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초등학교 이학년이 된 큰애가 ‘아빠 상장요’하며 상장을 내밀었다. 글을 모르고 학교에 들어갔던 터라 그냥 저냥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기특했는데 상장까지 타오니 대견스러웠다. 어떻게 이런게 가능할까 생각하다가 요즘에 학습 능력 고취 차원에서 이런저런 명목을 만들어 아무한테나 상장을 준다는 소리를 들은 게 있어 넌지시 물어 봤다. “물아, 너 이거 운동장에서 탔냐, 고실에서 탔냐?” 물이는 거침없이 ‘운동장에서요’한다. 물어본 뜻을 알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다행스러웠지만 스스로 만망해하는데 옆에서 딴 일하던 아내가 “당신은 운동장에서 한 번도 못탔죠?”한다. “나는 셀 수도 없이 많이 탔는데.......”하면서 아, 왕년에 한 가닥씩 안했던 사람 어디 있을까 만은 대부분 교과서에서 벗어나 있었던 터라 아내에게 별 대꾸를 못했다. 고등학생 대는 공부 안한다고 때리는 선생님께 ‘공부 안해도 훌륭한 사람 될 수 있다고 호기를 부렸고 또 공부 안해고도 훌륭한 사람이 돼 볼려고 무진 애를 써봤지만 큰애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남몰래 교과서를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가만히 지나온 길을 짚어 보니까 교과서를 몰라서 감내해야하는 어려움이 많았고 또 같은 식으로 앞으로도 그럴 게 뻔해서 큰애에게 맞춰 교과서를 공부할 작정이다. 그래 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 삼학년에 편입을 했다. 그릇이란 게 그 시대 생활을 담아온 것이니 생활문화를 공부하는게 도자사나 미술사를 공부하는 것보다 좋은 그릇 만드는 데 훨씬 나을 성싶어서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병인지 도데체 교과서가 안 봐진다. 특히나 ‘시험’을 보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주관식은 내 의견을 쓰는 것이니 거침 없이 얼마든지 잘 쓰겠는데 객관식 보는 날은 아예 시험장엘 안가버렸다. 그래서 유급. 올해도 등록은 했지만 아직까지도 교과서를 한 번도 안봤다. 한 번도 안봤다. 나는 여전히 객관적이지 못하고 교과서적이지 못하단 말인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