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6 | [저널초점]
저널초점 - 월드컵 문화행사
눈 앞의 잔치에 음식이 남아돈다?
전주월드컵 경기장 사후활용, 어떻게 할 것인가.
김한광 전주 MBC 기자(2003-03-26 15:56:42)
전주 월드컵 경기장은 분명 새로운 경험이다. 기껏해야 전주 종합경기장에 익숙한 눈에는 더욱 그렇다. 우선 축구 전용 경기장이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규모는 어떤가. 부지 17만 평에 관람석만 4만 2천 4백 77석, 넓어만 보이는 종합경기장도 부지는 만 평을 조금 넘고 관람석은 3만 2천 석이다. 여기에 합죽선과 가야금 12현, 솟대를 형상화했다는 월드컵 경기장은 조형미까지 뒤지지 않는다. 이쯤이면 우리도 이제 "꿈의 구장"을 갖게 됐다는 자부심이 들 법도 하다.
신축과 증·개축의 소모적인 논란 끝에 전주 월드컵 경기장은 지난 99년 2월 2일 신축의 첫 삽을 떴다. 마치 시공회사 부도의 전조였던 듯 한겨울의 칼바람이 유난히도 매서웠던 날이다. 그렇게 벼랑 끝에서 터를 닦고 기둥을 세워 지난 해 10월 18일 완공을 봤다. 공사기간 33개월에 공사비 천 4백 50억 원, 연인원 25만 명이 동원됐다. 63만 전주시민이 빠짐없이 23만 원씩 부담한 것과 맞먹는 공사비 규모의 대 역사였다. 아무리 숫자에 무디다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담임에는 틀림없다. 이 경기장에서는 꼭 3게임이 열린다. 우리나라가 조 2위로 16강에 오를 경우 그 역사적인 무대는 바로 전주 월드컵 경기장이다. 그렇다해도 고작 3게임에 투자비 천 4백 50억 원이라면 그 자체로는 분명 '밑지는' 계산이다.
월드컵은 어쩌면 우리 생애 마지막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마지막이라는 말에 마치 주문처럼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쓴 경기장이 건축사의 새로운 이정표이자 우리 시대 자부심으로 포장되는 배경에도 마지막의 주문이 어느 정도는 효험을 발휘하고 있는지 모른다. 전주 월드컵 경기장의 이 밑지는 계산은 이렇게 정신적 만족감에 그럭저럭 평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유효기간이다. 지금이야 축제의 설렘과 기대감을 자양분으로 지탱이 가능하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면 속된 말로 '약발'은 떨어진다. 지금 월드컵 이후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고 해법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논의의 핵심은 바로 경기장 사후관리다.
전주 월드컵 경기장 17만 평에는 주 경기장과 보조 경기장,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주변에 별도로 만남의 광장 만 5천 평이 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이 시설물을 시에서 직영하려면 연간 27억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물론 이 돈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시민들의 자부심이라는 경기장 시설이 동시에 돈 먹는 애물단지의 두 얼굴인 셈이다. 고민 끝에 전주시는 전문가 자문과 용역을 거쳐 사후관리 방침을 확정했다. 쉽게 말해 월드컵이 끝난 뒤 관리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핵심은 이렇다. 먼저 모든 시설물은 민간에 맡겨 관리시키고 전주시는 손을 뗀다. 이를 위해 주차장은 최소 부지만 남기고 수익시설인 6홀 짜리 퍼블릭 골프장으로 바꾼다. 경기장 관람석 아래 공간에는 스포츠관련 업종을 비롯해 사우나, 레스토랑, 예식장 등 최대한 돈벌이 업종을 유치한다. 만남의 광장에도 간이매점과 토산품 판매점 등을 설치한다. 그리고 민간위탁 관리자는 앞으로 사업 설명회를 거쳐 골프장 부분과 경기장시설에 따로 공개입찰 방식으로 확정한다는 것이다.
