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3 | [문화저널]
꽁트
문촌선생의 시대유감(時代遺憾)
글/김저운 소설가
(2004-02-10 15:50:16)
애당초 그 자리에 나간 게 잘못이었다. 가뜩이나심기가 불편하던 터라서 겨울 내내 칩거했었는데, 친구들의 서오하가 하도 심해서 바람이나 쐴 양으로 모처럼 외출을 했던 것인데 말이다.
사실 그 자리는 문촌(文村)선생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정초의 신문마다에 그 기사 - 정치 기생 시인 운운하는- 가 나간 뒤로 충격이 커 오래 몸져누워 있었는데 위로 겸해서 친구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아니,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장 교수의 친구라는 그 그림쟁이만 아니었어도 일이 벌어지진 않았으리라. 목포에서 올라왔다는 화가는 첫눈에도 거슬려 보였다.
“유환이라고 합니다. 빛날 환이죠. 이름 그대로 아마 면적이 넓어서 모자를 벗으면 훤합니다.”
‘누가 그림쟁이라고 안 할까 봐.’
그의 머리에 낯간지럽게 얹혀진 베레모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차던 터에, 그 말을 듣고 짙은 구레나룻을 보자 다시 코웃음이 나온다.
‘정작 머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죄다 턱 아래로 쏠렸군.’
그렇게 처음부터 배알이 꼴렸다. 요즘 심사가 사나워진 까닭도 있지만, 원래 그런 모습은 영 질색이다. 무어 예술을 한답시고 겉모습부터 요상하게 하고 다녀야 되는가. 문촌 선생은 다시 한 번 자신의 깨끗한 와이셔츠를 돌아보고 넥타이를 고쳐 맸다.
우연히 끼여든 상대방에 대한 불만 - 문촌선생은 요즘 사람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겼다. 오늘도 이 친구들이 아니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을 공연히 드러낸게 싸움의 발단이 됐는지도 모른다.
“거, 내가 아는 어느 화가 중에도 대머리가 하나 있지요. 댁은 어떤 형태인지 몰라도, 그 작자는 주변머리가 없어요. 목하고 뒤통수를 구분하기 어려워요. 항상 번들번들한 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그렇겠습니다. 하도 보기에 딱해서 차라리 모자를 쓰는 게 어떻냐고했어요. 그랬더니 그 작자 이렇게 말하지 뭡니까. 내가 차라리 그림쟁이가 아니라면 기꺼이 모자를 쓰겠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니까 더 못 쓰겠더라, 그림도 제대로 못 그리는 주제에 멋만 부리고 다닌다고 할까봐........ 이렇게 말이지요.”
둘러앉은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그 유환이라는 작자는 얼굴이 벌개져 가지고 안절부절 못하는것이었다. 문촌선생은 속으로 비웃었다.
‘못난 자식. 나이 값도 못하네. 촌놈이라 틀리군.’
그러면서 또 슬쩍 낚싯줄을 던져 보았다.
“언제 나몯 사람 그림 한 번 뽈까요? 그래야 친굴 하든지 하지...”
유환은 입을 꽉 다문 채 잠시 그대로 있었다. 처음 인사말 할 때와는 달리 고지식한 데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큰맘이라도 먹은 듯 심호흡하고 나서 단호하게 말을 뱉었다.
“제 그림 비싸요.”
기가 막혔다. 어안이 벙벙해서 잠시 멍하니 있으니 그가 또 중얼거리듯 던지듯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예술도 돈 아니오?”
문촌선생은 양주잔을 소리나게 내려놓고 얼음을 채웠다.
“임마 내가 누군 줄 알어? 내가 네 그림 욕심나서 달란 줄 알었냐구? 우리 집엔 온갖 서화와 골동품이 가득 차 있다. 너 같은 시시한 작자의 것은 내가 소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인줄 알아야지. 오기는 있어가지구선.......”
술잔이 몇 차례 오가고, 화제가 몇 바퀴 돌면서 문촌 선생은 이미 유환을 잊어버렸다. 아니 무시해 버렸다는게 옳다.
문촌선생을 위한 친구들은 가급적이면 정치며 시사에 관한 화제를 올리지 않으려 했다. 60대의 건강이며 문단 사람들의 동정ㅣ 주였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그 고삐를 놓아 버렸는지 소설을 쓰는 최선생이 봄에 있을 선거를 입에 올리고 말았다. 이런, 하면서 두엇이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을 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넘어가려는 순간 그 유환이라는 사람이 불쑥 나섰다. 술이 올라온 것도 같고, 아까부터 벼르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선생님, 요전에 일간지마다에서 그 기사를 읽었습니다. X고오하국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축시를 낭독하셨다는....”
찬물을 끼얹는 듯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나 어눌한 마투로 능청을 떨며 말을 이었다.
“영광입니다요. 그렇게 대단하신 분을 뵙게 되어서요.”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어안이 벙벙한 채 서로 얼굴만 번갈아 보았다. 사태를 짐작했는지 장 교수가 ‘어, 어........’하며 유환의 어깨를 건드렸다.
문촌선생은 바들바들 떨었다. 그날 멋모르고 신문을 펼쳤을 때처럼 가슴이 벌떡거렸다.
