전주시립극단 제작)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오늘의 문제이다. 이 작품은 중국 사성성 사람들의 추악하고 구제받을 수 없는 상황을 가상의 세 신(神)이 등장하는 우화성 소재로 교직시켜 문제의 심각성을 95년 오늘의 문제로 클로즈업시켜 놓고 있다.
선하게 살면 더욱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어 보려는 신(神)들의 의도, 이 의도가 착한 여인 쉔테(염정숙 분)의 절규를 통해 무너져 버리며 관객은 그 딜레마의 절정에서 함께 고민하게 된다. 죄악이 판놀음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주인공의 고백, 그녀의 절규어린 호소에 임시 재판관 역할을 자청했던 세 신들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줄행랑을 쳐버린다.
‘관객 여러분 저희는 이런 처참한 결과를 보여 드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 문제를 해결할 차례입니다’. 해설자로 변신한 여성 배우(정경선)가 문제 해결의 열쇠를 이처럼 관객에게 건넨다. 관객은 미해결된 극중 사건을 풀지 못해 고민하며 무겁게 극장문 밖으로 발길을 옮긴다.
중국 사천성에 자신의 몸을 팔아 삶을 겨우 연명하는 쉔테라는 한 여인이 있다. 그녀는 창녀라고 질시와 지탄을 받으며 살지만 그러나 착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자신의 창녀 영업을 포기한 채 세 나그네에게 기꺼이 묵을 곳을 제공한 착한 여인 쉔테, 나그네로 변장한 세 신들은 선하면 w라 살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어 보기 위해 그녀에게 막대한 상금을 내린다. 그 상금으로 담배가계를 차려보지만 쉔테의 착한 심성을 익히 알고 있던 사악한 이웃 친지들 때문에 그녀는 곧 바로 파멸의 위험에 처한다. 파멸을 면하기 위해 그녀는 가상의 인물인 사촌오빠 쉬타로 변신하여 파멸을 면한다. 쉬타, 그는 자본주의 법규와 원리 원칙, 생존 경쟁의 흐름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도적들, 거짓말하는 자들, 게으른 이웃들을 과감히 가계에서 내쫓으며 그가 새롭게 개척 운영하기 시작한 담배공장은 일시에 번창하게 된다.
‘착한 센테만 있으면 편할텐데.......’이런 푸념을 늘어놓으며 마을사람들은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쉬타를 원망하다 급기야 그를 쉔테의 살해범으로 고발한다. 범정에 선 쉬타, 모든 걸 고백한다. 쉬타, 가면을 벗는데 그가 바로 쉔타일 줄이야.... 착하게 살수록 파멸을 처할 수밖에 없다는 쉔테의 항변에 재판관들, 마을 사람들, 질겁을 하며 도망을 쳐버린다.
전설에서나 볼 수 있는 세 신들 (이부열, 백민기, 김경미 분)의 설정, 쉔테에서 쉬타로의 자유로운 인물 변신, 동화 내지 우화에 가까운 스토리, 이는 분명 반현실적 소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의 교훈적 메시지는 이런 반현실적 이미지를 뒤집어엎는다. ‘부패, 죄악, 도둑질이 판치는 비정상적 상황, 이로 인해 선한 사람은 더욱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브레히트의 비판식 논리가 상당한 공감을 얻어내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의 일그러진 삶의 모순, 이를 고발, 비판할 무대 이미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형 동전들, 이들이 집단 이미지가 무대 배면에 추상적인 형태로 꾸며져 있다. 반원형 무대 선상 위에 설정된 거친 대나무 격자 소품들, 사람들의 처소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구조물들, 그것들은 재래 무대에서 흔히 써먹는 구체적 의미소로 볼 수는 없다. 그것들은 장면 전환과정에서 뒤따라야 할 다양한 상황과 공간으로의 무대 이미지 변신 가능성을 약속해 준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수 있는 것으로 배우들의 등장 상황이다. 문제투성이의 각 인물들이 관객이 뻔히 볼 수 있는 출입문 앞에서 일정시간 기다린다. “아니, 왜 저럴까 ? 아, 이건 연극이지 !”이런 깨달음을 이 장치는 유도한다.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을 벗어나 해설자 역할을 하고 있음 역시 몰입거부, 환상파괴의 장치로서 브레히트 강령에 충실하려는 이 공연의 덕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대 공간의 한계를 뛰어 넘게 했던 대형 영상의 등장, 어린아이의 음성과 슬라이드 투사에 의한 교훈성 메시지, 소리 효과, 음향 효과의 기능, 의도적으로 드러낸 피아노 선율, 감정이입을 차단케 한 이런 장치들은 변증법 연극의 힘을 존중하려는 연출진의 성실한 의도를 반영한다.
