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 | [세대횡단 문화읽기]
음반감상
코리아 환타지로 새해를
<빈 신년음악회>
글 / 문윤걸 전북대 강사 사회학과
(2004-02-10 14:09:11)
“내일은 당신이 남응ㄴ 날 중의 첫날이다”종말의식에 가득찬 이말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들리야르가 상품문화의 천국인 미국을 바라보면서 한 말이다. 이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인간의 삶이 영원히 발전할 것이라는 보통의믿음에 대한 도전이요, 경고인 셈이다. 이런 경고는 우습게도 전혀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서양의 점술가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구체적인 시간까지 짚어내며 인류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이때문인가. 아니면 이렇기 때문인가. 그 인과관계야 뒤로 하더라도 오늘의 우리 삶 속에서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 알지 못할 목표를 향해 그저 빠른 걸음으로 달리고만 있다.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없는 세상에서 그저 스피디한 삶이야 말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희망이라는 듯......
하지만 또 한 해가 밝아왔다. 누가 뭐라해도 새해의 첫날, 저 검푸른 동해의 바다를 힘차게 박차오르는 불타는 태양을 상상해보면 이는 희망이요, 기대며, 벅차오름이다. 사악한 어둠의질곡도 결국 한 줌의 햇살 아래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새해의 첫달에 문화예술계에서 더 많은 밝고 건강한 공연물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문화가 종말이 논란이 되는 이 시대에 진보의징검다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개 한 해를 보내면서 하는 송년 음악회나 송년전시회는 차고 넘쳐서 얼굴 내밀기도 벅찬데 우리에게 새해를 준비하게 하는 신년음악회나 신년전시회는 인색한 듯 하다.
그래서 타산지석의 예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빈의 신년 음악회를 소개하려 한다. 오스트리아의 신년음악회 중에서 빈 필하모니가 요한 슈트라우스 가문의 왈츠를 연주하는 신년음악회가 가장 유명하다. 이 음악회는 1939년 시작하여 1945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매년 약 15억의 인구가 이 공연을 지켜본다고 한다. 이 음악회는 매년 최고의 지휘자를 엄선하여 객원지휘를 맡겨 이해의 지휘자가 되는가에서부터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이 음악회의 내용을 보면 철저하게 오스트리아의 자긍심과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항상 앙콜곡으로 연주되는 제 2의 오스트리아 국가라고 불리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으로 그들은 매년 새해에 오스트리아인으로서의 정체감과 유대감, 그리고 자랑스러움을 전세계인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맛보고 있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일엏게 한 해를 시작하는 오스트리아가 질투가 나도록 부럽다. 그래서 나는 이 연주회를 매년 비디오로 보면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대신에 애국가가 담겨있는 ‘코리아 환타지’를 상상하고 왈츠 대신에 우리의 민요나 타령 등을 상상하며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기를 간구하고 있다. 단순한 음악회 뿐만 아니라 그런 정체감과 자부심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