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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 | [저널초점]
저널이 본다 독립신문 창간 100주년, 나아진 것은 허울뿐이다
글 / 윤덕향 전북대 교수 고고인류학과 (2004-02-10 14:12:26)
지난 연말은 6공 비자금 사건에 뒤이은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 속에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권위는 재판정에 선 비겁한 모습으로 , 반성하지 못하는 철면피한 모습으로 전락되고, 홀로 남은 ‘역사에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분의 권위조차 언론의 예리한 붓끝에서 한줌도 찾을 수 없게끔 되었다. 가히 역사의무서움을 살아서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기업이라는 왕국에 군림하던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명암을 달리하여 겹쳐지는 시간들이었다. 그 넓은 지면의 몇 면씩을 아낌없이 할애한 신문이나 뉴스시간의 대부분을 신나도록 보도하는 방송을 보며 지난해 초부터 소리 높이던 세계화, 국제화에 걸맞는 정보능력과 자료를 갖ㅊ우고 있는 우리의 언론에 찬사를 아끼지 않을 수 없는 날들이었다. 연일 제공되는 신문과 방송의 그 많은 자료와 정보들 , 그리고 곁들여지는 해설, 게다가 때맞추워 방송된 군사정권시기를 주제로 한 각종드라마를 보노라면 이 따에 참으로 언론문화가 활짝 만개하고 민주언론이 튼실하게 뿌리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언론매체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듣고 보도록 강요당하며 마냥 가슴이 뿌듯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직 대통령 중의 한 분이 꼭두새벽에 연행되어 5공 정권의 정통성을 외치며 단식하는 것에 감정이 풍부한 국민의 하나인 탓으로 마음이 약해져서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몇 십억, 몇 백억은 고사하고 억이라는 돈조차 어림하기 어려운 대다수 노동자들이ㅡ 모습이 눈에 밟힌다. 6공의 비자금에서 비롯된 인련의 과정이 정부여당의 정략적 의도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언론까지 싸잡아 의심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런 의심이 들고 그 의심이 정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간점에 따라서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련의 절차와 수단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으나 이번 한 번만은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해줄 수도 있다고 치부해두자. 1996년은 독립신문이 창간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금년 신문의 날에는 각종 행사가 푸짐하게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날 읽혀질 지도 모르는 ‘정부에서 하시는 일을 백성에게 전할 터이요 정부가 백성의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 유익한 일만 있을 터이요....’라는 독립신문 창간사는 오늘에도 의미가 있다. 지금 우리의 언론은 독립신문이 창간된 100년 전에 비하여 질적,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도심의 하늘로 치솟은 건물이나 하루가 다르게 현란해지는 보도 수단. 그리고 당시로는 꿈조차 꾸지 못했을 각종 언론매체의 등장과 같은 외형적 발전은 비교자체가 부질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100년 전에 제시된 언론의 본래적 기능이라는 면에서 얼마나 발전하였느냐 하는 것이다. 국권이 강탈되었던 시기나 군사쿠데타로 인하여 총칼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는 생존을 위하여 어찌할 수 없었다고 너그럽게 생각해주자. 그러나 문민정부를 자처하는 지금, 해방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항일 애국지사만큼이나 기세등등하게 나대는 일부 언론의 모습에서는 분노를 넘어 측은함이 느껴진다. 일제의압제를 맞서, 군사독제자의 총칼에 온 몸으로 저항한 언론인들은 열거할 수도 없이 많다. 또 삼엄했던 유신치하나 5공시절 국민들은 신문의 행간에서 암호처럼 전달되는 정보를 읽어내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역사 바로 세우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6공비자금이나 12&#61598;12, 5&#61598;18관련 사실들은 신문이나 TV에 얼마나 등장하였는지 언론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성역없는 수사,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대통령 각하의 지시가 있자마자 그 많은 정보와 자료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뒤이어 각계각층에서 터져나온 특별법 제정 요구에 침묵했던 언론이 정보와 자료들을 봇물 쏟듯 전해주며 역사 바로 세우기를 선도하는 듯한 것에 마냥 고운 눈길을 수만은 없다. 그간 그 많은 정보와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행여 전직 대통령중의 한 분이 말씀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결단은 아닐 것이다. 그런 언론이 현직 대통령의 말씀이 있자마자 앞다투어 보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정권과 언론의 유착이 아닐까 의심쩍은 것이다. 총칼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에는 그래도 행간마다, 낱말마다에 저항이나 고뇌가 스며있었다. 이제 전직 대통령을 비롯항 정치인,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검찰까지를 춘추필법으로 소리높여 비판하며 언론은 역사를 바로 잡는 소명의식에 불타는 것같다. 목적이 일치되는 탓인지 매체마다, 기관마다 차별성도 크지 않고 일치단결, 일사불란하게 곽거 청산에 일로 매진하는 것같다. 불기소 처분을 했던 검찰은 다시 수사를 맡으며 나름의 변을 들려주었다. 그럼에도 언론매체만은 입에 발린 자성의 소리조차 크게 내지않는다. 언론에 대한 비판의 소리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민초들의 외침을 보도했던 것만큼이나 들릴 듯 말 듯하다. 과연 모든 언론이 6공 비자금에서 비롯된 ‘역사 바로 세우기’에 자기반성 없이 나설 만큼 떳떳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다시 언론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통치자의 뜻이라면 총선정국으로 내달을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이런저런 총선관계 정보가 전달되고 해박한 해설이 곁들여지는 신문, 방송에 5공과 6공 청산, 아니 ‘역사 바로 세우기’는 한 쪽으로 밀려날 지도 모른다. 이런 점이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 삼풍붕괴사고를 보도하기 위한 취재경쟁을 국민의 알권리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으로만 보지 못한 소이연이기도 하다. 지난 시절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던 전직 대통령들을 짓밟는 일에 앞장선 일부 언론들이 예에 따라 현직 대통령을 위하여 ‘PR이란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린다’는 항간의 정의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안목이 잘못된 탓일까? 검찰에 앞서 각종 의혹을 들추어내는 언론들이 세간에서 의혹이제기되었던 방송 매체를 둘러싼 의혹에는한결같이 침묵이다. 남대문 시장판의 지게꾼도 순서가 있듯 동업자의 의리를 과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대통령의 말씀이나 눈짓이 계실 때까지 깊숙이 숨겨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언론이라면 100년 전보다 나이진 것은 허울뿐이다. 백성의 여론을 살펴 위로 전달하지 않고 통치자의 뜻을 헤아려 전달하는 것은 홍보매체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허울이 발전하더라도 독립신문이 창간사에서 밝힌 정신에 비추어 반쪽 언론일 뿐이다. 언필칭 사회의 목탁으로서 언론에게는 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따라서 언론만은 남의 눈의 들보를 보기에 앞서 제 눈의 티끌을 먼저 보도록 기대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언관(언관)은 청직(淸職)이었고 그것은 오늘에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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