주인공 쉔테를 줄곧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가는 데에 단단한 몫을 해냈던 반동적 상황, 그것의 다양한 반복 변조 기법은 ‘저래서는 안 될텐데!“라는 사유의 생산성을 얻어냈기에 이 공연의 주요 덕목으로 손꼽을 수 있다.
재판과정에서 동네사람들이 쉬타를 야유하며 떠벌이는 이미지, 나그네들을 매몰차게 대했던 괴상한 짐승소리, 황금빛 옷으로 치장한 채 돈이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는 미취여사 (전춘근 분)의 교만함 (우린 그녀의 유형적 연기가 노련하게 실현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터무니없이 많은 계약금을 요구한 채 계약서 종이 한 장을 높이 들어올리는 냉혹한 이미지(전춘근의 노련한 육체 언어는 시선 처리, 신체 문법, 음색 처리 면에서 반동적 상황을 안정감 있게 잘 소화해 내고 있다)는 강렬한 실수의 축적 효능을 발휘한다.
선한 주인공 쉔테를 구슬리면서 그녀를 등쳐먹기위해 벌이는 각종 못된 해프닝, 특히 가증스러움, 몰염치함과 능글능글함이 잘 뒤섞여 나타난 악의 이미지 등은 특히 관객의 강렬한 반감을 자아낼 정도로 무대를 장악한 부인(장경림 분)의 교활한 행각을 통해 강력한 반동적 에너지를 발휘한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친 여인을 짓밟고 내팽개쳐 버리는 건달 비행사(조민철 분)의 파렴치한 이미지는 냉소, 조롱의 모티브를 담아낸 배우 조민철 특유의 음색, 짓밟아벼려도 좋다는 식의 독사 같은 눈빛으로 구체화된다. 이런 헝클어진 이미지들이다양하게 반복되고 변조됨에 따라 관객은 강한 거부감과 이질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가장 어렵고 난해한 배우술의 문제로 쉔테가 착취자 쉬타로 변신하는 연기를 들 수 있다. 몰입연기 그 차단의 한계, 유형화 연기를 겨냥한 배우술이 주요 문제로 부각된다. 쉔테에서 쉬타로 변신하는 과정, 여기서 요구되는 윻셩성 연기의 기본 문법을 염정숙은 고군분투, 소화해 내려 한다. 그렇다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환상 파괴가 전제되려면 먼저 환상 유도를 위한 최소한의 일루젼이 전제되어야한다. 기본적으로 상대의 대사, 상대의 육체 언어, 태도를 보고 느끼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기본 연기 패턴은 있어야 한다. 상대 인물과의 만나ㅁ, 그 느낌에 대한 피일링이 관객에게 전이되기도 전에 암기대사를 재빨리 내뱉어버리는 우를 범한다. 시간 단축의 부담감에 쫓겨 이런 실수가 순간 나왔으리라....
극중 환상을 제거하기 위한 다양한 시청각 매체의 등장, 이를 의도적으로 드러냄은 제작진의 성실한 탐색 자세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이런 영상 소재들이 변증법 연극의 총제적 효능을 발휘하였는지는 알 수 확실치 않다.
