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4 | [서평]
역사 대중화를 향한 재미있는 제언
「역사신문」(사계절, 1996)
「역사신문」(사계절, 1996)
글/ 홍성덕 전북대 강사■사학과
(2004-02-12 10:31:34)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 교육의 첫머리에 내뱉는 화두이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사실을 아는, 지나간 추억을 되새기는단순 운동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역사란 엣날에 죽어 버린 것을 갖고 노는 것’이라는 볼테르의 말보다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카아의 전설적인 명제를 즐겨 인용하면서 역사의 현재성을 강변한다. 아울러 실천성을 동반해야 할 것이라는 점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다」라는 인식에 접근했던 사람들도 막상 역사를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이르러서는 그저 막막할 뿐이다. 서점에 있는 역사책들이라 해도 역사를전공하는 사람 이외에는 그저 전시물에 지나지않는다.설사 큰돈을 들여 한 권을 구입했다 해도 그것은 서점의 서가에서 집안의 책장으로 단순 이주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낟. 요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역사는 머리 아프고, 재미없고, 딱딱하고, 외울 것이 많다는 인식은 역사 대중화에 실패했기 대문일 것이다. 이럴 때 화롯불을 앞에 놓고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듣던 그런 옛날 이야기의 추억을 간직한 역사팬들을 소위 역사 전공자들이 「학문」임을 내세워 무시(?)해 왔기 때문은 아닐까.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해 나가면서 오늘의 생생한 일로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대중적인 역사 잡지로 지금은 폐간된 「역사산책」의 실패는 역사 대중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6공의 비자금 문제가 터지고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올해의 첫달,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역사 대중화를 다시금 끌어들이는 조그마한 파문이 일었다.
「역사신문」. 총 6권으로 기획된 이 책은 ‘기존의 개설서나 교과서들이 너무 추상적이고, 어렵고, 지식 대중들이나 학생들이 역사를 자신의 삶과 관련하여 생생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며, 이야기 형식의 역사책들은 흥미 위주에 지나쳐 각 시대의 실상을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미흡하다.’고 지적하면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역사의 대중화를 제언하였다.
「역사신문」의 편자들은 역사의 대중화 전선에 신문이라는옷을 입고 나타났다. 먼저 한국사를 원시시대~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전기, 조선후기, 개항기, 일제강점기로 나눈뒤각 시기별로 다시 20~30호의 신문을 제작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각 호의 지면은 4면으로, 1면에는 주요 사건의 보도 기사, 2면에는사건 해설 및 사설이나 만평, 3면에는 생활■경제기사, 4면에는 문화관련기사와 해외소식 등이 보도의 형식으로 게재되어 있다. 또한, 역사적 사건의 보도이기 때문에 해당 호의 주요 사건 연표 및 연대표 그리고 참조■관련기사를 넣어 신문을 읽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배려하였으며, 해당 시기의 전체 연표와 찾아보기를 부록으로 편집 검색 기능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편집 체계가 가지는 특징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첫째, 정치■경제적 사건들에 대한 이해가 쉽다는 점이다. 특히 인터뷰 항목의 경우 정치적 대립 관계나 상호 이해관계에 있는 논점들을 대비시켜 정리한 점은 특히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면, 금나라에 대한 사대외교결정에 대하여 이상이 아닌 현실을 주장한 척준경과 대금강경책이 가져올 왕권강화와 무신정권의 약화를 제기한 것 등이 그것이다. 다만, 역사 용어들에 대한 간단한 해설이 부록으로 첨부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일반 대중의 경우 대부분이 관직명, 제도명 등에 대하여 서먹한 느낌이 앞서기 때문이다. 둘째, 20~30년간을 한 호에 일괄정리한 점은 종래의 역사서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나누어 설명함으로써 생긴 제분야간의 괴리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 경제와 사회 문화의 유기적인 관계 설정과 그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천불주조의 경향을 지방 호족의 군사력 약화와 연결지은 해설(4호)등은 「역사신문」에서 보다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생활사에 대한 작지만 알고 싶은 사항들이 풀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황사 현상에 대한 기사 (6호)나 관리들에게 얼음을 지급했다는 내용(7호), 국제적인 규모의 팔관회 행사(7), 고려 왕실의 성 문란과 혼인 관계(6,10)등은 역사에 대한 경직성을 풀어주면서 당 시대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매일 매일 신문을 대하는 현대인들에게 역사가 가지는 딱딱함을 떼어버리고 형식의 친근감을 추선시키는 이러한 편집은 분명 역사 대중화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고려시대 편을 중심으로 「역사신문」의 내용을 검토해 보자. 고려시대 편은 「역사신문」2권째에 해당하며, 901년에서 1392년까지 500여 년 간의 시기를 20호의 신문으로 제작 각 호당 20년에서 30년 간의 역사적 사실을 종합, 보도하고 있다. 「역사신문」의 편자는 오늘의 관점에서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사설을 작성하였다고 하였다. ‘그 시대의 관점’은 어떤 것일까?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전환기의 원동력으로 민의 성장을 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라의삼국통일 이후 농업의 발달과 생산 농민의 성장을 전제하고 신라가 분열된 것은 성장한 농민을 체제 내에 재편하지 못하고 골품제 아래 진골 귀족의 전횡과 수탈에서 찾고 있다. 결국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을 것이라는유교적 민본주의를 취하고 있다.(제2권 1호)그렇지만 그러한 민의 성장은 신분제라는 중세사회의 요소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신분 질서는 개방과 평등을 지향해야 한다고 논평하면서(2호), 국왕과 신하와 백성이 서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가운데 민생안정을 도모해야 한다(3호)고 한 시각이 그것이다. 최승로의 시무책이 지배층의 시각에 입각한 것이라 지적하고, 민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과나라의근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4호)이라는 주장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서의 민중을 평가한 것이다.
둘째로는, 정치적 안정을 왕권강화에서 구하고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거란의 침입을 전후한 시기에 내우외환의 근원이 왕실기강의 문란에 있다는 지적이나(6호), 문벌귀족의 발호에 대한 염려(8호), 무신정권의 등장에 있어서도 국왕을 중심으로한 정상적 정치질서의 복원을 주장한 것(14호)등이 그것이다. 아울러 고려왕조가 혼란을 거듭하게 된 이유로 중앙집권력의 미약과 농업 생산이 민생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가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고려말의 상황을 ‘혁명적 조치가 필요한때’로 기술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역사신문」의 사설은 역사적 통치 이념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쓰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회 발전의 주체는 미흡하나마 민의 성장이라는 용어로 대변하고있다. 국왕 중심의 통치 구조의 강조와 역사발전 주체로서의 민의 성장이 동시에 양립하면서 설명되어지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 시대의 관점’으로 민의 성장과 그를 통한 체제 변화, 발전 주체로서의 민의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그 ‘관점’에 대한 일정의 공통된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신문」은 기존의 정리된 학설을 깔끔히 정리해 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재미 있다는 점에 있어서 크게 평가할 만하다. 아울러 역사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기층 민중드르에게 다가가 있는 그들의 삶 자체를 추적해 풀어내는작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들은 표면화된 일부의 사실들만을 기억할 뿐이다. 삶의방식, 옛 민초들의 하루 생활을 완벽하게 그려내지 못함은 물론이다.
홍성덕 63년 전주생, 전북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동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있으며, 조선후기 대외관계사를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