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4 | [문화시평]
무차별적인 신인상 매매, 한국문단이 병든다
표절작품으로 등단한 시인의 도덕성에 부쳐
글/최고봉 전주일보 문화부 기자
(2004-02-12 10:26:08)
시인은 많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얼마 전 시인이 되고픈 열망 하나로문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성을 저버리고 ‘표절’이라는 편법으로 전통을 인정받는 모시전문 잡지를 통해 등단한 어느 시인을 취재하며 느낀 당혹감이다. 물론 스스로시대의양심이기를 거부한 문인이 우리 문단의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다. 그동안 많은 문인들을 만나 문단 내부의 어둡고 외부에 밝혀지지않은 부분들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어느 한 장르를 떠나 문인 개개인들이 공통적으로 문단 내의 부조리한 부분, 과감히 도려내야 할 문제점들을 가장 먼저 느끼며 깨닫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문인들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이렇게 되어서는안된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같은 문인인데’하는 비이성적인 동료 의식이 작용해 외부에 비쳐지는 부분을 막고 문인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비문인들을 문단 전체의 이름으로 감싸준다는 데 있다. 문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세마저도 허명과 실리 앞에 내던진 사람에게 마치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한 번의 작은 실수처럼 치부해 버리고 넘어가는 넓은 아량(?)을 베풀고 허울좋은 ‘문단의 위상’만을 생각, 뼈를 깎는 자성을 등한시하며 애써 쉬쉬하는 풍조가 문단 내에 큰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표절 문제도 엄밀히 따져 보면 그 동안 문단 내에 만연된 이같은 오류 때문에 모두가 애써 외면된 이같은오류 때문에 모두가 애써 외면해 온 ‘문단의 치부’한 편 사실로 밝혀진 것으로서, 문단의 내일을 걱정하는 뜻 있는 문인들은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지극히 담담한 반응이다.
시대의 지성이 마치 무슨 자격증(?)처럼 나말돼 그 권위와 가치, 명예가 희미해진 것은 물론 문예진흥이라는 E대업에 까지도 큰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신인 등단 러시는 지난 80년대초 문학지 창간이홍수를이루면서 ‘천료 제도’에 이어 등단이 훨씬 쉬운 ‘신인상 제도’가 도입되고 부터이다.세계를 통틀어 우리 나라에서만 유일하게실시되고 있는 ‘신인상 제도’는 천료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보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 수많은 문인들을 배출하며 문단 활성화에 기여를했다. 그러나 그 공보다 훨씬 많은 병폐로 인해 이제는 신성한 문단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천덕꾸러기가 돼 버렸다. 물론 이 제도의 순수한 본질을 외면하고 사적으로 이용한 일부 문인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이 제도가 자리잡은 후부터 가히 무차별적이라 할만큼 신인 등단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즈음해서 부터 문단 내부에서는 ‘신인상 수상 = 문학지 1~2백 권 구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새로운 등식이 공공연한 비밀로 자리, 이같은 세태를 우려하는 뜻있는 문인들로부터 ‘무차별적인 신인상 매매가 오늘의 한국문단을 썩고 병들게 하고 있다’는 개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문인으로서의 양시고가 자질 등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고, 단순히 문인이 되고 싶다는 동경 하나만을앞세운 아류들의 행렬이 신인상을 매물처럼 내놓은 각종 문학지를 향해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다. 마치 어떠한 자격증 취득 마냥 신인상 수상만으로 손쉽게 등단, 시인■소설가■수필가 등으로 불리며 시대를 선도하는 지성이라 자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구조적 모슨과 병폐가 초래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문단의 비극이 시작된 것읻.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것은 어떠한 정통성이나 의식이없는 중앙의 문학지와 지방의 일부 동인지들의 영리만을 추구하는 철면피한 행태이다. 한 예로 창간호부터 신인상을 배출하고 객관성 있는 공정한 심사가 아닌 중진 문인의 위명만으로 신인상을 수여하는 이들의 행태는 아류들을 부추기는 결정적 요소였을 뿐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제기대 온 신인상 심사의 공정성 여부 의혹을 더욱 짙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번 표절 문제로 이 지역 문단에 큰 생채기를 낸 C모씨의 경우도 공정한 심사를통한 신인상 수상이 아닌, 추천 중진 작가들의 이름으로 신인상을 수상했던 것임을 볼때 그간의 의혹이 단순한 의혹만으로 끝나지 않음을 알수 잇다.
또한 문인들로부터 ‘사설 왕국’이라는 호된 질책을 받고 있는 일부 사설 문예대학은 ‘저변 확대 및 문학 진흥에 기여’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 일종의 ‘제조기’, ‘공장’역할로 전락했다는 최악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때문에 메시지가 없는 공허한 낱말을 나열하는 기술만을 가르치는 이같은 일부 사설문예대학과 문학지 구입이라는 편법 매매를 통해 등단한 문인들은 결국 문단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쉽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문단의 현실이다. 문인으로서의 태생이 기행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보다 공정하고 객관성을 인정받는 신춘문예 및 문학지 등을 통해 등단한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과는 달리 창작보다 문인이라는 이름 내세우기에열을 올리다 그 짧은 생명력이 소진하면 문단에서 스러져 버리는 것이다.
많은 문인들은 이같은 오늘의현실을 만든 가장 큰 원인이 ‘문인들 스스로의 묵인 내지는 방조’라고 말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신인상 제도’등의 장■단점 등을 재검증하고 토론, 개선해 나가야 할 기성 문인들의 나태가 자격없는 신인들의 졸작 행진을 은연중에 부추긴 결과가 돼 버렸다는 것, 이것은 이미 기득권을 확보하고 문인으로서의 특권을 충분히 향유하고 있는 기성 문인들이 어깨동무하고 나아가며 문단의 고질적 병패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뼈 있는 질책으로서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문단 내에 ‘이제라도 문인 스스로가 나서서 곪고 썩은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고 진정한 문학의 발전을 도모하는 뼈를 깎는 자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무게를 더하며 퍼져가고 있다.
‘문학의 즐거움을 국민과 함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96 문학의 해가 중반을 향해 줄달음칙 있다. 그러나 겆창하지만 공허한 구호보다는 메시지를 담은 시 한 편, 소설 한 편을 통해 가슴 가득한 희열을 선사하는 내 이웃에 자리한 작가를 그리워하는 우리에게 아직 문학의 해라는 실감이 그리 와 닿지 않아 사뭇 아쉬움이 크다.
최고봉/ 64년에 태어났다. 전북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전북일보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