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6 | [저널초점]
“앗 영어가 보인다!”
이종민(「문화저널」 편집위원)
(2004-02-12 11:31:32)
며칠 전 한 동창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큰아이의 영어공부와 관련 ‘전문가’의 조언을 듣기 위해서랍니다. ‘벌서 대학 진학시킬 아이가 있나?’ 하는데 아니었습니다. 중학생도 아니고 초등학교 오학년이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부아도 나고 짜증스럽기도 했습니다. 사실 ‘전문가’라는 말에 내심 우쭐해져 있었지요. 그런데 전문가 대접이 이 정도라니요? 초등학교 5학년 영어공부 따위를 물어오게. 잠시 고양되었던 기분이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이 정도면 나름으로 많은 연구를 했을 것이니 어지간한 얘기로는 성이 차지 않을 게 뻔한 일이고요. 섣부르게 말 건넸다가는 어렵게 확인한 ‘전문가’위신마저 실추시키기 십상. 선뜻 내키는 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과연 ‘전문가’인가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구요.
감정을 감추고, ‘초등학생에게 무슨 영어...’말을 건넸다가 초면이나 다름없는 이 친구로부터 머퉁이만 먹고 말았습니다. 염려했던 대로였습니다. 당연 ‘전문가’의 위치는 뒤바뀌고 말았지요.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 동창생은 어린이 영어교육에 관한 한 ‘전문가’ 뺨치는 식견과 소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세계화가 어떻고, 조기교육이 어떻고. 열기에 찬 친구의 ‘훈화’는 그칠줄 몰랐습니다. 응대할 틈도 없이 ‘전문가’의 체면만 여지없이 구겨지고 있었습니다. 마냥 듣고만 있자니 슬그머니 오기가 동하더군요. 역전의 기회를 엿보다가 무심결에(?)변명삼아 ‘사실은 그간 잠시 미국엘 좀 다녀왔어’라고 수줍은 듯 끼어들었지요.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러니까 그렇게 태평이지! 영어공부에는 역시 해외연수가 최고야!“로 이어진 부러움의 찬사 속에서 나는 어느덧 이 세상에서 가장 모범적인 아빠가 되어있었습니다. ’넌 역시 항상 한발 앞서 가는구나! 전문가는 무엇이 달라도 다르단 말이야!”시새움의 넋두리 속에서 무언가 뿌듯함이 온몸을 휘감아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왜 미국에 가게 되었는지 더 중요한 이유를 왜 말하지 않았냐구요? ‘영문도 모르고 영문학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을 마음 바쁜 그 동창생에게 꼭 고백했어야 했을까요?
이 상담을 통하여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어떤 소명의식마저 느끼게 되었고요.
전문가! 자본주의의 꽃! 기능적 분업사회의 초석! 자랑스러운 세계화의 주춧돌! 그래서 다가오는 이십일세기를 ‘전문가의 시대’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번 총선을 통하여 많은 ‘전문가’들이 국회에 진출하게 되었다고 언론에서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반겨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지요. 인품이 조금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속된 말로 인품이 밥먹여줍니까? 대통령을 인품으로 뽑던가요? 장, 차관 임명하는데 인격을 따지던가요? 교수, 의사, 변호사, 판검사, 회계사 등 많은 전문가들은 어떻고요? 양심을 내세우거나 인격과 인품을 염려하며 분업적 기능 수행을 주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선진자본사회 건설을 방해하는 짓이지요. 전체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염려하는 것도 주제넘은 일입니다. 각자 처한 위치에서 자신의 전문적 기능을 발휘하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롭게 이끌리게 되어 있으니까요. 요즘 대학에서 교양교육 대신 ‘전문가 양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인걸요. ‘전인교육’요? 무슨 바람빠지는 소리!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아, 나도 자랑스러운 ‘전문가’의 하나였습니다. 그것도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영어의! 그러니 책임의식을 느낄 수 밖에요. 많은 사람들이 영어 때문에 신경쇠약이 되어가고 있는데 ‘전문가’로서 먼 산 바라보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앞서의 동창과 같은 사람은 그래도 무언가 인연의 끈을 찾아 나같은 ‘전문가’...어흠!...에게 접근을 할 수 있었지만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찌하겠습니까? 하여 어렵게 결심을 하였습니다. 영어를 잘 할 수 잇는 비방을 공개하기로. 진짜 어려운 결심이었습니다. 전문영역은 공개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사처방을 환자가 읽을 수 있게 되면 권위에 손상이 오지요. 법률전문용어를 누구나 알 수 있게 하면 변호사는 무엇으로 장사를 합니까? 그러나 ‘영어병’아 너무 심각하니 ‘전문가’로서의 권위손상쯤은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세한 것들까지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지침만은 제시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이를 토대로 응용해 나가면 되겠지요.
첫째로 중요한 것은 소위 ‘마음을 비우는’ 일입니다. 속이 차 있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까요. 자아니 자존이니 하는 것도 버려야 하지만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것들도 타기해야 할 방해요소입니다. 속없는 사람처럼 체면 불구하고 어느 곳에서나 영어를 중얼중얼 반복연습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문화나 역사 등에도 관심을 가져서는 안되지요. 언어는 의식의 산물이라 하지 않습니까? 미국인의 의식을 갖추지 않고서 미국어 잘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 구하는 격입니다. 그러니 주체의식을 하루빨리 버리는 것이 중요한데 더 근본적인 방법은 아예 주체의식이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조기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이지요.
두 번째 비방은 생활 속에서 익힌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부모님들이 염두해 둘 사항은 가정에서 가능한 한 영어만을 사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당근과 채찍’의 전략은 효과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을 사용하면 식사를 김치와 된장국으로 하고, 영어를 쓸 때는 피자, 맥도날드 햄버거, 케이에프씨 등을 사주는 것입니다. 이는 미국의 식생활문화를 익힌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제도적, 정책적인 배려일 텐데, 모든 공영 방송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미국어로 한정시키는 일입니다. 또 초등학교에서도 우리말 교육은 특별활동시간을 이용하게 하고 정규수업시간에는 미국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임용시험에 국어 대신 영어가 채택된 게 어릴 적 일인데 아직도 교과과정이 바뀌지 않고 있다니 실로 시대착오적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에 선진 일본이 실시했던 모범적인 언어정책이 엄연한 역사적 귀감으로 엄존하고 있는데 이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뒤처지게 마련입니다. 구한말 일본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척양척왜’ 흥알거리면 일본어공부를 게을리 한 민족. 미국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미군정이라는 절호의 세계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민족. 그러니 미국어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도 당연한 업보이지요. 뒤늦게나마 ‘마음을 비운’ 영도자의 지휘하에 우리 것 버리기 운동을 지성으로 하게 되었으니 그 중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궁극적인 해결방안은 우리가 미국의 속국 또는 하나의주로 편입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경쟁국들이 너무 많아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염려했던 대로 비법을 공개하고 나니 걱정거리가 하나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 비방을 통해 모든 사람이 영어 전문가가 되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어디서 나만의 전문성을 팔아먹는단 말인가? 아! 때늦은 후회! 그러나 역시 ‘전문가’다운 순발력! 그 때가 되면 영어 지진아들 모시고 ‘한국문학특강’이나 해야지!
이종민(「문화저널」 편집위원)