그런데도 그놈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요....그러니까.......만약 오늘날의 상황에서 선생님께 또 그런 청탁이 들어온다면, 이번엔 어떻게 하실까.....그게 궁금하다는 거지요.”
장 교수가 벌떡 일어나 유환의 손목을 잡아챘다.
“이 친구가 왜 이래? 취했으면 가자구, 자, 일어나 빨리.”
문촌선생은 술잔을 집어 그쪽으로 던지려 했다 그러나 부들부들 떤던 손은 술잔을 그대로 탁자 밑으로 떨어뜨린 채 헛손질이었다. 차가운 양주가 와이셔츠 소매 속을 타고 담박에 겨드랑이까지 흘러들었다.
“이놈! 내가 누군데 감히..... 요새것들이 함부로 날뛰니까 이 무식한 놈 까지 나를 ....”
문촌선생 입 가장자리에서 거품이 고였다. 그러나 거기 생각이 미칠 리 없다. 말씀하시다가 자주 입가에 닦으세요, 이젠 나이가 들어서 얘길 많이 하면 침이 고여 보기가 흉하니까요..... 늘 손수건을 챙겨 주며 당부하던 아내의모습도 잊어버렸다.
“너는 뭐냐, 너는 그림 팔아먹는 놈 아니냐? 기러기 한 마리 그려 놓고 이건 십만원, 또 학 한 마리 그려 놓고 이건 또 십만원... 그렇게 계산하며 그림 그리는 그런 놈 아니냐고?”
“그건 글쟁이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원고료 늘리려고 쓸데없이 원고지 양이나 불려놓고.... 그래도 저는 아까 분명히 말했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림도 글도 다 값으로 매겨진다고 말입니다.”
문촌선생은 유환의멱살을 잡고 길가로 나갔다. 처음에 대나무처럼 가늘게 떨리던 몸이 어디에서 그런 힘을 뽑아 올렸을까. 자기보다 체격이 두어 배는 됨직한 상대방을 그대로 끌려나왔다.
두 사람은 길바닥에서 나뒹굴었다. 땅바닥에 패대기 치려는 문촌선생과 그대로 당하지 않으려는 유환의 버팀이 팽팽한 힘으로 대치되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만류할 틈도 없었다. 그 사이 베레모가 어디로 굴러 떨어졌는가,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정수리가 카페 불빛을 받아 더욱 붉게 드러났다. 문촌선생 모습도 엉망이다. 넥타이는 풀어지고, 허리춤엔 와이셔츠 자락이 삐져나와 있고....
잠시 후 두 사람의 싸움은 끝이 났다. 옆에서들 죽자살자 하기로 끼여들어 말리기도햇지만 젊은 살마들처럼 오래 싸울 기력도 없었다.
택시를 잡아 준다. 카페의 차를 내 준다. 집까지 바래다준다 하는 친구들을 매섭게 뿌리쳤다. 그리고 혼자 걸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부러 어두운 거리를 택해 터덜터덜 걸었다. 재수 더럽게 없는 날이라고 소리나게 씨부렁대면서.
그렇게 잠시 걷던 그는 가로등 아래 주저 앉았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무언가 확 쏟아질 듯 했다. 그렇게 삭히고 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에 열광하는 손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태지의 노래만큼도 손녀를 사로잡을 수 없는 자신의 시, 문촌선생은 꺼이꺼이 울고 싶었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웬 여자가 다가왔다. 스물 몇이나 됐을까? 밤이라 더 희게 보이는 하얀 미니스커트의 젊은 여자는 이유도 없이 까르르 웃더니 물었다.
“왜 그러고 계세요? 뭐하는 분이세요?”
문촌선생은 곧 목소리를 가다듬어 대답했다.
“시인이요.”
“아하, 시인!”
여자는 무슨 노래의 후렴처럼 가볍게 받았다. 거러나 심드렁한 느낌이 담겨 있음을 곧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댁은 누구요?”
문촌선생은 앉은 채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허리를 꺾고 가만 내려다본다. 긴 머리가 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게 마치 버들개지 같다.
“저도 시인이예요.”
“그래요? 무슨 시를....쓰는데?”
“몸으로 시를 쓰지요. 이 거리에서 후훗....”
여자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날씬한 다리를 쭉 펴고 걸으며 손짓했다.
“생각 있으면 따라 오세요. 우리 몸으로 시나 쓰지요.”
문촌선생은 거저 멀거니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말한 ‘시나 쓰게요’가 입 속에서 꺼끌꺼끌 굴러다닌다.
갑자기 모든 게 허탈해져서 정말 눈물이 쏟아졌다. 그제야 아내가 챙겨 준 손수건이 생각났다. 여자가 별로 기대하지 않은 듯 힐끗 한 번 뒤돌아본다. 문촌선생은 눈물을 닦고 코를 풀며 중얼거렸다.
‘그러기엔 나 이미 늙었어. 너무 많은 정력을 소모해버렸거든. 전에는 나도 한참 잘 나갔었는데.......그때가 좋았어........’
김저운 전북 부안 출생. 전주대학교를 졸업하고 85년「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당선. 90년「우리문학」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한 여류문인이다. 현재 전주에 살면서 군산 회현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