힘들게 만들어진 영상화면, 그럼에도 각 성분들이 정제, 여과되지 못한 채 각 장면 앞뒤의 틈새 메꾸기 역할로 머물러 있다는 인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그러진 인물들, 상황들이 영상 에니메이션 작읍을 통해 회화적으로 변주시켜 볼 수 있다. 물장수 왕(홍석찬 분)의 꿈 속 이미지, 이때의 영상은 희화를 향한 변용의가능성을 일깨운다. 시공간의 경계를 무궁무진하게 뛰어 넘을 수 있는 영상 그림의 강점을 고래해 보자. 문제투성이의 상황을 비유내지 상징의 차원에서 희화, 비판 시켜 보는 데에 중점을 둔다면 영상 에니메이션의 심도 있는 작업 역시 탐색되었으면 어떨른지(지나친 주문이겠지만)...!
세 시간이란 긴 공연. 그러나 반동적 상황이 주동적 상황을 간헐적으로 강하게 짓눌려 댄다. 쉔타의 선함이 우화성 스토리이지만 파산 원인의 하나로 판명될때 반감이나 이질감은 점차 강해진다. 이로 인해 관념극의 지루함은 해소 된다.
브레히트 극의 춤과 노래는 뮤지컬의 볼거리와 들을 거리와는 근본적으로 그 위상이나 효능을 달리한다. 브레히트 연극에서 극중 인물들은 노래를 통해 자신들의 행각을 변명하기도 하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미리 예고하기도 한다. 배우들의 집단 춤 역시 전체 극의 메시지를 요약해주거나 문제의식을 도발시키는 이미지로 변용되어야 한다. 이 공연의 춤과 노래가 분명 이런 효능을 확실하게 발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노래극의 언어, 이 언어가 슬라이드 문자 언어로 투사 , 변용 될대 그리고 그 문자 언어를 눈으로 대할 때 관객은 진지한 사유와 정밀한 성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적 장치 없이 노래가 이루어졌을 때 관객은 그 내용상의 메시지를 심도 있게 따라잡지 못한다.
밟음과 경쾌함의 이미지가 주요 흐름을 장식했던 배우들의 마지막 집단 춤과 노래 역시 미완의 문제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사유하게 하는 데에 한몫 했는지는 더 연구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만약 밝음이 희화적 효과를 의도적으로 겨냥한 것이라면 이는 동어반복의 기법으로 변주되어야 할 것이다. 춤과 노래에 대한 우리네 진부한 감상 패턴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반적으로 춤과 노래는 한국 관객들에게 흥겹게 즐기기 위한 나눔의 매체로 각인되어 있다. 이런 감상 패턴이 우리네 연극공연 문화에서도 통념화되어 있는 한 춤과 노래를 통한 브레히트식의 이질감 유발 효과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선율이 통찰력과 사유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는 릴케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았다. 노래를 통한 브레히트의 연극 작업은 이 때문에 실험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유럽공원에서 실패와 성공,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브레히트의 극의 또 다른 과제이기도 하다. 브레히트의 대작들이 우리 한국 연극계에서 그 미학적 뿌리를 내리는 데에 역부족이었음은 <서푼짜리 오페라>(정진수 연출, 극단 민중 제작)등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리라.
완벽치는 않았지만 이질감 유도를 위한 송광식의 음악 효과, 그의 헌신적인 도움과 실험은 눈여겨 볼만하다. 필자는 <황금의 사도>에서 변증법 연극의 효능을 바탕으로 치유불능의 이 현실 세계를 기괴하게 희화시키는 데 성공을 거둔 안상철의 걸출한 연출 작업을 잊지 않고 있다. 그의 연출 노하우가 이번 공연만으로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고 말해선 안 된다. ‘상황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브레히트의 말을 상기하자. 또 다른 오늘의 상황에 맞추어 다양한 무대 실험과 이미지 탐색 작업이 뒤따라야 함은 브레히트 연극의 다음 공연에선 필수적이다.
왜? 다양한 무대 이미지 창조를 위해 실험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브레히트의 탐색 자세, 이는 베를린 앙상블의 저력으로 나타난 바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