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4 | [문화비평]
박홍규의 문화비평
그림 같은 세상
박홍규(2004-02-12 10:28:55)
“아, 정말 그림 같다”
빼어난 자연의 풍광을 보면 누구나 내지르는 타넝이다.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툭 터진 산과 들, 바다를 보면서 남녀노소는 물론, 화가의 입에서도 ‘아, 그림 같은데’한다.
이때 이 그림 같다라는 그림은
‘어떤 장르의 미술일까.’
‘어떤 주의, 어떤 화풍으로 그려진 그림일까?’
‘양화일까, 한국화일까.’
그리고 ‘자연주의 미술일까, 낭만주의미술일까?’
이런 고민에 빠지거나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져 자연과 인간의 정서적 교감, 일체감으로 인한 감동의 표현일 뿐이리라.
자로 잰 듯 정확한 패스로부터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슈팅을 보면서, 아 완벽한 스포츠의 팀플레이를 보면서도 우리는 “아~, 그림 같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멋진 연인이 지나가면 휘파람을 불어 대며 “야, 그림 같은”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평생...”
이 그림 같은 세상, 이 그림 같으느 행복을 바라는 노래는 70년대 농촌의 이농현상이 가속회되고 노동문제와 도시 주거 생활환경문제가 본격 사회문제화되던 시절 대유행했던 노래다 노동자나 빈민계층오로 하여금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고 보랏빛 꿈을 가져보라는 가사다.
이 그림 같은 희망은 그 당시의 사회적 현실로 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희망이었다. 왜 하필이면 그림일까? 사진은 더 정확하고 노래는 더 대중적일텐데. 왜 하나의 객관적 현실을 보면서 느끼는정서를 그림 같다는 말로 표현할까? 정말 그림이 현실보다 더욱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서 일까?
그러나 그림 같은 현실을 꼭 아름다운 측면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장학로 부정축재혐의 사건만을 보더라도 우리는 그림 같은 절묘한 부정부패의 구조를 볼 수 있다. 돈과 여자문제와 권력의 관계, 몇십억의 돈이 떡값 명목으로 주어져서 돈을 준 재벌은 조사하지않겠다는 검찰과 모두들 깨끗한데 한 비서관의 비리로 발 빠르게 마무리 지으려는 청와대와 여당의 기가 막힌 어시스트를 보면 정말 그림 같다. 이 권력내부와 주변부의 추한 고리가 완벽한 삼박자로 보호되고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우리는 개혁의 그림을 보며 감탄할 수없다. 조악한 키치처럼 흉내내거나 어설픈 밑그림만을 그려놓고 값비싼 액자에 끼워 전시장에 내놓은 꼴이다. 이 구조로는 누구에게나 감동을 안겨줄 수 없다.
인간이 느끼는 감동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영혼의 울림, 가슴 벅차 오름, 흥분과 환희....
그 어떤 문장으로도 쓸 수 없는 무엇일까? 우리는 세상살이 속에서의 희노애락, 자연경관, 문화예술작품을 창조하며 감상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느끼고 공감하고 반응한다. 이속에서 나와 사람 관계, 사회 관계, 자연 관계, 또는 작가와 작품과 관객과의 깊은 정서적 교감, 이 일체감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감동은 다시 생활의 활력이 되고 변화와 창조의 원천이 된다.
사람 사는 맛은 소중한감동의 순간을 자기화하고 짓혹시키고 서로 고통하며 보다 나은 단계로 나아가려는의지가 충족될 때가 아닌가 싶다.
“야, 그림 같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세상, 그 세상은 우리의 작은 감동의 울림들이 하나 둘 모이고 커져 큰 울림으로하나가 되어갈 때 우리의 그림 같은 세상이 앞당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