경기장 사후관리의 큰 틀은 수익성과 공익성이다. 이 두 가지 명제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지만 조화시키기는 어려운 문제다. 전주시도 이 점 때문에 고민했다. 전주에 연고 프로축구팀이 있다는 점 말고 경기장 사후활용의 장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전주 월드컵 경기장은 축구 전용구장이다. 월드컵을 치르기에는 좋겠지만 축구 말고는 다른 활용 대안이 없다. 처음 개최도시 유치경쟁에서 점수가 낮은 종합경기장 대신 축구 전용구장을 선택하면서 예고됐던 짐이었다. 당시에는 경기장 신축과 증.개축 논란만 있었을 뿐 경기장 사후활용의 논의는 거의 없었다. 돌이켜보면 너무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렇게 제약된 여건에서 수익시설로 골프장을 구상하게 된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수익원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경기장 시설관리를 보완할 묘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문제는 역시 공익성이다. 잠시 경기장 사업비 분담내역을 들여다보자. 천 4백 50억 원의 사업비는 전주시가 47%인 6백 82억 원, 전라북도가 31%인 4백 54억 원, 나머지 22%인 3백 14억 원이 체육진흥기금이다. 모두가 도민들의 혈세와 공익자금을 썼다. 결론적으로 경기장은 공공의 이익에 쓰여야 할 공공재인 것이다. 경기장 시설 일부에 수익시설로 들어설 골프장과 경기장 자체의 민간위탁은 본질이 다르다는 말이다. 경기장을 민간에서 관리할 경우 공익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손해를 보고서라도 경기장을 운영하겠다는 민간인이 있다면 모를까. 당연히 경기장 운영권을 따낸 민간인은 무리한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그 시설을 누려야 할 주인인 시민들은 수익추구의 대상일 뿐이다. 그 공공재인 경기장까지 민간 위탁하는 순간 공익성은 최소화되거나 포기하는 것이다.
전주시는 이 때문에 적어도 경기장만은 직영하는 문제를 깊게 고민했다. 구체적으로 시설관리 공단이나 공사 설립 같은 직영방안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전주시는 결국 민간위탁을 택했다. 골프장까지 조성해 민간위탁해도 첫해부터 6-7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시설을 직영하는데 따른 부담을 열악한 재정으로 떠받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했음직하다. 공무원 구조조정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 역시 부담이었을 것이다. 설령 공단체제가 가능하다 해도 뒤따를 노조설립 등을 현실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였을 터이다. 결국 이 모든 부담을 털어 내는 손쉬운 방법으로 경기장 민간위탁을 택했다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쉽게 말해 공익을 포기한 배경이 정작 공익 그 자체보다는 예상되는 짐 떠넘기기만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인상이 짙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익성을 선택한 과정의 설득력이 약하고 공익을 포기한 명분마저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스타드 드 프랑스(Stade de France)는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의 무대로 생드니 시에 있는 7만 5천 명 수용규모의 경기장이다. 프랑스는 98년 월드컵 유치가 결정되기 전인 90년부터 이 경기장 건설에 착수했다. 건설비의 53%는 민간기업이, 나머지 47%를 정부가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 이미 사후관리 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돼 민간위탁이 확정됐고 경기장도 활용도가 다양한 종합경기장으로 지어졌다. 지금 경기장은 민간기업 컨소시엄이 운영하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재정적 지원을, 생드니 시는 행정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 공익성과 수익성을 조화시킨 성공적인 월드컵 경기장 사후관리의 모범으로 꼽히는 사례다.
전주 월드컵 경기장 신축과정을 한마디로 아우를 수 있는 말은 조급함이다. 어떻게 짓자는 논의도 부족했고 대회 이후에 대한 청사진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다만 월드컵 개최도시 선정에 대한 도민 선동과 집착만이 있었을 뿐이다. 지금 경기장 사후활용방안 결정과정에서도 그 같은 조급함이 엿보인다. 대회를 잘 치르자는 선동은 있지만 사후활용방안에 대한 여론수렴의 집착은 찾아볼 수가 없다. 굳이 프랑스까지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화산체육관의 사례가 있다. 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경기시설인 화산체육관은 민간에 위탁한 뒤 수익추구의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월드컵 경기장 민간위탁을 피할 수 없다면 스타드 드 프랑스처럼 보완책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공익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부 시민부담이 따르게 된다면 설득을 통한 합의도출의 노력이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월드컵 경기장 사후활용은 전문성이라는 이름만으로 마치 밀실 같은 곳에서 결정해 '이렇게 하기로 했다'고 할 사안이 아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좀더 치열한 논의가 필요한 우리 모두의 현안이다. 또 공익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가치도 아니지 않은가. 아직도 기회는 있고 빠듯하지만 시간도 있다. 전주 월드컵은 지금 과잉 대회준비 논란을 낳고 있다. 눈앞의 잔치에 음식이 남아돈다는 얘기다. 그 남는 열정과 관심을 더 늦기 전에 월드컵 이후에 대한 논의에 쏟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