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 | [문화저널]
춘향전 사설집 발간한 명창 최승희 씨
판소리 혁신시킨 정정렬 맥을 잇는다.
문화저널(2004-02-10 14:15:56)
명창 최승희씨(58)가 자신의 스승인 정정렬제 판소리 사설집 [춘향제]를 발간했다. 소리길에 들어선지 40년. 득음에의 과정을 치열한 열정으로 닥아온 그는 스승의 발자취를 잇기 위한 소망의 결실을 얻어낸 셈이다. 사설집 발간을 계획하고 사설 정리를 시작한지 꼭 5년만에 발간 된 [춘향가]는 20세기 전반에 주로 활동했던 당대의 명창 정정렬의 판이다.
‘절세의 명창’, ‘진정한 명창’ 이란 평가를 받았던 정정렬은 소리를 새롭게 창출해내 판소리를 혁신시킨 의식있는 예술가였다. 그는 기왕에 있던 소리를 그저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좋은 더늠은 쓰고 그밖의 더늠은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담은 사설과 곡으로 새롭게 구성해 아름다운 소리를 창출해냈다.
그중에서도 춘향가는 정정렬 판소리의 백미로 꼽히는 아름다운 곡이다. 그의 춘향가는 기존의 춘향가들과는 달리 사설이 일관성을 갖고 있고 새로 지은 사설이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그 아름다움이 빼어나며 음악적 기교 또한 매우 다양하다는 특징을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이러한 판소리 창작 작업을 두고 당대에서는 찬향과 비판이 오고 있지만 오늘에 남아있는 그의 소리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족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판소리 연구가 유영대 교수는 “그의 소리는 우선 알아듣기 쉽다. 그가 부르는 사설은 아주 쉽게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는 사설을 그 내용에 적절하게 쉽게 바꾸어 불렀으며 처해있는 상황을 아주 절실하게 그리려고 노력했던 특히 이면그리기에 충실한 소리꾼이었다”고 밝힌다.
정정렬의 판소리는 당대에도 이름을 널리 알려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문화에 몰려 [춘향가]를 배웠지만 그 바탕이 다른 소리보다 워낙 어렵고 또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없었던 탓에 전바탕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소리꾼은 몇안되었다고 한다. 김여란이나 이기권은 그 전판을 받았지만 이기권은 일찍 작고해 김여란으로 이어지는 춘향가만이 정정렬 춘향가의 전통으 잇고 있다. 이번 사설집을 발간해낸 최승희 명창은 정정렬-김여란으로 이어지는 춘향가의 적자인 셈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김여란 문하에 들어가 소리를 배웠다. 다른 소리보다 유난히 어려운 정정렬제 춘향가를 배우느라고 그는 수많은 어려움을 거쳐야했지만 ‘스승의 소리’만큼 깊은 소리속과 맛에 비견되는 소리를 만나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이소리의 예술적 경지에 심취해있다. 그가 어려운 여건에서도 굳이 이 사설을 정리해낸 것도 얄팍해서 배우기 쉬운 소리에 마음을 맏기는 후진들이 좀더 관심을 가지 이 소리를 만날 수 있게하기 위함이다
“사실 오랜 동안 안아온 소원이었어요. 가진 지식도 글도 짧아 정말 많은 힘이 들었지만 제자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어요.”
그는 정작 사설을 정리할때보다 책으로 만들어서 교정 보는 일이 어려웠다고 말한다 이번 사설집을 펴내면서 자신의 작업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소개한다.
그의 더 큰 욕심은 [춘향가]악보 전판으 FSKARUSHG는 일이다 사설 뿐만 아니라 이 곡의 아름다움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게 하겠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그는 이즈음 마음이 바쁘다고 말한다. 마음을 다져 먹었을 때 밀어 부쳐야한다는 생각으로 곧 악보작업으 들어갈 참이다.
수십 년 소리를 했지만 이제야 소리 맛을 알 것 같다는 최승희 씨는 현재 전북도립국악원에서 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정정렬제 춘향가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그의 소리는 이종달, 소주호를 비롯한 적지 않는 제자들에 의해 이어지고 많은 판소리 전문가들도 이 소리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