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2 | [건강보감]
건강교실
아직은 먼 복지국가의 꿈
글/정영원 완산보건소 소장
(2004-02-10 14:43:45)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눈이 썩고 거기에 구더기가 생기는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며 감히 상상도 못했기에 의사의 상식으로도 치료 할 방법을 찾지 못해 당황했던 경우였다. 그를 보호하고 잇던 집주인이 비록 불쌍한 떠돌이를 받아들인 사람이었지만 몹시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내가 한 일이나 군청에서 한 일을생각하면 그에게 세끼 밥과 잠자리를 준 주인은 정말 천사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병원에 한번 가보지 못하고 며칠 후 죽고 말았으니 말이다.
정말 누구도 그 주인을 욕하고 그 이웃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이 사회는 한 사람의 착한 마음씨나 이웃의 사랑으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변화된 사회구조는 그러한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을 뿐이다. 말하자면 그 사실이 주변에 알려졌을 때 집주인은 순박하고 착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제 이 사회가 발전된 사회라면, 실버타운을 구상할 정도의 사회라면, 그러한 문제들은 국가가 혹은 지방자치 단체가 떠맡아야 된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나 걷고 자매결연을 위해 중매나 서는 , 생색이나 내는 남으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사람을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된다. 그래서 쓰러진 사람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싶은 착한 시민의 마음과 무료로라도 치료해 주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행동에 옮겨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혹시 평생 책임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착한 마음 걱정 때문에 그마저 돌아서게 해서는안된다. 더욱이 그로 인하여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게 된다거나 아예 냉혹한 인간으로 돌아서게 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갑작스런 사고나 돌보아 줄 보호자가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사람들을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가 그러한 사람들의 직접적인 보호자로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사문화 되어 버린, 1965년도에 만들어지고 1971년도에 한 차례 개정된 바 있는 ‘전주시행려병상운영조례’와 같은 것을 살아 있는 조례로 다시 부활시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더 필요하다면 노인 치료 시설도 좋고 실버타운도 좋을 것이다.
이제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는 국민이나 주민의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이러한 궂은 일을 해내는, 한 가정이나, 이웃의 사랑만으로는 떠맡기에 벅찬 일을 맡아 처리하는 보호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복지국가의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