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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3 | [세대횡단 문화읽기]
음반감상 새봄,가슴을 두드리는 재창조의 선율 호세 카레라스의 Passion(Erato LC-0200)
글/문윤걸 전북대 강사 사회학과 (2004-02-10 16:12:12)
음악에 있어서 가사와 선율은 어떤 관계일까? 때때로 가슴을 저리듯 다가오는 시구를 발견하면 그것을 되뇌이며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시어가 갖는 그 느낌을 읽고 또 읽다 보면 자연히 소리의 움직임이 생긴다. 아마도 이것이 자연스럽게 노래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노래는 시가 주는 느낌과 아주 잘 어울리는 선율을 갖게 될 것이고 문자화된 시 이상의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경우는 어떨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하나의선율에서 받는 느낌을 시로 만들고 그 둘을 하나로 결합하여 새로운 노래로 만들어 낸다면 말이다. 우리가 요리를 할때도 어떤 재료를 먼저 넣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것보다는 80년대에 유명한 ‘노가바’를 생각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가사에 따라 원곡의 의미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서양의 고급음악에서 이러한 시도는 매우 위험한 일로 이해되고 있다. 성악곡(특히 오페라 아리아나 민요)의 경우는 가사 없이 기악으로만 연주되는 경우가 많으나 기악곡에 가사를 붙여서 연주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체로 원곡에 어떤 변형을 시도해서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일을 멋지게 해낸 사람이 있다. 바로 호세 카레라스이다. 얼마전 카레라스는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한 교향곡, 협주곡, 독주곡 등의 주제 선율에 가사를 붙여 노래한「패션」이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브람스의<교향곡 제 3번>,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쇼팽의 연습곡 3번 <이별곡>, 리스트의 피아노 연습곡 3번 <사랑의 꿈>등 13곡이 실려 있는데 이들은 모두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작품들이며 잘 알려진 것들이어서 새삼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악 연주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한 의미를 주는 곡들에 새삼 가사를 더한 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이 음반을 직접 들어본다면 그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이 음반은 원곡이 갖는, 그리고 그 곡을 만들어 낸 작곡자의 의도에 충실한 편곡과 작사를 통해 원곡의 본래 의미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마치 새로운 노래를 듣는 듯한 착각을 우리에게 불러 일으킨다. 여기에 덧붙여 카레라스의 열정적이면서도 감정을 난삽하게 발산하지 않는 진지한 노래는 이 음반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해준다. 이대목에 이르자 나는 카레라스가 이 음반을 왜「패션」이라고 이름 붙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음악에 대한 신앙과 같은 열정과 사라잉 없이는 이런 무모한 시도가 해프닝이 아닌 진정한 가치를 갖는 데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음악으로 바꾸어 놓는 데 성공했다. 그의 지적인 호기심에 가득찬 실험정신은 결코 치기 어린 순간의 도전이 아니며 이로써 우리는 또 하나의 멋진 선물을 선사받게 되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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