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2 | [문화저널]
미술 미술의 해는 계속 된다.
문화저널(2004-02-10 14:54:17)
지난해 ‘미술의 해’를 바쁘게 보냈던 도내 미술계의 올해 사업은 지난해를 차분하게 정리하는 작업으로 시작된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사업은 전북미술협회(지부장 선기현)의 「전북미술 100년사」출간이다. 1월말 출간예정인 이 책은 전북지역의 미술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적이 그동안 전무했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면 뿐만 아니라 자료로서의 가치도 대단히 높다는 것이 협회 실무진들의 설명이다. 이 책에는 그 동안 미술사 정리작업이 주로 작품 사진을 중심으로 한 도록 형식에 그친 것에 반해, 근대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작가탐구, 작품해설 등이 집대성되어 지역 미술사를 한눈에 정리할 수 있게 해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책에는 그 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공개되지 않았던 발굴 자료들도 상당수 실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지역 미술사의 지평을 확대하는 뜻깊은 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작업은 미술협회가 지난해 ‘미술의 해’를 풍성한 전시와 행사들로 보낸 뒤 새해에 곧바로 알찬 수확을 내놓음으로써 미술의 해는 계속되고 있다‘는 미술계의 상장적인 선언으로 평가될법하다. 미술협회는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올 한 해 안에 지역미술의 현대사까지 더듬어 책으로 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더욱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여기에 동게 U대회의 개막식과 폐막식에 맞추어 대규모 전시회를 열 작정으로 있어 지역미술의 역량과 가능성을 한껏 과시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몇년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상설 갤러리들의 위기극복에 미협이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 지역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한편 90년대 들어 계속적으로 수세에 몰렸던 미술운동진영도 작년의 조직정비에 이어 올해에는 적극적인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역 재야미술계의 대표격인 전북민족미술인협의회 (전미협)는 올해를 수준높은 창작과 대중적인 사업의 해로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조직 변화를 거쳐오면서 미술운동은 실제 창작보다는 부문운동에 치중한 현장활동을 중시해왔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전북지역 민족 미술운동의 중심체로서 새로운 홀동을 예고하며 창립한 전미협은 시대변화나 현실인식에서 얻어진 삶의 감동을 미술창작을 통해 표출한다는 창작 중심의 활동 취지를 , 창립전, 해방 50주년 기념전, 들꽃전 등을 의욕적으로 열어왔다. 전미협은 지난 한해의 활동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보다 더 대중들에게 가까이 설 수 있는 부드러운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다.
‘생활과 미술과의 만남’으로 표현될 수 있는 전미협의 올해 사업 가운데 첫 번째는 4월경으로 예정하고 있는 환경운동연합과 연대한 <환경전>이다. 전미협은 이처럼 다른 운동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이를 위해 별도로 연대특별위원회까지 설치 운영할 계획이다.
전미협은 가장 중심적인 활동으로 개개인의 창작활동을 최대한으로 장려하고, 각 회원들의 개인전을 통해 민족미술 전반의 질적 수준을 높힐 작정이다. 지난해 호평을 받았던 송만규, 나종회 씨 등이 이미 개인전을 열었고, 올해는 그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고희승, 유대수 씨 등 다수의 회원들이 일정을 잡아두고 있다. 이들 젊고 신선한 감가그이 작가들이 지니고 있는 민중적인 감성과 치열한 창작정신은 미술운동의 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욱이 이들의 전시는 지난해, 송만규, 나종희 씨 등이 보여주었던 미술운동의 은근한 변화들에 뒤이은 것이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밖에도 전미협은 가을에 회원모두가 참여하는 <회원 기획전>을 열 계획을 갖고 있어, 전북지역의 민족민중미술이 어디쯤에 와 있는지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 지난해 창립 4년만에 처음으로 회원전을 열었던 ‘그림마을’은 올해도 회원전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몸을 바꾼 전미협에 비해서 이미 3-4년전부터 건강한 그림과 대중적인 사업을 시작한 그림마을은 올해 역시 강습과 회원 개개인의 훈련에 주력할 계획이다. 좋은 그림을 그려 보고 싶은 아마추어 화가지망생들이 ‘그림마을’을 찾아가면 젊고 신선한 감각을 가진 청년작가들과 함께 한 시대를 호흡하는 그림을 같이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도내 각 화랑에서도 미술의 해를 기념하면서 열었던 각종 기획전들이 올해도 계속된다. 화랑연합제로 열리는 ‘한집 한그림 걸기’등의 프로그램들이 계속되며, 각 화랑이 저마다 전통적으로 이끌어왔던 기획전들도 유심히 관찰하면 좋은 그림 공부가 될 것이다.
‘미술의 해는 계속되고 있다.’는 암묵적인 선언을 하고 나선 전북미협이나 창작에 전념하면서도 ‘대중과 함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나선 전미협, 그리고 상업화랑으로서 지역미술의 보루 역할을 하고있는 각 화랑 모두 96년 지역 문화계의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그러나 미술계의 96년이 그렇게 장미빛은 아니다. 우선 전북지역의 화랑들이 몇 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실제로 일부 화랑은 진퇴를 결정해야 할만큼 심각한 상황에 몰리고 잇다는 점이 올 한해 미술계를 가장 고단하게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술의 대중화가, 오래전부터의 숙원사업처럼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은 그림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친밀하지 못하다는 점이 미술계가 풀어야 할 근본적인 과제이다. 여기에 지난해 ‘미술의 해’에 보여졌던 관심이 아무래도 약화될 것이어서 미술계가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도 경계해야 할 요소이다.
이사람
고단하지만 누군가가 해야 할 일
설치작업의 기대주 이동주
이동주 씨(32세)는 비교적 보수적인 화풍의 지역화단에서 힘들게 설치작업을 해온 개성있는 작가이다. 임실 대곡리에 입주해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50여평의 넓은 작업실에서 대작의 평면작업과 설치작업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그는 올해 내실을 기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미술의 해를 보내면서 많은 전시가 있었지만 성과를 말하라면 아쉬움뿐이라는 그는 그림을 돌아볼 여유를 찾고 싶고 작업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이동주는 이론 공부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 작가로 언젠가는 전시장실을 돌아보며 어려움을 느끼는 대중들을 위해 쉽게 그림을 보고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는 책자를 발간할 계획도 세우고 있는 야심찬 작가다.
특히 그가 들어가 작업을 하고 있는 대곡리가 3월 1일 개관 예정으로 한창 그 준비로 바쁘다고 한다. 대곡리에 입주한 하상용, 최원, 전량기, 이동주, 강용면 씨 등은 개관 기념으로 소품전을 준비하고 있다. 대곡리미술촌은 외국작가나 국내 작가들을 초빙해서 현장 작업전을 하는 특징적인 작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모악재에서 전시를 가졌던 일본인 작가 국지효씨도 대곡리에서 한달여를 체류하며 현장 작업을 하기도 했었다. 이동주씨는 이런 경험들을 살려 현장 작업전을 시도해 보았으면 하는 바램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