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6 | [문화와사람]
나를 가르치는 삶이 전하는 저 소리들
음악인 한치영, 한태주
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3-03-26 15:45:56)
소문없이도 세상을 타고 있는 이들의 음악.
이들의 삶이 녹아있는 음악은 세상과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내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세상을 조용히 감싸는 시도를 일으키는 중이다.
이들의 음악은 TV나 라디오의 전파로는 쉽게 만나지지 않는다. 환경단체, 종교단체, 시민단체의 '목적' 있고 '이유'있는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다.
음유시인 한치영씨와 오카리나 연주자 한태주군. 이들은 한집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맺고 사는 부자지간이다.
우리의 역사와 삶, 자연의 소리를 닮아있는 이들의 특별한 음악만큼이나 사는 모양새 또한 남다르다.
대중가수를 꿈꾸던 아버지 한치영씨와 실력있는 건반 연주자였던 어머니 김경애씨, 그리고 중학생의 나이에도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는 한태주군.
세 식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경남 하동 악양면.
그동안 화순으로 강릉으로 해남으로 양평으로 순창으로 떠돌다 또다시 들어온 곳이다.
멈춰있지 않는 생활을 마다않는 이들의 이유는 간단하다. "집이 없으니까", 시골의 빈집 찾아 나서기는 이들에게 즐거운 생활의 방편이다.
'소유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살아가기.'
이런 이들에게 '먹고 사는 걱정'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도 있다. 아니, 먹고 사는 일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단 하나 '음악'이 부대끼고 사는 받이가 되어 해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옮겨다닌 자취 마냥 그들과 관계하고 인연맺은 사람들과 자연은 소슬소슬 스며들어 그와 아들의 노래와 연주가 되는 것처럼 사는 일도 이와 꼭 같다.
음유시인이란 별칭을 얻은 가수 한치영씨.
당초 그의 꿈은 여느 대중가수들처럼 스포트라이트 환한 무대에 오르는 것이었다. 82년 MBC 강변가요제에 나갔다. 친구 두 명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운좋게도 금상을 받은 이후 그가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참으로 많은 길을 에둘러 온 것이 사실이다.
이후 음악에만 몰두했다가 드디어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레코드회사에 테이프를 얼마후 음반을 내자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해서 91년 나온 첫 번째 음반이 '할미꽃'이었고 96년엔 2집 '이것 참 잘 돼야 할텐데'를 냈다.
하지만 음반회사의 요구나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시스템속에서 작업하는 것은 그의 기질에 맞지 않았을 뿐더러 그의 그런 음악활동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던 아내 김경애씨의 "언제까지 그런 음악으로 혼탁한 세상을 더할거냐"는 타박.
세 식구 모두 힘든 길로 나서는 짐을 꾸렸다. 이리저리 떠돌며 농삿일을 거들고 온갖 일을 하며 생활이란 것에 부딪쳤던 것들도 음악으로 돈을 구하려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음악세계를 꾸려야겠다는 생각은 식구가 나서는 모든 길의 이유가 되고 힘이 되었다.
해남에 살던 99년에 나온 세번째 음반 '아! 해남'엔 그렇게 6년 동안의 해남생활에서 얻은 노래들이 담겨있다.
간결하지만 울림이 깊은 노래들. 그의 노래는 자연과 생명에서 역사로, 세상사람들이 부대끼고 움켜쥔 세상속으로 조용히 걸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윤명철(동국대 사학과 교수)씨를 통해 고구려의 역사에 새롭게 눈뜨면서 그 웅혼한 기상과 위대한 정신을 우리의 현재와 미래로 끌어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역사를 테마로 한 작업들을 담은 음반이 '광개토대왕'이다.
'광개토대왕'에는 타이틀곡인 '광개토대왕'을 비롯 '고구려 아이들' '듣고 싶어' '하늘의 아들' '백암성' 등의 노래가 담겨있다.
"넌 몰고 싶니?/ 번쩍거리는 은색 오토바이/난 올라타고 싶어/늠름한 천리마 말잔등/넌 질주해보고 싶니?/복작거리는 도시 빌딩 사이/난 달려가고 싶어/끝없는 풀바다 고구려/...옛날 할아비들 햇덩이 찾아 /달려온길 /달려보자..."('고구려 아이들' 중)
광활한 고구려 평원과 산을 내달리던 말발굽소리처럼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뜨거운 격정에 사무치게 하는 노래들은 나를 만든 역사와 세상을 만나게 한다.
그는 아들 태주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학교라는 울타리를 져버리고 '풀어져', '놓아져' 자라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태주는 중학교를 가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집에서 스스로 음악공부를 하겠다는 태주의 뜻을 부모가 지지한 것이다.
그와 아내는 학교를 안 보낸 것이 "태주를 위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며 자신있어 한다. "요즘 교육이란 게 의미없는 백화점식 교육, 입시·입시위주의 교육밖에는 되질 않고 있잖아요. 걱정이 되는 것은 학교를 안 다니는 태주가 아니라 그런 병든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라고 이들 부모는 단호하게 말한다.
태주는 그간 아빠랑 함께 무대에 많이 섰다. 태주는 흙으로 빚어 만든 악기 오카리나를 좋아한다. '풀벌레를 모여들게 하는 신비의 소리'로 말해지는 오카리나 특유의 소리를 알만큼 음악성을 타고난 태주는 벌써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고 곧 오카리나 연주를 담은 태주의 첫 음반이 세상에 선을 보일 예정이다.
한치영씨와 아내 김경애씨가 힘든 길을 돌고 돌아 세상과 음악과 조우했다면 아들 태주는 그런 부모와 함께 커온 탓인지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누군가 나서서 휘젓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세상속에서 나의 음악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있다. 환경, 시민단체의 공연장에 나설때마다 "뜻이 있는 사람들은 왜 가난해?"라고 묻는 태주의 순진한 물음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음악속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늘 든든한 동지이자 후원자인 이들 세 가족은 공연이 있을 때면 기타와 오카리나를 챙겨 길을 나선다.
오늘도 이들의 음악이 조용히 세상을 타고 넘어서는 이유. 바로 다름아닌 이들의 삶을 담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귓전을 떠나면 금새 잊혀져버리는, 환호속에서만 빛이 나는 음악이 아닌 삶의 이유가 묻어난 음악. 그것들이 혹여 우리 귓전에 메아리치기 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지언정 삶이 사람을 가르치고, 즐거운 음악이 실력이 되는 이들의 음악이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